흥남부두에서 딸의 손을 놓친 아버지의 이야기
굳세여라 금순아 현인의 대 히트곡 ***영화 굳세여라 금순아***
우리는 이 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날을 길이길이 기억하고 되씹어 이러한 불행들을 겪어선 안되도록 해야겠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자 금순이 남매도 피난을 떠난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1.4 후퇴 당시 흥남 부두에서 헤어지게 된 남매는 그 후로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애써 서로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매번 수포로 돌아가고 지친 금순은 끝내 병을 얻어 몸져 눕고 만다.
이에 친구들이 그녀를 도와 오빠를 찾게 되었으나 그녀의 병세는 이미 절망적이다. 오빠는 금순을 안고 죽어서는 안된다고 몸부림 치지만, 금순은 오빠의 행복을 빈다..
철수하는 LST미국 군함을 얻어 다려고 몰려든 북한 피닌민들
철수(후퇴)하는 미국 군함을 타기위에 흥남 항구에 몰린 탈북자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어선과 군함 후퇴하는 다국적군과 피난민의 북새통속
UN군과 피난민14000명을 태우고 흥남부두와 군수물자를 폭파했다,
흥남역을 출발한 마지막 열차기 부산을 향해 목메인 기적 소리를 울리며 칙칙폭폭
북한을 출발한 피난 열차의 종착역은 무조건 부산역이였다.
화차안이 좌석이 없자 화차위에도 피난민이 기득
기적소리와 함께 흥남애서 부산까지 달리는 열차가 힘겨운듯 목메어
북한주민들의 탈북 피난은 고향을 버린 실향민으로 반세기가 넘어셨다.
화차 위에타고 졸다가 터널에서 많은 목숨도 잃어가며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
한강 얼음위를 건너 1.4후퇴 서울 시민들
군함과 마지막열차를 못탄 북한 피남민과 후퇴하는 한국이 어우러졋다.
밀려오는 피난민을 수용할 국가적인 능력도 없어 항구와 역전에 버려졌다.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판자집에서 어려운 피난살이는 죽지못해 한 것이다.
부산바닥 노점상으로 움막살이와 피난살이를 영화화한 굳세여라 금순아
꿀꾸리죽과 다목적군의 군복으로 추위를 견뎠다.
꿀꾸리죽 = 미군의 음식쓰래기
추억에 뻥튀기는 그들의 밥벌이엿다.
강물을 퍼다가 식수로 사용한 피난민들
두 아이를 먹여 살리려고 엄마는 피눈물을 흘려야만하였다.
몸이 아프면 노숙자로 죽어야 했던 1.4후퇴 피난생활
봇짐을 운반해주는 지갯꾼들
아코디온으로 고향을 그리며 마음을 달래보는 거리의 악사
큰배가 지날때 다리를 들어 올리는 영도다리
껌팔이 소녀, 탈북 피난민 소녀
부산의 명물, 산에다 지은 집은 아파트같이 보인다.
그이름도 유명한 판잣집들
난방과 취사는 석유곤로에 의존했다. 석유곤로는 당시에 없었고 60년대에 나왔다.
청계천변에 복원해놓은 판잣집들.
널판지로 지은 판잣집이 노점상과 어울린다.
굳세여라 금순아, 하숙생, 전쟁당시 판자집에는 다닥다닥 영화포스타가... 60년대
60년대 아리랑 담배로 외로움을 달랜 담뱃가게
굳세어라 1953년 굳세야라 금순아
현인이불러 대구에서 시작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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