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거꾸로 '서'기 때문에 여름 여행을 '피서'라고 부른다는 이도 있다. 물론 우스개다. 그래도 마냥 뼈 없는 소리는 아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진리가 기분 좋게 떠나온 여름 휴가에도 고스란히 들어맞는 탓이다. 어딜 가나 빽빽하게 들어찬 인파, 이리저리 핸들을 돌려봐도 뚫릴 줄 모르는 도로. 여기에 혹시 애라도 빽빽 울어댄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입은 까칠해진다. 입맛을 잃어버리니 기력이 떨어지고, 힘이 없으니 놀고 싶은 마음도 달아난다. 아! 황금 같은 휴가를 이대로 접어야 하나….
이럴 때 '특효약'이 간자미 회무침이다. 보기에도 알싸한 새빨간 빛깔, 침샘을 활짝 열어버리고 마는 새콤한 향기. 저항할 수 없는 유혹에 젓가락을 뻗어 도톰한 살점을 하나 입 안에 넣는다. 오도독! 오도독! 뼈째 씹히는 맛이 특이하다. 희한한 생선을 다 보네 싶어 조금 더 씹다 보니 살맛도 여간 고소한 게 아니다. 재미와 맛에 이끌려 한참 동안 젓가락을 놓기가 쉽지 않다. 이쯤 되면 맛에 둔감한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하리라. '이 맛을 어디서 봤더라?' 그리고는 이내 무릎을 치리라. '간자미? 이거 홍어랑 비슷하네!'
그렇다. 간자미는 홍어목 생선이다. 다 자란 게 1㎏ 남짓이라니, 10㎏ 넘는 것도 흔한 홍어보다는 한참 작다. 가격도 싸서 4인 가족이 한 접시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생김새와 맛만은 홍어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 오죽하면 별명이 '홍어 동생'이겠는가. 당연히 요리법도 비슷하다. 삭혀 먹는 경우는 드물지만, 회.회무침.탕으로 먹는 것은 홍어와 같다. 이 밖에 튀김과 구이 등은 홍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변신. 미식가들의 다양한 입맛에 맞추는 데는 '형님' 홍어보다 한 수 위인 셈이다.
간자미는 서해안 중부에서 많이 잡힌다. 태안반도 일대와 천수만 부근이 주요 어장. 현지 주민들은 구수한 사투리로 '강개미' 또는 '갱개미'라고 부른다. 간자미의 제철은 봄. 그러나 "봄에 많이 잡히긴 하지만, 여름이라고 맛이 특별히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게 오천항에서 대전횟집(041-932-4188)을 운영 중인 김월규(49) 사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간자미 별미도 있다. 바로 간자미 회냉면. 새콤달콤 회무침을 먹다가 냉면 사리만 주문하면 알아서 맛나게 비벼준다. 이렇게 '풀 코스'로 먹고 나면,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는 것은 기본. '속도 든든한데, 어디 가서 제대로 놀아볼까'하는 마음까지 불끈 솟아오른다.
맛있는 간자미를 먹으려면, 조수가 가장 높게 차오르는 '한사리(음력으로 매달 보름과 그믐)' 때가 좋다고 한다. 간자미로 유명한 오천항은 충남 보령시에 있다. 시내를 벗어나 21번 국도를 타고 홍성군 방향으로 20여 분을 달리다 보면 주포면이 나온다. 여기서 표지판을 보고 오천항으로 접어들면 된다. 간자미 회무침은 작은 접시에 4만원, 큰 접시에 5만원이고, 냉면 사리를 시키면 1인분에 2000원을 받는다. 아예 간자미 회냉면(한 그릇 1만원)만 먹을 수도 있다.
남궁욱 기자
(2) 더 이상의 게장은 없다 - 당진 제일식당
그저 그런 게장도 '밥 도둑'이라는 세상. 이 정도면 '밥 대도(大盜)'다. 게는 바로 옆인 태안 안흥항에서 봄철에 잡힌, 알이 꽉 들어찬 암게만 골라 급속 냉동시켜놨다가 꺼내 쓴단다. 생게의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기 위한 묘책. 장은 간장에 까나리액젓을 섞은 뒤 생강 등을 넣고 끓인다.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게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게딱지에 밥을 두어 숟가락 넣고 잘 비빈 뒤 함께 나온 커다란 김에 싸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당진군청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보인다. 예전 이름 '삼오정'. 1인분 1만9000원. 041-353-6379.
(3) 휴가철 속풀이를 맡겨다오 - 서산 청원식당
친구들과 찾은 바닷가. 많든 적든 술 한잔이 오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다음날 속풀이. 그러나 태안반도를 찾을 이들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우럭젓국이 있기 때문. 회로만 먹는 줄 아는 우럭을 말린 뒤 끓인 이 국은 언뜻 북어국 같다. 그러나 우럭이 북어보다 살이 많고 부드럽기에 끓여놓은 국물이 더 뽀얗고 담백하다. 여기에 서해안의 명물 꼬막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해 칼칼한 속을 달래는 데는 그만이다. 함께 나오는 10여 가지 밑반찬도 실하다. 서산시내 백조예식장이 있는 동문동 먹자골목 안에 있다. 1인분 7000원. 041-667-2012.
(4) 붕장어의 화려한 변신 - 태안 통개수족관
붕장어. '아나고'의 우리말이다. 장어라면 귀한 생선인데, 유독 붕장어만은 싸구려 취급을 받아왔다. 잔 가시가 많아 먹기 힘들기 때문. 그러나 붕장어도 어떻게 손질하느냐에 따라 '팔자'가 바뀐다. 대를 이어 하고 있는 이 식당에선 주인이 직접 붕장어의 가시를 모두 발라낸 뒤 숯불에 노릇노릇 굽는다. 20분 이상 구워 내놓기에 기생충 걱정도 전혀 없다. 석양을 바라보며 먹는 담백한 붕장어구이와 소주 한잔. 풍천 장어요리가 부럽지 않다. 붕장어 매운탕도 얼큰하다. 해미IC로 나와 만리포해수욕장으로 가다 통개항을 찾아야 한다. 1㎏ 2만5000원. 041-672-4118.
(5) 소에 이런 부위가 있었네 - 홍성 내당
예부터 홍성은 한우로 이름을 떨쳤다. 그런 홍성에서도 10여 년 전통의 이곳은 암소의 '특수 부위'만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살칫살.토싯살.치맛살.낙엽살.안창살 등 이름부터 생소한 부위들만 내놓기 때문. 하나같이 소 한 마리를 잡아도 서너 근이 나올까 말까 하는 귀한 살코기로, 모두 날로 먹을 수 있는 부위다. 실제로 고기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이 집에서 불판을 쓰지 않는단다. 좋은 고기가 없으면 문을 열지 않는다니, 미리 전화로 확인해봐야 한다. 홍성의 번화가인 홍성지원 근처 온천네거리에 있다. 1인분 2만원. 041-632-0156.
(6) 새 두부 맛보러 오세요 - 서천 새암물
춘장대해수욕장.동백림.해양박물관…. 작지만 볼 것 많은 도시 서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다. 두부로 유명한 연천에서 제조법을 배운 주인이 매일 아침 새로운 두부를 만들어 낸다. 물론 콩도 전국을 돌며 사들인 순수 국산만 사용한단다. 이러니 두부 맛이야 보나마나. 전골을 시키면 아기살처럼 보드라운 두부를 맛볼 수 있다. 서울 강남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경영했던 주인의 경험이 전원주택 풍의 건물 외관에서부터 잘 묻어난다. 서천역에서 문산 방향으로 500m쯤만 가면 된다. 두부버섯전골 1만5000~2만5000원, 모두부 4000원. 041-953-0789.
(7) 기절 낙지 맛보면 기절한당께 - 무안 동원
"한번 맛을 봐 보면 증말 거시기허불제. 기절해불고 만당께."
전국에서 낙지로 유명하다는 전남 무안. 무안의 낙지는 흔히 '세발 낙지'라고들 한다. 처음엔 발이 세 개인 줄 알고 '정말 희한하네'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세발이란 '발이 세 개'가 아닌 '가느다랗다(細)'는 뜻의 한자와 조합된 이름이었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무안 사람들은 세발 낙지를 흔히 '기절 낙지'라고 부른단다. 그게 또 궁금했다. 그래서 무안에서 기절 낙지 전문식당으로 손꼽힌다는 동원(061-452-0754)이란 곳을 찾아가 봤다.
기절에도 세 단계가 있단다. 처음은 낙지 기절시키기. 주인은 낙지 머리를 가위로 싹둑 자르고는 나머지 다리를 큰 소쿠리에 넣고 냅다 문질러댄다. 아무렇게나 비비는 게 아닌 듯했다. 거품이 나오도록 빡빡 문질러 부드럽게 해야 하나 껍질이 벗겨져선 안 된다고. 어떤 식으로 문지르냐에 따라 낙지 맛이 확 달라질 수 있다니 음식점마다 나름의 비결이 있다고 한다. 이윽고 완전히 기절시킨 낙지가 한 상 턱 하니 차려져 나온다. 한 점 집어 초고추장에 묻히니 이게 웬걸. 죽은 줄 알았던 낙지 다리가 다시 꿈틀거린다. 바로 손님이 놀라 기절하는 두 번째 단계다.
낙지 하나를 입에 쏙 넣어 보았다. 부드럽지만 무르진 않고, 꼬들꼬들 씹히면서도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막힌 맛에 놀라 기절하는 게 세 번째 단계이지잉." 주인의 자랑이 이어졌다.
가격은 아주 싼 편은 아니었다. 여름철 20마리 한 접이면 10만원 안팎. 여기에 매운탕을 추가로 먹으면 4인 가족이 먹기에 넉넉할 듯싶었다.
낙지가 몸에 좋다는 건 예부터 입증돼 온 사실. '동의보감'에선 '낙지 한 마리가 인삼 한 근에 버금간다'고 한 탓에 낙지는 흔히들 '뻘 속에서 건져낸 인삼'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런 낙지가 무안에서 더 싱싱한 이유는 좋은 자연 조건 때문이다. 특히 현경면과 해제면 사이 35.6㎢ 지역은 '갯벌 습지 보전지역'으로 선정돼 낙지가 튼실한 몸을 갖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가늘고 부드러우면서도 푸르스름한 회색빛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 1년 중엔 10월 중순께 나오는 놈이 가장 좋아 이때 맞춰 축제를 벌이기도 한단다. 비록 최상급은 아니지만 여름에도 상태는 양호한 편. 더운 여름 '기절 낙지'에 한번 빠져보는 것도 괜찮은 보양식 피서가 아닐까 싶다.
최민우 기자
(8) 장맛이 밥맛이다 - 군산 옹고집보리밥집
너른 마당에 항아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직접 된장을 담그기 때문. 정갈하게 담가 2년 동안 푹 묵힌 된장만 쓴단다. 메뉴는 저렴한 쌈밥정식 하나뿐. 그러나 들어가 앉기만 하면 손님 수대로 차려내는 이 밥상이 간단하지 않다. 우선 황토에서 양식한 우렁이가 들어간 쌈장 맛이 구수하다. 호박과 두부를 썰어 넣고 끓여 낸 된장찌개도 담백하다. 밥도 군산 특산물인 청정쌀과 흰찰보리쌀을 섞어 지었다. 매월 둘째.넷째 월요일은 정기휴일. 군산IC에서 빠져나와 군장대 앞을 지나 나포면 쪽으로 10분 정도 가야 한다. 1인분 5000원. 063-453-8877.
(9) 부드러운 조갯살의 유혹 - 김제 새만금횟집
손님들이 그렇게 불러 '꼬막'이라고 써놓긴 했지만, 실은 '동죽'이다. 동죽은 서해안 갯벌에서 많이 나는 조개로 꼬막과 다르다. 우선 껍질에 세로줄이 없어 겉모양부터 다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꼬막에 비해 살이 훨씬 부드럽다. 무침은 동죽을 미나리.오이 등과 함께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놓은 것. 녹아버릴 듯 연한 조갯살과 아삭거리는 야채들이 만나 씹는 맛이 일품이다. 동죽을 넣고 칼칼하게 끓인 '꼬막 쑥칼국수'도 별미다. 서김제IC를 내려와 만경 쪽으로 가다 심포항을 찾아야 한다. 무침 1만~2만원. 칼국수 4000원. 063-543-6668.
(10) 상다리가 부러진다 - 영광 007식당
제대로 된 굴비를 먹고 싶다면, 조금 귀찮더라도 영광군 읍내를 벗어나 법성포에 가야 한다. 굴비백반을 주문하면,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이 밥상을 뒤덮는다. 양념게장.병어조림.장대찌개….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공기는 뚝딱 해치울 만한 반찬들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이 메뉴의 '압권'은 굴비. 가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가장 싼 백반을 시켜도 노릇노릇 짜르르한 상등품 굴비구이가 나온다. 돈을 조금 더 쓰면, 한 상에서 고추장 굴비.굴비찜도 맛볼 수 있다. 영광IC에서 나와 군청소재지를 거쳐 차로 15분 정도 가야 한다. 1인분 1만5000~2만원. 061-356-7981.
(11) 육회, 선짓국을 만나다 - 함평 대흥식당
대를 이어 28년째 한 곳에서 육회를 팔고 있다. 쇠고기는 함평 우시장에서 나오는 한우의 '박살'만 쓴단다. 박살은 엉덩이 부위. 기름이 거의 없는 살코기로 육질이 부드럽고 비린내도 전혀 나지 않는다. 우선 육회를 조금 시켜 입맛을 다신 뒤 육회비빔밥으로 배를 채우면 된다. 통깨 가루가 뿌려져 있어 고소한 비빔밥에는 선지를 넣고 끓인 맑은 국물도 따라 나온다. 매일 아침 새로 받은 신선한 선지로 끓인단다. 함평IC를 빠져나와 읍내 5일장터까지 가면 찾을 수 있다. 육회 한 접시 2만2000원, 비빔밥 5000원. 061-322-3953.
(12) 게장과는 또 다른 맛 - 목포 장터식당
꽃게무침은 얼핏 양념게장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생게를 가져다 양념을 해 바로 먹는 것이 꽃게무침. 삭히는 과정이 빠져 게장과는 맛이 다르다. 생게살이기 때문. 몸통을 집어들고 쏙 빨아들이면, 한우 육회같이 담백한 게살이 입 안을 가득 메운다. 양념은 게장보다 덜 자극적이다. 색깔은 선홍색이지만, 전혀 맵거나 짜지 않다. 몸통의 살을 빼먹은 뒤 껍질에 들어찬 양념에 밥과 함께 나온 나물을 넣고 슥슥 비벼 먹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방법. 목포IC에서 빠져나와 계속 직진,북항에 있다. 1접시 1만6000원. 061-244-8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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