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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사랑과 진실

同性愛의 발생과 원인

by 현상아 2006. 9. 10.
 

1. 동성애의 발생과 원인

 동성애에 대한 시각들을 보면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서로 간에 잘못된 편견과 시각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동성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성애가 발생한 역사와 원인부터 파악하지 않고는 동성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사서(史書)에서 의하면 여성과 남성의 동성애에 대한 발생 원인을 다르게 본다. 사서에 의하면 여성의 동성애는 남성의 자위행위와 같은 것으로 자연적인으로 본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여성이 결혼을 했던 안했던 마음에 드는 남성을 보거나 혹은 상상 으로든

어떤 이상형에 정욕(요즘 말로 오르가즘이라는 것이다)을 느끼게 되는데 손가락이나 기구를 쓰게 되면 성병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성들의 신체 모양을 따라서 여성들끼리 짝을 맺어 동성애를 통해 푼다는 것이다. 즉 여성들의 동성애는 남성들의 자위행위와 같은 행위로 보고 있다. 이런 행위는 원시시대부터 있었던 것이고 여타의 동물도 여성들끼리의 동성애를 즐긴다고 보고 있다.


 이런 여성들의 성행위가 계급사회에 오면서 귀족계급들은 하녀를 동성연애자로 배치하여 결혼을 해도 같이 보내는 풍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하녀도 남편의 여자로 되게 된다. 이 풍습은 자본주의 하에서도 여전히 유지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칼 맑스의 하녀 불륜관계였다(그의 부인 예니가 귀족이었다). 이와 반대로 평민들은 집안과 집안 사이에서 딸자식끼리 짝을 맺어 주었다. 이 풍습은 이태백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에 하나였다. 지금 사람들은 이 사실을 오해하여 조혼 풍습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중국사서에서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남녀가 20세가 넘어야 가능했다. 물론 여성의 동성애는 일부다처제가 일반화되어 있던 옛날에 여성의 불륜을 억제하는 기능으로 이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여성의 동성애는 자연적으로 보는 대신에 남성의 동성애는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는 특성이 있다. 하긴 지금도 여성의 동성애보다는 남성의 동성애를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남성의 동성애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그것은 계급사회에서 발생한 일부다처제로 인하여 결혼 못한 남성들 사이에서 번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일설에서는  군대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쟁에서 강간을 막기 위해 남성의 동성애를 강제한 점도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후자에서 전자로 이행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결혼 못한 남성들을 위해 공창제도도 발생했기 때문인데 재미있는 것은 공창제도도 많은 부인 가진 사람이 자신의 부인을 기생으로 사용하면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어째든 도덕적으로 결벽증이 있고 외로움을 잘 타는 남성들은 당연히 동성애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2. 동성애 문제는 이렇게 보아야 한다.

 이렇듯 동성애는 남녀를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여성의 동성애는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여성의 정욕을 푸는 자위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혼한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남편이 여성의 정욕을 다 풀어줄 수는 없다. 물론 그 반대도 진리이지만 남성은 자위행위라는 수단을 갖고 있지만 여성은 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끼리 짝을 맺어주는 풍습은 지금도 지속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의 의처증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남성의 동성애는 찬성하든 말든 계급사회의 잔존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몇천년 동안 형성된 관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계급적대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에서 결혼하지 못하는 남성도 존재하기 마련이고 성적 억압도 지속하기 때문에 남성들도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동성애는 상당기간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남성들의 동성애는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는 저항 이념들 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성적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 것이다. 이를 어떠한 법이나 제도로서 억제한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나 동성애의 찬성론자들이 동성끼리 결혼도 가능하다는 논리는 또 다른 편향에 빠지는 것이다. 자연법에 기초한 단혼제에서의 결혼은 여성이 자식을 생산하는 기능을 뜻한다. 물론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부부관계가 소유관계에서 평생 친구 관계로 바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자식을 생산하는 행위라는 것은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동성애는 부부관계는 가능해도 결혼관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필자가 동성애자들에게 동조하는 것은 계급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성적 억압에 대항하는, 그리하여 결혼과 부부관계를 소유관계에서 평생 친구관계로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결혼이나 부부관계에서도 유산자(부르주아)적 사랑이 있고 무산자(프롤레타리아)적 사랑이 있다. 유산자적 사랑이란 가족을 소유관계로 파악하는 것이고 무산자적 사랑이란 평생 친구관계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는 동성애도 자신의 가족을 남에게 강탈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는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취미로 보게 될 것이며, 사회의 성적 문란, 즉 성의 상품화를 억제하는 기능으로 보게 될 것이다. 바로 동성애는 유산자적 세계관을 무산자적 세계관으로 이끄는 과도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동성애자들의 투쟁이 진보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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