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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사랑과 진실

동성애 `성의 또다른 형태` 인식 확산'

by 현상아 2006. 9. 10.
 






동성애


`성의 또다른 형태` 인식 확산

 

벌써 오래 전의 일이지만 록 허드슨은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동성애자의 병'으로 알려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공포를 남겼다. 역사상 유명한 동성연애자들은 사포, 소크라테스, 플라톤, 시저, 다빈치, 미켈란젤로, 지드, 콕토, 차이코프스키 등이 꼽힌다. [좁은 문]에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앙드레 지드의 성스러움이 실생활에서는 동성애로 나타났다.

리처드 버튼, 알랭 드롱, 제임스 딘, 타이론 파워 등은 자신이 동성연애자들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힌 유명한 배우들이고 토니 커티스, 버트 랭카스터, 율 브리너, 로버트 와그너, 말론 브랜도, 엘비스 프레슬리, 톰 존스, 빅 모로,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실베스터 스탤론 등은 비밀스럽게 거론되는 이름들이다. 헐리우드를 주름잡는 스타들은 거의 망라된 것 같다.

동성애에 대한 역학조사는 1948년과 1953년에 킨제이가 1만 1천여 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보고한 것이 처음이다.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것이 가장 좋은 자료로 남아 있다. 킨제이에 따르면 남자 100명 중 4명은 사춘기 때부터 평생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동성애자이고, 13명은 적어도 3년 이상 동성애에 흠뻑 빠졌던 사람, 그리고 또 다른 13명은 비록 성기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동성애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자 100명 중 30명 이상이 사춘기 이후에 다른 남자와 오르가슴에 이르는 경험을 가졌다는 말이다.

여자 동성연애자 수는 남자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국가에서 조사한 사실도 킨제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동성연애란 간단하게 말하면 같은 성끼리 키스, 포옹, 모든 종류의 성교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항문성교가 문제가 되어 AIDS에 걸리게 된다.

성인이 된 동성연애자들에 따르면 동성애자 가운데 3분의 1은 동성애자끼리만 성행위를 즐기고, 25%는 마음 속으로만 동성애를 즐긴다고 한다. 40%의 남자들은 청년기 때 동성애적인 자신의 감정과 행위를 바꾸게 된다. 또 청년기 때에 남성 동성연애자나 여성 동성연애자들의 3분의 2는 이성애적인 흥분을 경험한다고도 한다.

뉴욕이라는 동네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지이고, 코넬대학 병원은 맨해튼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벨기에 출신의 잘 생긴 비뇨기과 의사 닥터 이드가 독점하고 있어서 많은 유명인사들이 환자가 되어 이드를 찾아오곤 했다. 학회에 가면 잘 만날 수도 없을 만큼 쟁쟁한 의사들, 유명한 배우들, 오케스트라 지휘자 등등. 어떤 날은 의사환자만도 열 몇 명을 본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많은 환자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알게 되었다. 묘하게도 동성애 환자들은 금발의 예쁜 간호사가 들어가면 시큰둥하다가도 검은 머리의 동양인 남자 의사가 들어가면 이상한 성적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AIDS 양성인 겁나는 환자였다.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성적 능력을 개선시키고자 발기부전 클리닉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환자들 가운데에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동성애자는 대만 출신의 잘생긴 M이다. 그는 코넬의대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날마다 금발머리에 둘러싸여 지내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오랜 만에 보는 동양계 환자인 그에게 친근감을 느꼈었다. M의 문제는 발기부전이었는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발기부전의 대상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방에다 온갖 종류의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내용은 거의가 동성애적인 것들이었다. 면담 끝에 그의 담당의인 금발의 젊은 여의사는 어떻게 하면 M의 발기력을 회복시켜주는가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의견을 10분간이나 피력했다.

'본인이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면 동성애는 병이 아니다'라고들 하지만 M의 처지를 안다면 치료자로서 조금이라도 갈등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만에서 이민온 그의 부모는 차이나 타운에서 어렵게 음식점을 해가면서 장남인 그의 학비를 대고 있었다. 오로지 아들만 바라보고 있는 그의 부모도 부모려니와 2년만 지나면 의사로서 주로 동양계 환자를 치료해야 할텐데 싶어 공연히 화가 났었다.

그때만 해도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얘기하는 그네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문화적인 차이는 알겠지만 M은 미국 사람이고, 그는 다만 다른 사람들과 성적 취향이 달라서 동성애가 되었을 뿐이므로 의사인 우리는 발기부전만 해결하면 되는 것 뿐'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발기부전 클리닉에 가서 수많은 동성애자들을 보게 되면서 서서히 '그게 그런 건가 보다'하고 생각이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동성애에 대한 갈등을 느낀 나머지 치료를 받고자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은 비교적 치료의 성과가 좋다. 하지만 본인이 갈등을 느끼지 않는 동성애자는 치료가 힘들다.

세계 의학계는 이미 80년에 동성애를 정신병의 분류에서 삭제해 버렸다. 정신분석학자인 스톨러 같은 사람이나 좀 급진적인 의사들은 동성애는 병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성적 선호도에 있어서 보통 사람과 다소의 차이가 있는 사람들 정도로만 본다.

그러나 동성애 때문에 갈등을 느끼는 동성애 환자의 경우는 치료의 가능성도 있고, 이차적인 우울증 둥이 문제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진단 분류에 남겨놓았다. 동성애가 성적 선호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은 정신분석학적 견해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에서 제일 흔한 형태인 항문성교는 결국 AIDS 문제로 비화되어 사회적인 심각한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꼭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만 언급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질투나 망상의 경우, 남성은 자기 부인이 사랑하는 딴 남자의 유형이 자기도 동성애적인 매력을 느끼는 남성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다'에서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가 되고 과대망상에서는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나는 오직 나를 사랑한다'가 된다고 했다.

이런 동성애적인 요소의 중요성, 즉 동성애의 원인론이 '여자인 경우에도 해당되는가'에 대해 H. C. 모들린의 연구에 의하면 별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모들린은 프로이트의 투사-망상양식을 자아의 붕괴를 막기 위한 것으로 설명하고 이런 망상적 성적 내용의 의의는 첫째, 퇴행의 범위 측정과 둘째, 고착의 병적인 좌표를 가르킨다고 설명한다.

전공의 초기 시절, '30대 중년 여성이 뜨개질을 하는 것은 일종의 자위행위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기분이 들다가 그후 환자를 계속 만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이다.

동성애란 동서고금의 모든 문화 속에서, 그리고 모든 종류의 동물세계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동성애를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로 보았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정신병자로 보지도 않았다. 단지 사회적으로 독특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밀히 종로의 뒷골목에서 이루어지던 동성애자들의 만남이 이제는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동아리를 형성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구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논리가 지배적인 우리의 사회구조 내에서 이러한 변화가 어느 정도 용납할지는 의문이다.


역사속의 동성애

동성애(homosexual)라는 용어가 생겨난 건 불과 19세기 말이다. 동성애(homosexual)와 이성애자(heterosexual)라는 말은 벤커트(K.M.Benkert)라는 사람에 의해 최초로 사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뚜렷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물론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는 동성애를 탄압하기는 했으나, 그건 동성애만을 탄압했다기 보다는 생식과 직결되지 않은 성행위(자위행위, 낙태, 항문 성교, 오랄섹스 등등)를 탄압하는데에 동성애도 함께 들어갔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오히려 동성애를 천상의 사랑이라고 하여 사랑 중에서 최상의 사랑으로 꼽기도 했다. 당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은 소년과의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것이 다른 여성과의 평범한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더욱 값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사포 같은 여류 시인 역시 여성들과의 성 관계를 나누었으며, 이를 아름다운 시 구절로 표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나 원시 사회, 그리고 이집트 사회에서 역시 동성애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남성들간의 항문성교에 있어서 `능동적`인 역할과 `수동적`인 역할을 나누어서 수동적인 성 역할을 하는 사람은 죄악시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 미켈란젤로 역시 동성애자였다.
남자를 사랑한 남자로서의 성적 취향은 그의 작품의 중요 모티브가 되었으며, 그의 화폭 속에 등장하는 여성 역시 남성의 몸으로 보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잘 알려진 테네시 윌리암스나, 영국의 소설가 포스터,그리고 마돈나 역시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에서도 각종 문헌을 통해서 동성애자가 발견된다. 신라 제 36대왕 혜공왕이나 고려시대 공민왕, 조선의 세종기 세자빈 봉씨(레즈비언이었다.)를 비롯하여 삼국 시대의 화랑이나 유랑예인 집단인 남사당패가 바로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의 감정을 기록한 문학도 많이 발견된다.
고려시대 경기체가 <한림별곡>에서는, 미소년의 정소년과 관리인 시적 자아가 같이 그네를 타고 즐기며,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둘이서 손잡고 소풍을 가고 싶다는 애정하고 낭만적인 노래가 발견되며,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청나라 상인들과 미소년들이 거래를 통해 동성애 행위를 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머슴들끼리의 남색 행위가 묘사되고 있다. 그 밖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간 게이나 레즈비언, 혹은 양성애자들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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