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찾아서
미국인의 남다른 한옥사랑 30년
“흙, 나무, 종이… 딱딱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얼마나 부드럽고 자연 그대로예요. 재료들을 보면 집주인을 가장 잘 배려한 그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게다가 멋스러운 정취까지…. 몸의 기운이 절로 좋아지니 제 몸이 한옥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아무렴, 30년을 넘게 한옥에서 살아온 사람 아닌가. 온돌 문화를 예찬하는 말 한마디, 문을 여닫는 조심스런 행동 하나하나에 한옥에 대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모습에 미국인이라는 국적이 무색할 정도다. 아니, 이미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 된 지 오래인 것 같다. 직접 살아보면서 한옥 생활을 몸에 새기고 마음에 담아온 이 남자, 한국에서 23년째 ‘IRC 리미티드’라는 해양 중설비 업체를 운영해오고 있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Peter E. Bartholomew 씨다.
그의 집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늦가을. 이 동네에서 ‘대나무집’으로 불린다더니, 대문을 거쳐 중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가 싱그럽게 맞이한다. 넓진 않지만 충분히 여유로운 흙마당 한가운데 키 큰 단풍나무가 주인처럼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노랑 카펫을 깔아놓은 듯 한옥과 마당이 가을에 흠뻑 빠진 모습이다. 하늘을 뒤덮은 듯한 단풍나무, 푸른 대나무와 기와를 얹은 나지막한 담, 이들 덕분에 주변의 콘크리트 빌딩이 감쪽같이 가려진다. 그 안에서라면 자동차 소음이나 복잡한 도심을 떠올릴 일이 없다. 낡고 오래된 나무가 주는 정감과 기와선에서 묻어나는 단정함에 스트레스와 욕심과 분주한 마음을 절로 내려놓게 된단다.
휘영청 밝은 달이 나뭇가지에 걸리는 밤이면 더욱 설렌다. 마당에 친구들 불러놓고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 부딪히다 보면 그 멋진 정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단다. 이런 공간에서 잠들고 눈뜰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는 피터 바돌로뮤 씨, 그와 한옥의 인연은 30여 년 전 강릉 선교장에서 시작되었다.
“10대 말, 그러니까 1968년에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왔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 교사로 일했지요. 연탄은 구경도 못했고 나무로 군불 지피던 시절이었는데, 비포장길 20km를 우습게 걸어다녔죠. 그때 막걸리 한 되에 1백50원인가 했고, 맥주는 감히 구경도 못하던 때였지요.” 외국인에게서 우리나라의 ‘그때 그 시절’을 듣는 맛이 영 새롭다. 다행히 그는 그 시절을 고생스럽기보다 신기하고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미국과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오래된 공간과 앤티크 소품들을 보면서 당대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을 낙으로 여겼던 그라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모든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 무렵 그 지역에서 가장 잘 지은 집을 수소문해 강릉 선교장을 소개받았다. 한걸음에 달려가 둘러본 그곳, 산새와 나무와 기와지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에 첫눈에 반한 것. 시어른이 흥선대원군의 보좌관이셨던 집안의 며느리답게 기품 있고 단아해 보였다는 선교장의 안주인 할머니, 새파랗게 젊은 외국인이 한국을 알고 싶다고 하니 아량을 베풀었다고 한다. 툇마루 너머 푸른 소나무가 한눈에 내다보이던 정경, 따뜻한 온돌방에 겨울밤을 녹이던 정겨움, 그 운치에 빠져들어 한옥 없이 한시도 살 수 없는 ‘한옥 예찬론자’가 되고 말았다.
1. 햇살 아래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한지와 문살이 곱다. 선교장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곳의 문살을 사진 찍어와 그대로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2. 별도의 가구 없이 훤하게 비어 있는 건넌방. 온돌이 유난히 따뜻해 이곳에 요와 이불을 펴고 잔다.
3. 날씨가 추워지면서 마루 앞에 새시를 달았다. 행여 목재가 다칠까 못하나 사용하지 않고 나사만 조여 집 앞에 세운 것이다.
“빈 방이 정말 많았는데, 할머니가 방을 몇 개 정도 쓰겠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다 써도 되냐고 되물었죠. 그랬더니 ‘청소할 수 있을 만큼 쓰세요’ 하시는 거예요. 내심 좋아 하며 처음에는 이 방 저 방 쓰다가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딱 한 개만 사용하게 되더군요. 하하!”
‘소리 없이 강한’ 주인 할머니는 그에게 엄하고도 따뜻한 스승이었고, 어렵고도 정겨운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방을 정리 정돈하는 법, 식사 예절, 어른을 대하는 자세, 장례 문화 등 한옥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문화는 모두 그분을 통해 익힐 수 있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켜서 머릿장에 올려두는 법, 밥을 다 먹으면 밥뚜껑을 뒤집어 덮고 밥을 덜 먹으면 밥뚜껑을 바로 해서 덮는 법, 한지문을 달 때는 문을 발에 걸쳐놓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걸어 다는 법…. 이 모두가 그때 배운 예절이다.
“할머니는 조선시대 때 태어나고 자란 조선 여인이셨어요. 그 시대 문화와 기운을 몸소 제 품에 안겨주신 셈이지요.” 사진첩을 뒤지며 겨우 한 장 챙겨두었다는 사진을 건네며 덧붙인다. “제가 있을 때 선교장 아래 연못을 다시 살렸어요. 원래 연못이던 곳이 관리를 제대로 못해 흙으로 덮여버렸는데, 그 흙을 다 파내고 돌로 둑을 쌓아 다시 물을 채워 넣은 거죠. 공사가 끝나고 할머니가 둘러보시면서 우시는 거예요.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선교장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면서 말이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아른거린다는 피터 바돌로뮤 씨. 선교장에 살면 살수록 한옥이 정말정말, 자꾸자꾸 좋아지더란다.
틈만 나면 동네 어른들과 그 오래된 집을 수리, 보수했다. 찢어진 한지문을 새로 바르고, 나무에 들기름칠을 하고, 틀어진 나무문도 새로 달면서 거의 ‘한옥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힘들었던 기억은 없단다. 오히려 그 귀한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지고 고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멋진 조선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 기쁠 따름이란다.
선교장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와 아파트에서 1년 남짓 살았을까. 답답해도 그런 답답함이 있을 수 없더란다. 다소곳한 처마 아래로 훤한 마당이 한눈에 내다보이고, 한걸음에 동네 한 바퀴 휘~ 둘러보던 선교장 시절이 그리웠다. 결국 한옥을 찾아 성북구 동소문동에 발을 들여놓았고, 돈이 아쉬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급전을 꿔다 한옥 한 채를 구입하게 되었다. ‘대나무집’은 그렇게 얻은 곳이다. 밖에서 태풍이 몰아치고 야단법석이 일어나도 이 안에서만큼은 태평시절이다. 남향이라 여름에는 햇빛이 비켜 가고 겨울이면 방 안 깊숙이 들이치는 것도 신기하단다.
1. 안방 기둥 뒤로 전기선을 감춘 센스에 주목할 것.
2, 3. 그가 반한 것은 한옥뿐만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막사발, 백자 항아리, 다기 등 우리나라 골동품 역시 그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예스러움이 좋아서 취미 삼아 한 점, 두 점 모으다 보니 앤티크 수집가가 되었고 더불어 골동품을 식별하는 안목까지 대단해졌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지어진 일명 ‘집장사’ 집이라 서까래가 짧고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없는 것이 아쉽긴 하단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앞서 살던 사람들이 이 아까운 공간을 엉망으로 망가뜨려 놓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 멋진 갑창문(한지를 문 안팎으로 두껍게 발라 미닫이문 안쪽에 덧끼워 다는 문)을 내다 버리고, 현대식으로 바꾼다고 온돌을 없애고 아궁이를 막아버리죠. 게다가 목재에 니스 칠까지 하죠.” 대대손손 자랑스럽게 가꾸어도 모자랄 한옥과 같은 옛것을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새것과 깨끗한 것만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몹시 섭섭하고 유감스럽단다.
이보다 더 속상한 것은 멋스러운 옛 공간을 수리, 보수한다며 콘크리트와 이상한 단청으로 공사해 더 망쳐버린 것을 목격할 때. 그럴 때마다 목소리가 작은 이방인인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단다. “한국인은 99.999%가 한옥이 ‘불편하다’고 말하는데 한옥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의 대답은 ‘결코 아니다’ 입니다. 온돌방, 흙과 나무, 기와의 단아함, 이렇듯 지혜롭고 멋스러운 정취를 한국인들은 왜 마다하는지 모르겠어요.”
찬 기운에 안채 앞에 유리문 새시가 세워졌다. 목재가 다치지 않게 못 하나 박지 않고 나사만 조여 세운, 한옥에서 따뜻한 겨울을 나는 그만의 비법이다. 실내외 온도차 때문인지 뽀얗게 서리 낀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마당, 나무, 대문, 처마가 실로 정겹다. 그 장면 하나면 충분하단다. 그가 결코 한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그 말 한마디로 족했다. 집주인의 정서와 한옥에 대한 마음을 지면에 담아내기에 말이다.
추가정보
한옥용 목재, 어떻게 구하고 관리할까?
속이 붉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홍송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 육송이 한옥 목재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소나무 원산지인 강원도나 경북 지역의 제재소를 찾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듯. 대부분의 제재소는 기본적으로 육송과 미송(미국산 소나무나 칠레산 소나무)을 다루기 때문에 가까운 주변의 제재소를 찾아도 된다. 원목으로 구입할 때는 아래, 위(밑둥과 끝둥)의 차이가 적을수록 좋다는 점을 기억하자. 또한 가급적 끝둥이 35cm 이상 되는 것이 좋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 것. 건조되면서 뒤틀리거나 트임이 많은 목재는 제외 1순위다. 가공 안된 목재를 구입했다면 ‘린시드 오일’을 챙기는 것이 좋다. 열매에서 짜낸 순식물성 기름으로, 습기와 직사광선에 약한 나무를 보호해주는 필수품이다. 을지로의 칠 가게에 가면 ‘본덱스’라는 명칭으로 통한다. 한 번 칠한 후, 5~6시간 지나면 기름이 목재 속으로 흡수되면서 칠이 마르며, 하루가 지난 후에 다시 칠을 한다. 아름지기(02-733-8374), 한옥문화원(www.hanok.org) 등에 문의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옥 개조, 누구에게 맡길까?
일반 인테리어 개조업체가 아니라 반드시 한옥만을 전문으로 개조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 각 지역별 문화재청에 등록된 고건축 설계사무소가 가장 권할 만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www.ocp.go.kr)의 ‘자료마당’에 가보면 고건축 보수 및 설비 전문업체들을 소개해놓고 있다. 국가에서 인정한 곳으로 믿음이 가는 만큼 공사 비용이 만만찮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문화재보전기능인협회(02-730-7773),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www.hanok.co.kr), 한국전통문화학교(www.nuch.ac.kr), 한옥문화원(www.hanok.org) 등에 문의해보는 것도 좋겠다.
미국인의 남다른 한옥사랑 30년
“흙, 나무, 종이… 딱딱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얼마나 부드럽고 자연 그대로예요. 재료들을 보면 집주인을 가장 잘 배려한 그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게다가 멋스러운 정취까지…. 몸의 기운이 절로 좋아지니 제 몸이 한옥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아무렴, 30년을 넘게 한옥에서 살아온 사람 아닌가. 온돌 문화를 예찬하는 말 한마디, 문을 여닫는 조심스런 행동 하나하나에 한옥에 대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모습에 미국인이라는 국적이 무색할 정도다. 아니, 이미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 된 지 오래인 것 같다. 직접 살아보면서 한옥 생활을 몸에 새기고 마음에 담아온 이 남자, 한국에서 23년째 ‘IRC 리미티드’라는 해양 중설비 업체를 운영해오고 있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Peter E. Bartholomew 씨다.
그의 집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늦가을. 이 동네에서 ‘대나무집’으로 불린다더니, 대문을 거쳐 중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가 싱그럽게 맞이한다. 넓진 않지만 충분히 여유로운 흙마당 한가운데 키 큰 단풍나무가 주인처럼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노랑 카펫을 깔아놓은 듯 한옥과 마당이 가을에 흠뻑 빠진 모습이다. 하늘을 뒤덮은 듯한 단풍나무, 푸른 대나무와 기와를 얹은 나지막한 담, 이들 덕분에 주변의 콘크리트 빌딩이 감쪽같이 가려진다. 그 안에서라면 자동차 소음이나 복잡한 도심을 떠올릴 일이 없다. 낡고 오래된 나무가 주는 정감과 기와선에서 묻어나는 단정함에 스트레스와 욕심과 분주한 마음을 절로 내려놓게 된단다.
휘영청 밝은 달이 나뭇가지에 걸리는 밤이면 더욱 설렌다. 마당에 친구들 불러놓고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 부딪히다 보면 그 멋진 정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단다. 이런 공간에서 잠들고 눈뜰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는 피터 바돌로뮤 씨, 그와 한옥의 인연은 30여 년 전 강릉 선교장에서 시작되었다.
“10대 말, 그러니까 1968년에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왔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서 교사로 일했지요. 연탄은 구경도 못했고 나무로 군불 지피던 시절이었는데, 비포장길 20km를 우습게 걸어다녔죠. 그때 막걸리 한 되에 1백50원인가 했고, 맥주는 감히 구경도 못하던 때였지요.” 외국인에게서 우리나라의 ‘그때 그 시절’을 듣는 맛이 영 새롭다. 다행히 그는 그 시절을 고생스럽기보다 신기하고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미국과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오래된 공간과 앤티크 소품들을 보면서 당대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을 낙으로 여겼던 그라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모든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 무렵 그 지역에서 가장 잘 지은 집을 수소문해 강릉 선교장을 소개받았다. 한걸음에 달려가 둘러본 그곳, 산새와 나무와 기와지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에 첫눈에 반한 것. 시어른이 흥선대원군의 보좌관이셨던 집안의 며느리답게 기품 있고 단아해 보였다는 선교장의 안주인 할머니, 새파랗게 젊은 외국인이 한국을 알고 싶다고 하니 아량을 베풀었다고 한다. 툇마루 너머 푸른 소나무가 한눈에 내다보이던 정경, 따뜻한 온돌방에 겨울밤을 녹이던 정겨움, 그 운치에 빠져들어 한옥 없이 한시도 살 수 없는 ‘한옥 예찬론자’가 되고 말았다.
1. 햇살 아래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한지와 문살이 곱다. 선교장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곳의 문살을 사진 찍어와 그대로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2. 별도의 가구 없이 훤하게 비어 있는 건넌방. 온돌이 유난히 따뜻해 이곳에 요와 이불을 펴고 잔다.
3. 날씨가 추워지면서 마루 앞에 새시를 달았다. 행여 목재가 다칠까 못하나 사용하지 않고 나사만 조여 집 앞에 세운 것이다.
“빈 방이 정말 많았는데, 할머니가 방을 몇 개 정도 쓰겠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다 써도 되냐고 되물었죠. 그랬더니 ‘청소할 수 있을 만큼 쓰세요’ 하시는 거예요. 내심 좋아 하며 처음에는 이 방 저 방 쓰다가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딱 한 개만 사용하게 되더군요. 하하!”
‘소리 없이 강한’ 주인 할머니는 그에게 엄하고도 따뜻한 스승이었고, 어렵고도 정겨운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방을 정리 정돈하는 법, 식사 예절, 어른을 대하는 자세, 장례 문화 등 한옥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 문화는 모두 그분을 통해 익힐 수 있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켜서 머릿장에 올려두는 법, 밥을 다 먹으면 밥뚜껑을 뒤집어 덮고 밥을 덜 먹으면 밥뚜껑을 바로 해서 덮는 법, 한지문을 달 때는 문을 발에 걸쳐놓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걸어 다는 법…. 이 모두가 그때 배운 예절이다.
“할머니는 조선시대 때 태어나고 자란 조선 여인이셨어요. 그 시대 문화와 기운을 몸소 제 품에 안겨주신 셈이지요.” 사진첩을 뒤지며 겨우 한 장 챙겨두었다는 사진을 건네며 덧붙인다. “제가 있을 때 선교장 아래 연못을 다시 살렸어요. 원래 연못이던 곳이 관리를 제대로 못해 흙으로 덮여버렸는데, 그 흙을 다 파내고 돌로 둑을 쌓아 다시 물을 채워 넣은 거죠. 공사가 끝나고 할머니가 둘러보시면서 우시는 거예요.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선교장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면서 말이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아른거린다는 피터 바돌로뮤 씨. 선교장에 살면 살수록 한옥이 정말정말, 자꾸자꾸 좋아지더란다.
틈만 나면 동네 어른들과 그 오래된 집을 수리, 보수했다. 찢어진 한지문을 새로 바르고, 나무에 들기름칠을 하고, 틀어진 나무문도 새로 달면서 거의 ‘한옥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힘들었던 기억은 없단다. 오히려 그 귀한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지고 고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멋진 조선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 기쁠 따름이란다.
선교장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와 아파트에서 1년 남짓 살았을까. 답답해도 그런 답답함이 있을 수 없더란다. 다소곳한 처마 아래로 훤한 마당이 한눈에 내다보이고, 한걸음에 동네 한 바퀴 휘~ 둘러보던 선교장 시절이 그리웠다. 결국 한옥을 찾아 성북구 동소문동에 발을 들여놓았고, 돈이 아쉬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급전을 꿔다 한옥 한 채를 구입하게 되었다. ‘대나무집’은 그렇게 얻은 곳이다. 밖에서 태풍이 몰아치고 야단법석이 일어나도 이 안에서만큼은 태평시절이다. 남향이라 여름에는 햇빛이 비켜 가고 겨울이면 방 안 깊숙이 들이치는 것도 신기하단다.
1. 안방 기둥 뒤로 전기선을 감춘 센스에 주목할 것.
2, 3. 그가 반한 것은 한옥뿐만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막사발, 백자 항아리, 다기 등 우리나라 골동품 역시 그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예스러움이 좋아서 취미 삼아 한 점, 두 점 모으다 보니 앤티크 수집가가 되었고 더불어 골동품을 식별하는 안목까지 대단해졌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지어진 일명 ‘집장사’ 집이라 서까래가 짧고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없는 것이 아쉽긴 하단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앞서 살던 사람들이 이 아까운 공간을 엉망으로 망가뜨려 놓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 멋진 갑창문(한지를 문 안팎으로 두껍게 발라 미닫이문 안쪽에 덧끼워 다는 문)을 내다 버리고, 현대식으로 바꾼다고 온돌을 없애고 아궁이를 막아버리죠. 게다가 목재에 니스 칠까지 하죠.” 대대손손 자랑스럽게 가꾸어도 모자랄 한옥과 같은 옛것을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새것과 깨끗한 것만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몹시 섭섭하고 유감스럽단다.
이보다 더 속상한 것은 멋스러운 옛 공간을 수리, 보수한다며 콘크리트와 이상한 단청으로 공사해 더 망쳐버린 것을 목격할 때. 그럴 때마다 목소리가 작은 이방인인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단다. “한국인은 99.999%가 한옥이 ‘불편하다’고 말하는데 한옥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나의 대답은 ‘결코 아니다’ 입니다. 온돌방, 흙과 나무, 기와의 단아함, 이렇듯 지혜롭고 멋스러운 정취를 한국인들은 왜 마다하는지 모르겠어요.”
찬 기운에 안채 앞에 유리문 새시가 세워졌다. 목재가 다치지 않게 못 하나 박지 않고 나사만 조여 세운, 한옥에서 따뜻한 겨울을 나는 그만의 비법이다. 실내외 온도차 때문인지 뽀얗게 서리 낀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마당, 나무, 대문, 처마가 실로 정겹다. 그 장면 하나면 충분하단다. 그가 결코 한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그 말 한마디로 족했다. 집주인의 정서와 한옥에 대한 마음을 지면에 담아내기에 말이다.
추가정보
한옥용 목재, 어떻게 구하고 관리할까?
속이 붉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홍송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 육송이 한옥 목재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소나무 원산지인 강원도나 경북 지역의 제재소를 찾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듯. 대부분의 제재소는 기본적으로 육송과 미송(미국산 소나무나 칠레산 소나무)을 다루기 때문에 가까운 주변의 제재소를 찾아도 된다. 원목으로 구입할 때는 아래, 위(밑둥과 끝둥)의 차이가 적을수록 좋다는 점을 기억하자. 또한 가급적 끝둥이 35cm 이상 되는 것이 좋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 것. 건조되면서 뒤틀리거나 트임이 많은 목재는 제외 1순위다. 가공 안된 목재를 구입했다면 ‘린시드 오일’을 챙기는 것이 좋다. 열매에서 짜낸 순식물성 기름으로, 습기와 직사광선에 약한 나무를 보호해주는 필수품이다. 을지로의 칠 가게에 가면 ‘본덱스’라는 명칭으로 통한다. 한 번 칠한 후, 5~6시간 지나면 기름이 목재 속으로 흡수되면서 칠이 마르며, 하루가 지난 후에 다시 칠을 한다. 아름지기(02-733-8374), 한옥문화원(www.hanok.org) 등에 문의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옥 개조, 누구에게 맡길까?
일반 인테리어 개조업체가 아니라 반드시 한옥만을 전문으로 개조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 각 지역별 문화재청에 등록된 고건축 설계사무소가 가장 권할 만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www.ocp.go.kr)의 ‘자료마당’에 가보면 고건축 보수 및 설비 전문업체들을 소개해놓고 있다. 국가에서 인정한 곳으로 믿음이 가는 만큼 공사 비용이 만만찮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문화재보전기능인협회(02-730-7773),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www.hanok.co.kr), 한국전통문화학교(www.nuch.ac.kr), 한옥문화원(www.hanok.org) 등에 문의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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