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006-08-16 09:29] | ||||
지구촌이 연일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수은주가 수직 상승하면서 새로운 기록을 양산하고 있다. 지난 7월의 경우 영국과 독일은 100년, 네덜란드는 300년, 스위스는 140년, 프랑스와 벨기에는 50년 만에 각각 가장 뜨거운 달로 기록됐다. 알프스 3대 북벽인 아이거, 그랑 조라스, 마터호른 등을 비롯해 해발 3000m 높이의 스위스 산간 지역에서는 얼음이 녹아 내리고 있다. 아이거봉의 경우, 200만㎥의 빙하 바위가 붕괴를 시작했다.
1706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기온이 측정된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7월 평균 기온이 22.3도로 30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1950년 이후 56년 만에 7월 기온이 가장 높았던 프랑스에서는 더위로 숨지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3년 1만5000명이 더위 때문에 숨졌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역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스페인 동해안에선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며 해파리 떼가 몰려드는 바람에 피서객들이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이탈리아 농무부는 쌀과 옥수수 재배가 타격을 받아 전체 농가 피해 규모가 5억유로(약 6000억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폴란드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크고 작은 산불 수천 건이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고속도로 표면이 최고 30㎝까지 솟아올라 보수에 나서는가 하면, 영국 런던에서는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며 중심가인 소호 거리와 인근 지하철역에 한때 전기 공급이 끊기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뉴욕과 워싱턴, 보스턴 등 북동부 지역은 물론 캘리포니아 등 중서부 주에서 연일 불볕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에 따라 초폭염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각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폭염 때문에 사망한 주민이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또 젖소 1만6500마리가 폐사하는 등 가축 피해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유 생산량도 20%나 감소했다. 무더위로 에어컨 사용이 늘면서 과부하로 인한 정전 사태도 잇따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전력 예비율은 현재 5%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캘리포니아주정부는 전력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미주리주가 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으며, 일리노이 등 8개 주에서 더위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뉴욕시도 폭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규모 정전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에 나섰다. 볼티모어, 버펄로, 시카고, 신시내티 등 주요 도시들도 비상 경계에 들어갔다. 브라질에서도 가뭄과 폭염으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파라나주 등 브라질 중남부 지역은 겨울철이지만 최근 20년 만에 가장 무더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세계적 관광지인 이과수 폭포도 가뭄으로 70년 만에 최저 수량을 기록했고, 파라나주는 45개 시에 대해 가뭄 비상령을 내린 상태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장마와 태풍이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남부를 강타한 태풍 빌리스로 600여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실종됐다. 한반도 역시 집중 호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 서도 가고시마현에 5일간 1200㎜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등 큰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날씨가 세계를 바꾸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수자원 공급원인 히말라야산맥의 빙하 중 67%가 녹고 있으며 이 수자원은 몇십 년 후면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에도 만년설이 거의 사라진 상태로 현재와 같은 상황은 지금부터 1만1000년 전과 비슷하다. 북극도 빙산이 녹아 곰들이 물에 익사하거나 먹이를 찾지 못해 서로를 잡아먹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지중해성 작물인 포도나 올리브 라벤더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2003년 8월 초 섭씨 40도를 웃돌며 유럽 대륙을 용광로로 만든 기상이변은 과거 같으면 1000년에 한 번 발생할 정도였다. 하지만 3년도 지나지 않아 유럽 대륙에서는 올 여름에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기상학자들은 대부분 폭염과 폭우 등 기상이변의 원인을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지구 온난화가 원인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기상학자들은 이런 날씨의 변화 때문에 자연재해가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기상학자들은 기상이변이 더 이상 ‘이변’이 아니라 ‘일상사’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기상학자 피터 스톳 박사는 “지구 온난화 추세는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다”면서 “현재는 2003년과 같은 폭염 발생 빈도가 250년에 한 번이지만, 2040년에는 2년에 한 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폭염 발생 빈도가 몇 년 새 바뀌는 셈이다. 지구 온난화 위험을 경고하는 학자들은 또 매년 50여개가 발생하는 열대폭풍이 2025년에는 100여개로 증가하고, 현재 지구의 45%를 차지하는 말라리아 감염 모기의 서식 지역이 60%로 늘 것으로 예측한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회의적인 학자들은 20세기의 기온 상승 현상이 산업화에 따른 온실가스 방출 때문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소빙기(小氷期)에서 벗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빌 오키프 미국 마셜안보연구소 연구원은 유럽과 미주 대륙에서 나타나는 기록적인 고온 현상이 정상적인 자연현상일 수 있다면서 기온이 평균보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순환 주기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상이변은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는 현재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수분 고갈과 토양 침식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는 평균고도가 4000m에 육박하는 고원지대다. 지표면의 8%인 9만6000㎢가 만년설로 덮여 있다. 극지방을 제외할 경우 지구상에서 가장 큰 빙하지대로 세계 담수량의 6분의 1을 갖고 있는 수자원의 보고다. 중국 과학아카데미는 “매년 7%씩 빙하 규모가 줄고 있다”면서 “지금 추세라면 2016년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티베트의 평균기온은 지난 20년간 섭씨 2도가 상승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개통시킨 티베트∼칭하이(靑海) 간 철로도 영구 동토층(凍土層) 해빙에 따른 지반 침하로 심각한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막화로 황사피해도 확대되고 있다. 티베트는 최근 네이멍구(內蒙古)의 고비사막과 함께 중앙아시아의 가장 큰 황사 발원지로 떠올랐다. 중국 기상국은 매년 이 지역 사막 면적이 4%씩 늘고 있다고 밝혔다. 사막화에 따라 이 지역에서 발원하는 거대 하천들의 물 부족 현상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티베트에서 중국의 황허(黃河)와 양쯔(長江)강뿐만 아니라 갠지스, 인더스, 브라마푸트라, 메콩강이 시작된다. 아시아인 30억여명이 티베트 빙하에서 시작되는 물에 생존을 의지하는 셈이다. 지구촌의 물 부족은 이미 미래의 분쟁 원인으로 예고되고 있다. 유엔은 지난 3월 ‘물-공유된 책임’이라는 584쪽짜리 보고서를 통해 21세기 들어 물 분쟁이 에너지 분쟁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지난 20세기 세계 인구는 2배 늘어났지만 물 사용량은 6배나 급증했다면서, 인구 증가에 맞춰 2030년까지 세계 식량공급이 현재보다 55% 늘어나면 물 사용량은 더 급격히 증가해 30억명이 물 부족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식량 및 공업생산과 직결된 물을 확보하려는 국가와 지역 간 갈등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중동지역의 경우,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에 달하는 데 반해 수자원은 1%에 불과해 ‘물 전쟁의 화약고’로 손꼽히고 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의 원인이 시리아가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이집트 수단 등 아프리카 8개국의 나일강 쟁탈 분쟁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터키와 시리아는 유프라테스강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계속 벌이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브라마푸트라강을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도 물 부족이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2개국 이상을 지나는 국제 하천은 50개국에 241개에 이르고 세계 인구의 40%가 인접국의 물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 부족은 국제 분쟁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0년간 전 세계에서 사막화로 고향을 떠난 인구는 1억3500만명이다. 이스마엘 세라젤딘 세계물위원회 위원장은 “21세기의 전쟁은 물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면서 “산유국이 카르텔을 형성해 석유자원을 무기화했던 것처럼 머지않아 물이 풍부한 국가들이 물을 무기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상이변은 전염병의 원인도 되고 있다. 영국의 정부정책연구소는 지난 5월 2080년까지 6700만명 이상이 말라리아 감염으로 사망하는 등 아프리카 대륙이 최대 피해 지역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새로운 전염병도 인류를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날씨가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때문에 각국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미래의 재해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경우, 내년부터 수퍼컴퓨터인 ‘지구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태풍, 홍수, 가뭄 등 기상이변을 예측하고 재해에 대비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도 이미 세계에서 연산 속도가 가장 빠른 최신형 수퍼컴퓨터를 제작, 장기 기상예보 및 자연재해 방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체 수퍼컴퓨터 제작에 들어갔으며,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인공 강우 등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구촌의 공동 대응노력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 전 세계 주요 정치인과 학계, 업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태스크 포스팀이 작성한 ‘기후변동에 대한 대응’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스티븐 바이어스 전 영국 교통장관과 올림피아 스노 미국 상원의원(공화, 메인주)이 공동책임을 맡고, 영국 공공정책연구소, 미국 진보연구소,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소 등이 참여했다. 보고서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2℃ 상승하면 인간생활과 지구촌은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면서 경작 불가 지역의 확대, 가뭄과 물 부족, 해수면 상승과 산림 황폐화 등 기후변화에 따라 앞으로 10년 내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8개국(G8)은 2025년까지 전체 전력생산의 25%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고, 2010년까지 저탄소에너지 기술 연구비를 두 배로 증액하고, 중국과 인도 등과 기후변화 대책그룹을 결성할 것을 촉구했다.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의 공동창립자인 패트릭 무어를 비롯해 그동안 핵에너지를 기피해 왔던 환경운동가들 중 일부도 핵에너지 이용 찬성론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는 그만큼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이 원전 건설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는 이처럼 식량과 에너지 및 식수 부족 등을 초래할 수 있는 국가안보의 새로운 위협 요소가 됐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truth21c@empa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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