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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과학을 알면 명화에 숨겨진 비밀이 보인다

by 하공별자함 2007.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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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과학과 예술의 만남’ 전시회 열려… 마네·피카소·쇠라의 그림 소개돼

서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예술과 과학을 하나로 봤다. 피타고라스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은 모두 과학과 예술의 양수겸장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에서 예술과 과학을 통합한 고대 그리스 시대의 거장을 그려냈다.

“가운데 왼쪽 사람이 관념세계를 대표하는 플라톤이고 오른쪽의 파란 옷이 과학과 자연계를 의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왼쪽 아래 책에 뭔가를 쓰고 있는 사람은 피타고라스이고 오른쪽 아래에 컴파스를 왼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유클리드이다.” 사비나 미술관 큐레이터 우선미씨의 설명이다. 고대 그리스의 당시 모습은 현대 영어에도 나와 있는데 예술을 뜻하는 art는 기술로도 해석된다. 요즘도 기술과 관련해서는 예술적 수준의 기술에 감동을 받을 때 art라는 말을 사용한다.

과학으로 본 서양의 미술 대작과 현대 한국예술가들이 과학을 주제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하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sciart.scienceall.com)이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 코엑스 인도양홀에서 열린다. “마네·달리·피카소를 비롯한 거장의 널리 알려진 그림을 과학을 통해 보면 예술과 과학이 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시회를 진행하는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의 설명이다. 전시회 일부를 지면으로 먼저 만나보자.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왼쪽)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오른쪽)


화소(pixel)와 쇠라


자연은 연속적이지만 자연을 눈으로 볼 때 얻는 이미지는 불연속적으로 바뀐다. 수학에서 수직선상의 1과 2 사이에는 빽빽이 셀 수 없는 수가 있듯이 빨강색과 주황색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빨강과 주황을 섞어 놓은 색이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이 색을 눈으로 받아들일 때부터 불연속적으로 바뀐다. 이유는 눈이 색을 구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위에 있는 LCD모니터나 디지털카메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피사체를 분할해서 이미지를 전기신호로 바꿔 카메라에 저장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피사체를 분할하는 기본 단위를 화소(畵素·pixel)라 부른다. 600만화소짜리 디지털카메라는 피사체를 600만개로 잘라 전체 화면을 구성한다. 피사체를 분할할 때 아주 작은 단위로 자르기 때문에 일반인은 화면이 작은 점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1885년 프랑스 화가 쇠라(G.P. Seurat)는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그림을 그렸다. 쇠라는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점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6㎡가 넘는 이 대형 그림을 일일이 점을 찍어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했다. 실제로 쇠라는 당시 뛰어난 광학자였던 헬름홀츠(H. Helmholtz)의 이론을 열심히 연구했다.

한 점으로는 의미가 없지만 점을 모아 물체의 모습을 구현하는 방법을 점묘(點描)법이라 부른다. 쇠라의 점은 디지털카메라의 점보다는 훨씬 커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쇠라의 그림을 멀리서 보면 점은 보이지 않고 점이 이루는 이미지만 보인다. 마치 디지털카메라에서 점을 알아보지 못하듯이.

시각의 겹침,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한때 얼짱 각도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아무리 추남·추녀일지라도 보기에 따라서는 미남·미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때 미남·미녀처럼 보이게 하는 각도를 얼짱 각도라 한다. 실체와 이미지와의 간극이 때로는 너무나 커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사람이 3차원의 물체를 볼 때 한 면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길다란 원통을 세워 놓고 원통 위에서 보면 원으로 보인다. 원통을 옆에서 보면 직사각형으로 보인다. 이를 건축에서는 평면도, 입면도라 부른다. 입면도에는 정면도와 측면도가 있다.

피카소(P. R. Picasso)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을 처음으로 보면 얼굴의 기괴함이 눈에 띈다. 이는 아비뇽 지역에 안면근육에 문제가 있는 아가씨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고 옆 모습과 앞 모습을 한 화면에 모두 담았기 때문이다. 화가는 기본적으로 시각에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피카소는 옆 모습과 앞 모습을 동시에 기억할 정도의 뛰어난 능력으로 측면도와 정면도를 동시에 겹쳐 그렸다. 피카소의 그림을 바탕으로 옆 모습과 앞 모습을 연결하면 건물의 조감도처럼 인물의 입체적인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피카소를 입체파로 부르는 연유이다. 다만 피카소는 현대과학으로도 불가능한 투시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림 속 인물 모두가 옷을 입지 않고 있다.

15세기에 숨겨진 디지털

▲ '매맞는 예수' 재구성

‘십자가의 전설’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카(P. Francesca)는 ‘매 맞는 예수’라는 그림을 1465년에 그렸다. 이 그림을 보면 오른쪽에 있는 세 사람은 크게 그렸다. 그들은 뭔가를 의논하고 있다. 입은 옷으로 봐 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 듯하다. 왼쪽에 있는 다섯 사람은 작게 그렸다. 옷을 벗고 서 있는 사람이 예수다. 그를 둘러싼 사람은 예수에게 고통을 주려고 고문을 하고 있다. 이 그림에 대한 의문은 화가 프란체스카가 제목은 ‘매 맞는 예수’라고 하면서 오른쪽에 있는 크게 그린 세 사람에게 강조를 두었다는 점이다. 프란체스카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무엇인가? 현대 과학 기술의 총아 컴퓨터가 답을 제시했다.

크리미니시(A. Criminisi)는 1999년에 펴낸 책에서 그림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일반적인 성인이라는 가정 아래 컴퓨터로 재구성했다.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키가 엇비슷할 터이니 왼쪽에 작게 보이는 무리는 오른쪽에 비해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추론에서 그림을 재구성했다. 재구성한 그림을 보면 예수가 오른편에 위치한 사람들에 비해서 10여m 뒤에서 채찍을 맞고 있다. 왼편에 등을 보이고 서있는 사람도 크리미니시의 구성에 따르면 예수보다 2~3m 정도 앞에 있다.

이런 상황 설정은 예수의 수난을 기록한 성경과도 부합한다. 결국 예수가 채찍을 맞을 때 오른편에 있는 제사장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는 바로 옆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예수에게 채찍을 가하는 사람 못지않은 책임이 있음을 고발하고픈 작가의 의도가 적절히 버무려진 결과이다. 프란체스카는 원근법에 자신의 의도를 담아냈다. 사실 프란체스카는 화가이기도 했지만 뛰어난 수학자여서 기하학 서적을 남기기도 했다.

만일 원근에 따라 재구성한 그림처럼 프란체스카가 그렸다면 왼편이나 오른편 모두를 선명하게 그릴 수 없었다. 오늘날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사진을 고해상도로 찍은 후 마우스로 커서를 움직여 보고자 하는 쪽을 확대해서 보면 이 난점을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 없었다. 

▲ 프란체스카의 '매맞는 예수'(왼쪽) 마네의 '폴리베르제르 바'(오른쪽)


상대성이론과 마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대가 마네(E. Manet)는 ‘폴리베르제르 바’라는 그림을 남겼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림의 하단에 다양한 술병이 보인다. 주인공인 아가씨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아가씨는 작가 마네를 보고 있지도, 그림 밖의 우리를 보고 있지도 않다. 아가씨가 보는 사람은 검은색 모자에 콧수염을 기른 신사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아가씨가 서 있는 뒤쪽에는 거울이 있다. 마네는 거울에 비친 모습도 세세히 그렸다. 거울 속으로 아가씨 앞에 앉아 있는 여러 사람과 샹들리에도 볼 수 있다.

마네는 그림 오른쪽 위에 아가씨와 마주 서 있는 신사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그려 놓았다. 아가씨가 주는 약간 삐딱한 눈초리는 신사에게 향하고 있으니 오해 말라는 마네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아가씨의 정면에 신사가 서 있으니 거울 속 신사의 위치도 아가씨의 바로 뒤에 잡혀야 하는데 대략 45도 정도 옆에서 보인다는 점이다. 뒤편의 거울이 일직선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튀어 나오면 신사의 위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가씨의 뒷모습이 사각이 아니고 정면으로 잡혔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가씨의 오른쪽 귀가 명확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신사와 아가씨의 거리도 무척 가깝지만 신사 얼굴 역시 뚜렷하다. 마네는 아가씨를 지난 빛을 휘어잡아 45도 정도로 꺾어 오른쪽에 박았다.

빛의 대표적인 속성을 꼽으라면 직진을 말하는 이가 많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운 내용이다. 빛이 직진하는 공간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적용된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기하학은 모두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1916년 아인슈타인(A. Einstein)은 빛이 우주를 지날 때 직진하지 않고 휘어져 움직인다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내놓았다. 이런 공간에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적용된다. 빛은 질량이 없는 무중력을 지날 때만 직진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운 빛은 직진한다는 명제는 다소의 전제가 생략된 셈이다. 마네 그림에서 보이는 모순을 일반상대성 이론에 결부시키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오른쪽에 엄청 무거운 질량이 있어서 빛이 휘어져 갔다면 가능하다. 아인슈타인보다 반세기 정도 먼저 활동한 마네가 동시대인보다는 자유로운 사고를 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조호진 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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