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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로메다 은하 |
1929년에 천문학자 허블(E. Hubble)은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관찰 결과를 발표했다.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특정한 몇몇의 별이 멀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별 무리인 은하 전체가 멀어지고 있었다. 모든 별이 멀어지고 있다면 별이 자리잡고 있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꼬마 아이가 파란색 고무풍선에 바람을 집어넣으면 풍선은 점차 커지고 부풀어 파란 색깔은 점차 옅어진다. 이처럼 지구가 속한 그 광활한 우주도 팽창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별과 별이 멀어지고 있다면 과거에는 별끼리 서로 가까웠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시계를 되돌려 몇 백억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우주는 현재보다 훨씬 작고 심지어 한 점이었다는 암시를 허블의 발견에서 읽어낼 수 있다”고 KAIST부설 고등과학원(KIAS) 계범석 박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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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무트 박사(왼쪽)와 매서 박사. |
우주가 과거 한 점에서 폭발했다는 빅뱅이론을 실험으로 확인한 공로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과 미항공우주국(NASA)의 매서(John Mather) 박사와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스무트(George Smoot) 박사는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는 뉴턴 이래 최고의 물리학자로 평가 받는 아인슈타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인슈타인이 만든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은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는 직진하지만 질량이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직선이 아닌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우주를 풀어보니 정적인 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적인 우주가 나왔으나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억지로 우주 상수를 도입해 우주는 영원·불변이라는 소신과 맞추려 했다”고 KAIST물리학과 최기운 교수는 말했다. 이때가 1917년으로 허블이 우주팽창을 발견하기 12년 전이다. “허블의 우주팽창으로 본래의 방정식이 맞게 되자 우주 상수를 폐기했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 도입을 일생 최대의 실수라고 자평했다”고 최기운 교수는 덧붙였다.
허블의 관찰로 비롯된 우주팽창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옷을 입고 형체를 갖게 된다. “훗날 가모프(G. Gamov)의 연구로 허블의 우주 팽창은 빅뱅이론으로 발전했다”고 계범석 박사는 말했다.
문자 그대로의 엄청난 폭발을 가진 ‘빅뱅’이라는 용어는 기업이나 정치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사용된다. 과거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과격한 변화를 빅뱅이라 부른다. 거대 은행끼리의 인수합병이 일어나면 언론은 ‘금융계의 빅뱅(Big Bang)’이라고 제목을 단다. 하지만 “그런 건 우주의 빅뱅과 비할 바가 못 된다”고 고등과학원 김정욱 교수는 평가한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빅뱅으로 우주가 폭발하고 38만년이 지났을 때 우주 온도는 약 3000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는 엄청 커졌으니 우주공간은 엄청 뜨거웠다가 지금은 식었어야 한다. 이를 계산해 보면 절대온도로 약 3도이다. 절대온도 0도는 섭씨 ―273도에 해당한다. 우주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전자기파를 측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열을 가진 모든 물체는 온도에 맞는 적외선 같은 전자기파를 외부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뜨거운 난로가 빨간색을 띠는 이유도 이와 같다. 난로가 식으면서 내보내는 적외선도 줄고 색깔도 빨간색이 옅어진다. 이런 원리에 따라 빅뱅을 경험한 현재의 식은 우주는 전자기파 중에서도 절대온도 3도에 해당하는 극초단파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따라서 “빅뱅이 이론물리학자만의 추론에서 우주의 실체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극초단파 측정이 필수적이었다”고 김정욱 교수는 설명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우주의 극초단파를 찾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예상외로 실험적 결과는 잘 나오지 않았다. 허블의 발견 이후로 36년이 돼서야 실험적 증거가 발견됐다. 그것도 우발적이었다. 1964년 미국의 AT&T 벨 연구소의 펜지아스(Arno Penzias) 박사와 윌슨(Robert Wilson) 박사는 라디오 파장의 빛을 관측하려고 뉴저지에 전파망원경을 설치했다. 원했던 자료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잡음(noise) 신호가 관측됐다. 잡음을 제거하기 위해 별별 걸 다했으나 없어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잡음이 혹시 본인들이 모르는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프린스턴 대학의 천체물리학자 디키(Dicke)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빅뱅이론의 태두 가모프가 예언했던 우주의 극초단파를 당신들이 측정했다”고 이들에게 알려줬다. 연구성과는 1965년에 발표했다.
이들의 성과는 허블의 관측으로 촉발된 빅뱅 이론의 첫 번째 실험적 증거였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한 공로로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한편 이들이 얻은 데이터의 의미를 알려준 디키 교수는 좀 허탈했을 것이라고 김정욱 교수는 전한다. “노벨상을 받은 두 교수가 데이터의 해석에 도움을 요청할 당시 디키 교수 역시 극초단파 측정을 위한 실험을 준비 중이었다”고 김정욱 교수는 말했다.
천체물리학계는 이후 우주의 전자기파가 극초단파 영역에 속할 뿐 아니라 극초단파 중에 어떤 전자기파가 우주에 많고 적은지 알고자 했다. 왜냐하면 독일의 물리학자 플랑크(M. Plank)가 정립한 법칙에 따르면 물체의 온도에 따라 어떤 전자기파를 많이 방출하는지 정해지고 이는 지구상에서 수차례 실험으로 검증됐기 때문이다.
“빅뱅이론이 맞는다면 빅뱅이론이 예측한 우주의 온도에 따라 플랑크 법칙이 성립해야 한다”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김제완 교수는 말했다. 또한 우주 전자기파는 공간에서 균일(isotropic)해야 한다. 공간에서 균일해야 한다는 의미는 우주 전자기파가 측정된 어떤 각도에서도 골고루 분포돼야 한다는 뜻이다.
인류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지구 외부, 즉 우주에서 이런 실험이 가능해졌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매서 박사와 스무트 박사는 우주 전자기파가 플랑크 법칙에 들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1989년 11월 18일 코비(COBEㆍCosmic Background Explorer) 위성을 발사했다. 1992년까지 위성 코비는 우주 전자기파가 플랑크 법칙을 정확히 만족하고 각도에 따라 10만분의 1 정도 차로 균일함을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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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윌슨(왼쪽), 펜지아스 박사. |
우주 공간의 온도 또한 아주 정확히 측정했는데 절대온도로 2.725°였다. 이 실험 결과는 펜지아스·윌슨의 실험에 이어서 시초를 가진 빅뱅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업적이었다. 실험의 두 주역 매서·스무트 박사는 노벨상 수상이 확실시 됐다. 문제가 발생했다. 과학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스무트 박사는 연구업적을 독차지 하고 싶었는지 과학저널에 발표하기 전에 1992년 버클리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단독 기자회견을 가졌다. 연구팀과 어떤 의논도 없었다.
또한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부탁해 자신의 연구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언론에 말해 달라는 전화까지 한다. 실제로 호킹 박사는 “세기의 과학적 발견이고 노벨상 수상이 확실시 된다”고 말했다. 김정욱 교수는 “스무트 박사가 굳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인정할 만한 노벨상감”이라고 말했다. 결국 스무트 박사의 이런 행동 때문에 매서 박사는 스무트 박사와 결별했다. 스무트 박사는 다른 연구원의 신뢰도 잃어버려 연구팀에서 배제됐다. 결국 실험 발표 당시의 예상대로 매서와 스무트 박사는 이 공로로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올 12월에 있을 노벨상 수상식에서 매서가 스무트를 어떻게 대할지 주목된다.
이론물리학자들이 예측한 빅뱅이 매서와 스무트의 실험으로 검증됐다. 그러나 빅뱅은 여전히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를 남겨 놓고 있었다. 바로 빅뱅이 한 번 일어났느냐 아니면 수차례 일어났느냐가 의문이었다. 수차례 빅뱅이 있었다는 것은 빅뱅 이후에 우주가 팽창을 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에는 수축해서 다시 한 점으로 오그라든 과정을 반복했다는 의미이다. 이 이론이 맞는다면 우주의 시초나 종말이 의미가 없다. 세계관적으로는 “무신론적 천체물리학자들이 선호했다”고 김정욱 교수는 설명했다. 우주가 한 번 빅뱅을 일으키고 점차적으로 팽창했는지 아니면 주기적인 빅뱅이 있었는지를 천체물리학자들은 당연히 판가름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부메랑(BOOMERANG·Balloon Observation Of Millimetric Extragalactic Radiation ANd Geophysics)이라는 이름의 연구를 1998년에 시작했다. 우주의 밀도, 즉 단위 부피에 얼마만큼의 질량이 있는지를 측정하는 게 이 실험의 목적이었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해 보면 밀도가 10-29g/㎤보다 크면 우주는 수차례 빅뱅을 가졌고 같거나 작다면 한 번의 빅뱅을 가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부메랑이 측정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주는 한 번의 빅뱅을 가졌다고 천체물리학자들은 판단했다.
2001년의 연구 결과이다. 당시 이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과학저널에 실리기 전에 뉴욕타임스 4월 30일자 1면에 실렸다. “그 정도로 중요한 업적이 2001년이라는 새천년이 돼서야 규명됐지만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그 전부터 당연히 빅뱅은 1회라고 생각한 점이 특이하다”고 김정욱 교수는 말했다. 우주는 한 차례 빅뱅 이후 점차 팽창을 한다고 천체물리학계는 부메랑의 실험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제 남아 있는 주요 과제는 우주가 지속적으로 커지지만 한계를 정하고 커지는지 아니면 무한히 커지는지 여부이다.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 ropy Probe)위성이 이를 위해 우주로 2001년에 발사됐다. 여기에 초신성(supernova)의 연구가 더해져서 우주의 팽창 정도를 가늠하게 된다. 초신성은 우주의 나이를 알아내는 데 기준이 된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우주의 무한 팽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이다.
빅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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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억년 전에 한 점이었던 우주가 폭발
빅뱅(Big Bang)이란 137억년 전으로 거슬러 가면 현재의 우주는 한 점이었고 한 점인 우주가 폭발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천체물리 이론이다. 빅뱅이라는 말은 또한 한 점에서 우주가 시작됐을 뿐 아니라 순식간에 엄청 커졌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1979년에 노벨상을 받은 와인버그(S.Weinberg) 같은 물리학자에 따르면 현재의 우주가 한 점에서 10-35~10-32초 사이에 1030이상 커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팽창했기에 팽창을 넘어 빅뱅(영어의 bang은 폭발의 뜻을 갖고 있다)이라 부른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10-32초 이후 137억년 동안 팽창을 해서 1㎝는 1023㎞가 됐다. 10원짜리 동전이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의 300조배로 커졌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빅뱅 이전, 즉 태초 이전의 우주는 어떠했을까.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를 “북극에선 북쪽이 없다(There is no north direction at the north pole)”라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시간을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는 태초에 도달한다. 하지만 태초에서 더 먼 과거는 없다. 북극에서는 오직 남쪽밖에 없으며, 북극에 서 있는 사람은 어느 쪽으로 넘어져도 남쪽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빅뱅 당시에는 미래라는 시간의 방향만이 존재한다.
초신성과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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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팽창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초신성 “1604년 조선에서도 관측” 실록에 기록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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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1604년 10월 13일(음력 9월 21일)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초신성 관찰자료. | 사람이 보기에는 영원할 별들도 노화를 겪는다. 임종을 맞아 죽기도 한다. 별이 빛을 잃어버리거나 내부 붕괴하면 임종에 해당한다. “임종을 맞는 별의 질량이 태양보다 1.4배 이상이면 마지막 순간에 대폭발을 해서 태양보다 많게는 몇 억 배의 밝은 빛을 내면서 타버린다”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제완 교수는 설명한다. “이렇게 폭발하는 순간 너무 멀리 있었던 까닭에 보이지 않던 별이 갑자기 밝아져 지구에서 보면 새로운 큰 별이 나타난 듯 보인다”고 김제완 교수는 덧붙였다. “큰 별이 새로이 나타났다는 뜻에서 초신성(超新星·supernova)이라 부르고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경우는 대개 300~400년에 한 번씩 생긴다”고 김정욱 교수는 설명한다. 우리 선조들은 초신성을 객성(客星·손님별)이라고 기록했다. “아마도 하늘에 불쑥 나타난 손님으로 생각한 모양이다”라고 김제완 교수는 설명했다. 1604년 전지구적으로 초신성을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었는데 이탈리아의 코센자(Cosenza), 뉴턴의 스승인 영국의 케플러(Kepler) 그리고 우리의 이름 모를 사관(史官)이 초신성을 기록했다. 1604년이면 조선 선조 37년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당시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기록을 인터넷(e-kyujanggak.snu.ac.kr)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을 보여 주는 규장각 자료는 연도를 제외하고는 음력임에도 ‘서기력’이라고 표시해 혼란을 준다. 이를 모르는 일반인은 헛고생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신성을 기록한 서기 1604년 10월 13일자는 음력 평달 9월 21일이므로 9월에 가서 찾아야 한다. 음력·양력 변환은 한국천문연구원(kasi.re.kr)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1604년 9월 21일자를 클릭해서 보면 ‘夜有一更客星在尾宿十度去極一百一十度形體小於歲星色黃赤動搖五更有霧(초저녁 손님별이 미수 10도 거극 110도 자리에 있었는데 목성보다 작고 적황색 빛깔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이른 새벽녘에는 안개가 끼었다)’로 나와 있다. 여기서 거극은 북극성으로부터 벌어진 각도이다.
1987년 김제완 교수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 해는 남극에서 초신성이 관측돼 당시 미국 언론이 초신성을 여러 차례 다루고 있었다. 김제완 교수도 존스홉킨스 대학의 도서관에서 초신성 관련 서적을 찾고 있다가 ‘초신성의 역사(The Historical Supernovae)’라는 영국에서 나온 책을 보고 깜짝 놀란다. 책의 저자인 클라크(D.Clark)와 리처드(S. Richard)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초신성 관측 자료를 실어 놨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초신성을 보여주는 그래프를 그렸다. 김제완 교수는 당시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로 있던 김정욱 교수에게 알렸고 조선왕조실록 확인을 위해서 서울대 유경로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경로 교수는 과학사의 1세대로 평가 받는 학자이다. 유경로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9개월이 넘도록 초신성을 관측한 자료가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이처럼 중요한 기록을 우리 천문학자가 먼저 발견하지 못한 게 아쉽다”라며 김제완 교수가 말했다. 초신성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옆 그림에 나온 형태1과 형태2이다. “당시 케플러를 비롯한 유럽 학자들이 관측한 자료를 보면 형태1의 가장 중요한 꼭지점 근방이 없다. 우리의 조선왕조실록 자료가 가장 중요한 시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사실 여러 날을 밤에 관측할 수 있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아마도 우리나라의 가을이 워낙 맑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고 김정욱 교수는 말했다. | |
조호진 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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