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구에서 찍은 모란봉구.
얼어붙은 대동강 건너편으로 승리광장이 보인다.
이제는 주체사상은 실패하고 파산했을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대동강으로 이어지는 보통강이라고 북한에서도 유명한 평양의 관광지이다.
사진의 탑은 주체사상탑이라고 불리는 탑(인 것 같다.).
평양 전경.
봉화산 호텔로 가는 칠성문거리이다.
이 부근에 지하철역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타국인은 평양 시내를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게 제한되어 있다.
지하철 이용 역시 제한되어 있으므로 실질적인 필요는 거의 없다.
당시 2호선에 일부 3호선이 연결되어 있고 5호선까지 계획되어 있었다.
개성역 부근에 설치된 조형물.
전승혁명사적관으로 가는 길.
전승혁명사적관 구역의 일부 전쟁혁명군을 기리기 위한 납골당? 비슷한 곳.
이 부근에 평양방송국이 있어 그곳에서 만수무강 쇼를 관람했지만 사진반입 금지라 촬영을 못했다.
그 좁은 무대에서 쇼를 펼쳤던 건 정말 박수를 10분쯤 쳐도 손아구가 아프지 않을만큼 장관이었다.
경창리 의사당.
만수대거리 소련대사관 부근.
모란봉거리 교예극장 부근.
룡성 관광구역으로부터 평천 시가지로 돌아오는 륜환도로에서.
이러한 관광지나 유적지는 관광객으로 위장한 감시관들이 산재해있다.
이곳에서 관광객은 본인과 동행한 1명 외에는 없었던 걸로 보아 사진의 아주머니 역시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평양에서 유명한 냉면집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사람들 검게 그을린 피부 탓에 로동자로 보이겠지만 북한에서는 무역패로 불리우는 상당한 고위층이다.
아마 간판이 옥류관이었던 것 같은데 이 냉면집이 워낙 유명하여 중국 북경 분점에서도 남한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사회안전부 소속의 교통안전원은 차를 타건 오토바이를 타건 항상 헬멧을 착용한다.
어린아이들이 보이면 꼭 쫓아가 손을 잡고 같이 길을 건넌다.
개선역에 있는 개선문.
개선문 기점으로 우회전하면 개선 기차역이 있다.
개선문에 새겨진 1925와 1945는 김일성이 이룬 업적에 해당하는 년도수인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서성구역 서성제1중학교.
경상리 축구경기장 옆 광장.
평양에는 관광객이 들를 수 없는 구역이 있고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는 장소도 있다.
사진은 촬영 금지구역에서 찍은 조선로동당 사옥.
주체선전에 찌든 광복거리 풍경.
광복거리의 대형 아파트와 그들의 생활수준을 남한에 비하자면 타워팰리스에 견줄만한 수준이다.
머무는 동안 묵었던 서산호텔.
북한사람들은 호텔을 초대소라 부르기도 한다.
호텔 내에 디스플레이된 김정일의 초상.
인민무력성은 현재 인민무력부로 명칭이 바뀌었고 인민무력부는 실질적인 북한 군사지휘체계의 주축이다.
예하로 44부와 작전국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부서는 무기수출과 간첩파견 업무를 담당한다.
호텔에서 보이는 월향동 전망.
평양시민들은 매일 아침 7시 30분 특정장소에 모여 '친애하는 수령'이라는 김일성의 대형 그림 앞에 서서 10분간 영창조로 노래를 부른다.
그런 후에 각자 일터로 떠난다.
우리가 묵던 호텔 34층 복도에서는 김책대학교가 보였다.
7시 30분, 사람들은 김책대학교 앞에서도 모였다.
호텔의 여성 안내원.
안내원 복장이 남자는 양복을 여자는 한복을 입도록 규정되어있다.
호텔 내 방명록.
담당 코너에서 인조석이나 플라스틱에 주문 받아 새겨준다.
인민대학습당, 평양광장.
북한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은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며 ID 카드를 체크한 후에 콤퓨타를 이용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여러 곳에서 촬영한 평화자동차의 휘슬이라는 자동차의 광고판이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이 광고판은 당시 북한에서 처음 도입된 '현란한 그림을 그려넣은 빌보드식 광고판'이라고 한다.
김일성 광장 주변은 전날 가보았던 두 군데에 비해 매우 한적했다. 그 도로는 1분의 많아봐야 차 1대가 지나갈 정도라고.
서울의 청담2동같은 동네는 평양의 인도에 갖다대지도 못할만큼 평양의 인도는 깔끔했다. 평양은 겨울 동안 기온차가 커서 겨울 내내 대부분의 빌딩과 가옥의 유리창에 플라스틱 시트를 붙여놓다가 해빙기가 지나면 시트지를 떼어낸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교통정리계쯤 되겠는데 이 경찰은 한겨울(11월에서 1월)과 여름(7월에서 9월) 동안만 운용된다고 한다.
김일성 전신상이 새워진 만수 대거리이다. 만수 대거리에 내리면 김일성 장군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북한돈 4천원을 지불해야한다. 이곳에는 조국해방 전승사적관과 만수기념관이 있다.
방문 당시 막 신축된 통일가 시장이다. 통일가 시장은 중국기업인 신훠에서 관장한다. 이곳의 내부는 촬영 금지구역이다. 다른 곳에 비해 무엇을 사거나 단순 관광으로 들어간 외국인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다.
원산호텔의 식당에서 아점으로 먹을 고기를 구웠다.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의 한 사람인 북씨(성이 북)의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사진을 너무 많이 찍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 북한과 북한의 지도자격인 김정일에 대해 그와 가벼운 얘기를 나눴지만 나와 내 부친은 그와 결코 정치적으로 심도있는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종종 마주치는 정장을 입은 북한 원주민들은 항상 바빠 보였다. 사진에서도 메모지를 보며 체크아웃을 언제 할 것이며 지하철은 언제 탈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하는 중. 교양인들이 사용하는 평양말의 억양이 매우 격조 있다고 느낀 건 나와 내 부친 마찬가지로 동감했다.
호텔에서 나온 직후 강변에 정박한 러시아제 푸에블로를 보러 갔다. 유럽에서 온 관광객이 촬영을 하다가 필름을 빼앗기고 잡혀간 적이 있다며 사진촬영을 극구 말렸다. 곧 북한국영방송에서 나온 촬영기사가 함께 탑승하고 배는 떠났다.
사적관에서 모형 푸에블로호와 연대기를 보게 되었다. 남한의 해군에 대해서도 기록해놓은 곳이 있었는데 내용은 대강 '남조선은 1866년 미국 정부 셔먼 장군에 의해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조약에 의해 해군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외에 미군에 대한 사실무근의 왜곡시킨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곳곳에 박혀있다. 일본 기술자와 미군 전투기 조종사가 세균탄에 감염된 적 있다는 기록도 있다.
잘못 그린 건지 북한에서 의도적으로 칠을 한 건지 그게 아니라면 당시 시선집중을 피하기 위해 이등병으로 위장을 했던 사실이 있었던 건지.. 자세히 보면 윌리엄 에프 딘 미 전투사령관이 이등병 전투복을 입고 있다. 아마 이 그림 이름이 360도 투시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투시화는 1950년 대전에서의 전투를 그린 것으로 15미터 높이에 132미터의 폭이다.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자유석공조합의 33도 계급이기도 했던 스탈린의 초상. 북한의 아이들은 마르크스, 엥글스, 레닌, 스탈린을 위인으로 교육받고 맹신하며 자라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이 땅 위에서 가장 긴장감이 도는, 남북 어느 곳의 땅도 아닌 동시에 반은 남, 반은 북의 소유, 그리고 유엔군의 소유이기도한 판문점, 바로 비무장지대, 공동경비구역이다. 사진의 도끼는 유명한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바로 그 도끼이다. 남한의 장병들이 벽을 보거나 창 안을 들여다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참을 서있었는데 뭐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으나 함부로 말을 거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삼가했다. 만지거나 말을 걸 수 있는 군인은 북한의 군관과 남한의 장교 뿐이다. 각국의 군관과 장교는 영어에도 능통하고 대게 친절하다. 관광객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북측 군관의 농담 몇마디는 가상하기까지 했다.
이곳을 둘러보기 전에 관광객을 통제하는 중립국 부사관 상사(폴란드 소속?)로부터 설명을 듣게 되는데 요약하자면 "일탈된 행동을 보이는 관광객은 사살당할 수 있습니다." 그 일탈된 행동 중에는 남북 양국 경비병 누구에게나 말을 건내는 행동 역시 포함된다. 마지막 사진 남한 경비병의 135도 각으로 팔 굽혀진 자세는 유사시 권총을 가장 빨리 뽑아들 수 있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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