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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결핵관리에 대한 제언
글_박승규(국립마산병원 결핵연구소장)
결핵은 전염병예방법 제3군 전염병으로 분류된다. 만성전염병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스(SARS ;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경우 초기단계부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스 이외에도 콜레라, 이질, 혹은 여름철이면 흔히 보도되는 비브리오 패혈증 같은 급성전염병이 발생하면 매스컴은 물론 보건당국이 연일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곤 한다.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이러한 급성 전염병들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듯 국민, 보건당국, 그리고 매스컴이 나의 일처럼 관심을 보인다. 초기에 신속한 대응으로 관리의 효과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이 급성전염병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급성전염병이 발생하더라도 지속적인 보건문제로 발전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핵은 어떠한가? 급성전염병보다 치명율이 낮은가? 나는 결핵에 걸릴 가능성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인가? 매스컴의 입장에서 보면 별로 센세이셔널하지 않은 주제인가? 보건당국의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전염병인가? 나는 그 이유를 소홀함과 무관심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감추고 싶은 질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빙산처럼 수면 아래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뿐, 해마다 3,300여명 이상의 결핵환자가 사망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항결핵제가 전혀 듣지 않는 내성결핵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결핵은 전염병이므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내성결핵에 걸릴 수 있으며, 암처럼 치명적 경과를 취하게 될 수 있다. 예전에는 가난해서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이 걸린다고 생각하였지만 요즈음은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1962년도 세계보건기구, 세계은행 등의 도움으로 국가결핵관리프로그램(NTP, National Tuberculosis Program)을 개발하여 시작한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결핵의 퇴치를 위한 현저한 업적을 이루었다. 1965년도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가 결핵환자였으나 1995년도에는 1%까지 낮아졌으니 세계보건기구가 전세계에 모델로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는 치료가 어려운 내성결핵이 발생하기 이전의 조건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현재는 보건소 단위에서만 운용되고 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의 결핵환자는 보건소와 민간병원이 각각 50% 정도의 환자를 관리하고 있으며, 보건소에서는 내성결핵환자를 민간의료기관으로 보낸다. 환경이 달라졌고, 결핵의 특성이 달라졌고, 결핵환자의 기대수준도 또한 달라졌다. 1990년대 초반 전세계적으로 난치성 다제내성결핵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제시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소위 DOTS-plus 프로그램이 이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된 국가 중 결핵유병율과 사망율이 가장 높으며 사망환자의 대부분이 난치성 내성결핵환자이다. 실상이 이러하다면 무언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하여 개인적 의견일 수도 있지만, 지난 십수년 동안 국립마산결핵병원에서 일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근거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결핵관리체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결핵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이는 어느 국가나 예외가 없다. 보건소와 민간 병․의원 이외에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소위 결핵요양소 성격을 가진 기관들이 있다. 충청북도 음성에 있는 꽃동네, 대구에 있는 밀알의 집 등 전국적으로 많은 기관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국가결핵관리프로그램에 포함시켜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결핵과가 전체적인 통합관리 및 정책개선을 지속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결핵협회, 국립결핵병원, 보건소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각각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결핵관리의 필요성 등에 대한 대국민 홍보기능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결핵관련 연구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결핵과 관련된 연구들이 산발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중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결핵관련 연구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질병과 관련된 연구예산과 비교하면 결코 많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결핵관리는 질병관리본부의 업무이므로 보다 효율적 결핵관리를 위한 일체의 결핵관련 R&D는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결핵과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연구예산을 확보하고, 결핵관련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중장기적 연구분야를 개발하고, 중복연구를 피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결핵연구는 제한된 재원으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연구진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연구대상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내기관간 혹은 국제적 공동연구를 통하여 내성결핵의 효율적 관리방안을 개발하고, 새로운 치료제 개발로 국가산업경쟁력의 제고와 아울러 동북아 R&D 허브로서의 역할, 그리고 해외 과학자의 기술훈련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항결핵제 감수성검사법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항결핵제 감수성검사를 실시하는 기관은 7개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기관들은 조금씩 서로 다른 방법으로 검사를 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결과에도 차이가 있다. 내성결핵의 처방결정에 반드시 필요한 약제감수성검사의 결과가 검사기관에 따라서, 검사방법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면 잘못된 처방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서 환자가 열심히 규칙적으로 복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치료가 실패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전문가그룹을 구성하여 현재의 검사방법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검사법의 표준화작업이 시급하게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민간의료기관과 공공의료기관간의 유기적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결핵관리프로그램시행 초기에는 정부가 주도하고 보건소를 중심으로 결핵관리가 이루어져 왔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민간의료기관에서의 결핵관리기능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결핵연구원에서 담당하는 결핵환자정보시스템은 초치료환자 중심으로 환자등록을 하며 내성검사에 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내성결핵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는 이러한 환자등록을 재발 및 난치성 만성결핵환자까지 확대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환자들의 진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매년 봄, 가을에 개최되는 전국결핵평가대회를 좀 더 확대하여 민간의료기관의 결핵관리 담당자들도 참여하여 현장에서의 문제점과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 살아온 결핵균의 생존능력은 어쩌면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난치성 다제내성결핵이라는 결핵균의 새로운 생존전략이 인류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의 건강한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통해 환자와 의료인, 그리고 정책입안자 모두가 지금도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이웃들을 위협하고 있는 결핵에 대하여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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