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장이 ‘내아들 눈 맞았으니 너도 눈 맞으라’ 계속 때렸다” | ||||
[한겨레] | ||||
[한겨레] “3월8일 오후 붙잡혀 산으로 끌려가…
김승연(55) 한화그룹 회장이 둘째아들(22)이 폭행을 당한 데 격분해 그룹 경호원들을 동원해 보복성 폭행을 한 의혹의 진상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김 회장은 직접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한겨레> 취재 결과, 경찰은 사건 다음날 거의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도 쉬쉬해 왔으며, 언론에 사건의 일부가 보도가 된 뒤에도 “내사중”이라고 연막을 피우는 등 재벌 보호에 안간힘을 썼다. 당시 김 회장 일행한테 폭행을 당한 술집 종업원들은 재벌과 경찰이라는 ‘권력’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50일 가까이 가슴앓이를 해왔다. 현장을 목격한 종업원들이 <한겨레>에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들의 신분을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고 몇번이고 당부했다. <한겨레>는 경찰과 당시 현장 부근에 있었던 다른 관계자 등을 광범위하게 취재한 결과, 이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종업원들이 육성으로 전하는 사건의 전말이다. 이들의 증언을 두고 한화 쪽은 “목격자들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중구난방으로 터져나오는 바람에 우리도 정확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김 회장이 폭행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유흥주점 종업원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증언
“때린 사람 못찾자 경호원 데리고 주점으로 향해
■ 발단=3월8일 새벽. 서울 북창동 ㅅ클럽에서 일하는 종업원인 우리들 8명은 이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이 끝난 늦은 새벽, 종종 가던 서울 청담동 ㄱ가라오케에 종업원이 아닌 ‘손님’으로 갔다. 우리 일행이 지하 1층 술집을 나오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김 회장 아들(미국 유학중) 일행이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김 회장 아들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우리 일행 가운데 한 명이 김씨와 어깨가 부딪치며 시비가 붙었다. 승강이를 벌이던 중 김씨가 떠밀리며 계단에서 굴렀다. 시비가 벌어지고 우리 일행 중 한 명과 주먹이 오갔다. 계단에서 굴러 생긴 상처인지, 맞아서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씨의 눈두덩이 찢어졌다. 우리 일행 가운데 가장 큰 형이 ‘시비가 길어져 우리 애들한테 맞으면 사건이 커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김씨에게 “술 곱게 먹으라”고 충고를 하고 끝냈다. 우리는 아침 7시께 가라오케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 1차 보복=3월8일 오후 ㄱ가라오케로부터 우리 쪽으로 전화가 왔다. “문제가 생길 것 같다. 한화 쪽이 사과를 요구하니 이쪽으로 와서 사과하라”는 내용이었다. 사과를 하면 조용히 무마가 될 거라고 했다. ‘설마 보복이야 하겠나’라는 생각에, 김씨를 때린 사람은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내세워 종업원 5명이 가기로 했다. 이날 새벽에 술 마시던 우리 일행은 8명. 사람 수가 모자라 ㄱ가라오케 종업원 3명을 끼워넣었다.
가자마자 우리들은 경호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한 산으로 끌려갔다. 어두운 산이었다. 누군가 작은 손전등을 하나 켠 뒤 얼굴을 비췄다. 미국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아들을 때린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우리가 “이 사람”이라며 대신 지목한 사람의 양팔을 경호원들이 붙잡았다. 김 회장이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너도 눈을 맞으라”며 눈을 계속 때렸다. 그 사람이 김 회장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눈이 만신창이가 됐다. 경호원들은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도 들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일행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총처럼 보이는 것으로 위협도 했다. 김 회장 아들을 때린 사람이라며 대신 나섰던 사람이 “나는 때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김 회장 일행은 진짜 때린 사람을 찾아야겠다며 북창동으로 향했다.
■ 2차 보복=3월8일 밤. 북창동 좁은 골목에 고급 승용차가 6~7대가 들어오더니 우리 가게 앞에 멈췄다. 경호원들이 깔렸다. 웬 남자가 나오는가 싶었는데 김 회장이었다. 경호원 두 명이 김 회장 곁에 딱 붙었다. 김 회장은 우리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을 때린 사람이 누구냐”며 주점 사장님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룸 안으로 들어간 뒤 “아들 때린 사람만 데리고 오라”고 하고는 술을 시켰다. 경호원 10여명이 주변에 쫙 깔렸다. 경호원이 아니라 ‘거물급’으로 보이는 ‘건달’ 같았다. 회칼도 차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술을 마셨다. 김 회장이 “너희들은 뭘 하는 ×들이냐”며 경호원 가운데 높아 보이는 사람을 때렸다.
김 회장 아들이 5분 뒤쯤 주점으로 들어왔다. 룸에 감금된 종업원들의 무릎이 꿇려졌다. 때린 사람을 데려오면 진짜로 반 죽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 사장이 김씨를 때린 사람에게 “네가 나가야 상황이 끝날 것 같다”며 김 회장 일행이 있던 방으로 들여보냈다. 김 회장이 때리려 하자 아들이 말렸다. 대신 김 회장 아들은 자기가 맞은 만큼 때렸다. 나머지 종업원들도 경호원들로부터 마구잡이로 맞았다. 룸 밖으로 ‘퍽퍽’ 소리가 날 정도였다. 3시간 넘게 공포가 이어졌다. 그날 장사는 끝났다.
■ 경찰 신고=3월9일 새벽.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경찰이 주점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신고한 사람이 누구냐”고 찾았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얼굴이 벌건 종업원들을 확인한 경찰은, 룸 몇 개를 열어봤다. 사장님이 “직원들끼리 싸웠다”고 둘러댔다. 김 회장 일행은 당시 다른 룸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지만, 경찰이 그 방 문을 열어보는지는 보지 못했다. 경찰들은 잠시 뒤 주점을 떠났다. 김 회장은 사장님에게 치료비로 쓰라고 돈을 줬는데, 뺨을 맞고 기분이 상한 사장님은 “치료비 정도는 낼 돈이 있다”며 받지 않았다. 김 회장은 술값이라며 카운터에 100만원을 집어던지고 나갔다.
■ 그 뒤=모두 6명이 다쳤는데 야산에 끌려가서 맞았던 한 명은 심각한 상태였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병원에 다니면서 통원치료를 받았다. 너무 억울했다. 그나마 나머지는 멍든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가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보복이 두려웠다. 기분을 풀려고 청담동에 가는 게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솔직히 두드려 맞기 전까지는 김승연 회장이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했다. 한화라고 해야 기껏 야구단 정도로만 알았다. 사건 다음날 경찰이 우리 쪽 식구를 불러 모든 상황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다고 한다. 왜 어제, 그 장소에서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화가 났다. 얼마 뒤에는 서울경찰청의 한 형사가 사장님을 찾아왔다. 기대도 안 했다. 울분을 술로 삭이며 50여일을 보냈다. 사건 다음날 북창동 일대에 퍼진 ‘ㅅ클럽 초토화 사건’은 잊혀져 갔다. 그런데 24일 갑자기 뉴스에서 난리가 났다. 가게 앞에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떠나질 않았다. 애써 잊으려 했던 그날의 기억이 살아났다. 어딘가 털어놓지 않으면 열 받아 죽을 것만 같았다. 이제 속이 시원하다. 특별취재반 society@hani.co.kr
▶ 종업원들 한달넘게 침묵 왜? “경호원 옷사이 생선회칼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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