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꽃, 피는 꽃의 가운데를 밟고 가는 이는 얼마나 행복할까. 서있는 것과 누워 있는 것의 결합은 언제나 조금 어긋나 있는 듯 보인다. 신라시대로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긴다. 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산에, 들에 꽃피어 있다. 불륜의 대표주자는 「처용랑 망해사」편이다. 처용의 아내는 나라를 뒤흔들 정도의 미모(傾國之色). 역신(疫神·임금이었던 것 같다)이 침을 삼키고 처용이 없는 틈을 타 그녀와 네 개의 다리를 만든다. 처용이란 정신 나간 사내, 이들의 이층집 짓는 작태를 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그 자리를 물러선다. 이런 노래까지 곁들이며…. “동경 밝은 달 아래/ 밤늦게 놀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네/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겼으니 어이하리.” 불륜의 사랑을 용서한 처용은 귀신을 물리치는 문신(門神)으로 추앙 받게 되지만…. 도끼로 사단을 내도 모자랄 판에. 처용의 속내를 짐작할 길 아득하다. 경주 남산(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깎아 세운 듯한 벼랑이 앞을 가로 막는다. 상사암(相思巖)이다. 왼쪽으로는 상선암 마애불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상사암(相思巖)은 금오산에 있다. 그 크기가 1백여 아름이고 가파르게 솟아 있어 기어오르기가 어렵다. 상사병에 걸린 이가 이 바위에 빌면 영험이 있다. 산아당(産兒堂)은 돌을 깎은 것이 마치 아기를 낳는 모습과 같다. 전설에 신라 때에 후사를 구하고 복을 빌던 곳으로 가위질을 한 흔적이 있다.” 상선암 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돌면 가위질을 한 바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바위 안에 산신당(産神堂)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바위에서 열 걸음 발길을 옮기다 문득 경주 시내가 보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절묘한 남근·여근석이 눈길을 잡아끈다. 살짝 기울어진 남근과 살짝 몸을 외로 비튼 여근이 한 자리에 있다. 전설은 또 이 바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옛날 할아버지 한 분이 이웃에 사는 어린 처녀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린다.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일, 상사병에 시달리다 목을 맨다. 죽은 할아버지는 큰 바위가 되어 우뚝 솟았다. 처녀는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큰 뱀이 목을 휘감고 괴롭히는 꿈에 시달린다. 죽은 할아버지가 상사뱀이 되어 왔다고 마을 사람들은 속삭인다. 날마다 야위어 가던 처녀는 그 바위에 올라가 떨어져 죽어버리고…. 할아버지 바위 옆에 또 다른 바위로 선다. 두 바위는 죽어서 헤어지지 않고 다정하게 서있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식물의 신 오시리스는 자신의 남근을 쥐고 있다. 풍요의 상징이다. 번식과 쾌락을 위한 성이 아니라,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이 경주 남산 상사암 앞의 남근·여근석에 스며들어 문란한 오늘의 세태를 지켜보고 있다. 눈 밝은 연인이 산길에서 잡았던 손을 꼭 쥔다. “어머! 우리도 이렇게 만나 여기에 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구나.” 하고 말을 건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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