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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사랑과 진실

노브라가 좋다 하네여^^*~

by 현상아 2007. 6. 18.
 
내가 브라를 벗어던진 지도 어느새 2년이 넘었다. 

다시 말해 내가 ‘노브라’로 지낸게 2년이나 흘렀단 얘기다.
이제부터 내가 브라를 벗어던지고, 또 노브라로 생활해 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처음 브라를 한 건 중1때였던 것 같다.
그땐 브라를 착용함으로써 내가 ‘여성’이 된 것만 같아 오랫동안 설레였다.

그러나 그런 설레임도 잠시...
밋밋하던 가슴에 몽우리가 생기고,
내가 성장하는 것과 발맞춰서 가슴도 제 모양을 찾아가기 시작하자 브라는 곧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늘 나를 옥죄이는 것 같았고,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또 브라가 비치거나 끈이 내려가는 건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
특히 여름 교복을 입을 땐, 브라를 온전히 감출 수 있는 런닝셔츠를 입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아야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모두들
신이 나서 갈아입을 옷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닷가에서 신나게 놀았드랬다.
다 놀고나니 걱정되는 건 옷을 갈아입는 것.
안타깝게도 여유 브라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벗을 수도 없고 해서 속옷은 그대로 입은채 겉옷만 갈아있었었다.
젖은 속옷을 입었으니 당연히 겉옷에 브라의 흔적이 드러났는데, 남자 아이 하나가 그걸 가지고 놀리는 바람에 그 친구한테 무지 화를 내고 말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브라는 늘 정숙하게 입어야하는 것이었고, 브라를 입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했다.
(설사 내가 브라를 했다는 걸 모두 다 알고 있다 할지라도.)
브라의 답답함도 모조리 참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브라를 왜 입는 걸까? 브라는 꼭 입어야만 하는 필수품인가?
답답하고, 불편하기만 한데 대체 왜 입어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뒤부터 집에 오면 브라를 벗어 던졌다.
브라를 벗었을 때의 그 해방감, 자유로움은 실로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브라를 벗어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때마침 그 결심을 하게 된 게 여름이었다.
더운 여름엔 브라가 더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므로 브라를 벗은 나는
정말 편안했고, 행복했다.
이 편안함을 나는 으레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 알고 외면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브라는 왜 입을까?
혹자는 가슴이 쳐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가슴이 좀 쳐지면 어때서?
내 몸을 옥죄는 답답함을 견디어내면서까지 가슴을 꼭꼭 묶어두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우리의 가슴은 브라를 하지 않으면 추~욱 쳐질만큼 무겁지도 않다.

요즘 나오는 속옷들을 보자.
입은 듯 안입은 듯 표 안나는 누드 브라는 이미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움직임이 편한 브라, 바람이 잘 통하는 브라 등등 그 기능도 다양하다.
안입은 척은 다하고, 편한 것을 찾으면서도 정작 입지 않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노브라는...
노브라니까, 브라 입은 티가 날 리가 없다.
노브라니까, 움직임엔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
노브라니까, 바람이 안통해서 땀띠 날 걱정도 없고, 답답하지도 않다.
이걸 몰랐던 거라면 알려주겠다.
2년 넘게 노브라를 했지만 브라를 했을 때보다 가슴이 쳐졌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고,
생활의 불편함이나 답답함도 없었다.

그럼에도 왜 여성들은 꼭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 브라를 하게 됐을까?

브라는 약 4500년전, 그리스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브라의 모양은 아니다.
흔히들 아는 코르셋이 브라의 역할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럼 코르셋은 뭘하는 건가?
코르셋은 단지 여성의 몸을 남자들이 좋아하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이 있는 데로 허리를 졸라매던
장면을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허리는 잘록하게 조이고,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게 보이는 것.
그것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몸매였고, 여자들은 그것을 위해 코르셋을 입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코르셋을 입은 여자들은 꼭 손에 부채를
들고 있다.
왜? 가슴과 허리를 너무 꽉 조여 숨쉬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채를 부치면서 숨을 고르는 것.
또 옛날 여자들은 걸핏하면 픽픽 쓰러지지 않던가.(사실 쓰러지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데도 말이다.)
이 이유도 다 코르셋때문이었다.

요즘 나오는 브라모양이 나타난 건 1913년이다.
뉴욕 사교계에 있던 메어리 펠프스 야코브스가 파티에서 비싼 이브닝 드레스를 입기 위해 생각해 냈다고 한다.
야코브스의 이브닝 드레스는 속이 비치는 것이었는데, 거기 코르셋이 비치면 차라리 안입는 것보다 못했으니까.
그래서 이 ‘깜찍한’ 야코브스가 흰 손수건 2장과 리본, 끈으로 오늘날과 같은 모양의 브라를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행에 민감하고, 코르셋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여인들...
이 이후로 당장 코르셋을 벗고 브라를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

이때 야코브스가 브라를 만들 생각을 하지않고, 그냥 벗어버렸더라면 오늘날의 여성들은
더 편한 생활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코르셋을 과감히 던지고, 그것보다는 가벼운 브라를 입기 시작한 것도 ‘진보’라면 진보일 수 있다.
당시의 여성들은 코르셋을 불편함을 알았기때문에 코르셋을 벗고 브라를 택했다.
오늘날의 여성들도 브라의 불편함을 깨닫고, 브라를 벗어던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브라에 구속돼 있다.
작은 가슴을 커보이게 하기 위해 뽕브라니 에어브라니 하는 것을 하기도 하고,
흘러내리는 브라 끈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또 타이트한 옷을 입거나 탱크톱같은 옷을 입을 때는 최대한 브라 입은 자국이 남지 않도록 하고,
누드 끈 등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브라에 얽매이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예쁜 가슴을 원하는 거야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우리는 예쁜 가슴이 아닌 브라에 얽매여 있는 건 아닐까 한번 되볼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껏 브라를 착용한 가슴에 자부심을 갖는 여성은 보질 못했다.
뽕브라를 한 여성들은 그것이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고,
브라 자국과 흘러내리는 브라 끈 앞에서 여성들은 당당하지 못했다.
또 그 외에도 브라가 여성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잘 알거라 생각된다.

브라로 만들어 낸 움츠린 가슴보다는
답답함에서 해방되고, 거릴낄 것 없는 자유분방한 노브라가 더 아름답다.

나는 왜 브라를 입을까?
한 번 생각해보고, 필요성이 없다고 느끼면 시원하게 벗어던지는 게 어떨까 싶다.
당신 몸은 이제 당신이 다스려라!!

노브라인 난 너무 편하다.

그래서 나는 노브라가 좋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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