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봉길 의사 친필 `출사표' 첫 공개 > | ||||||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상하이 의거' 직전의 비장한 각오를 적은 친필 출사표 사진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75주년을 이틀 앞둔 27일 윤 의사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에게 써준 자신의 이력서인 `자서약력' 가운데 굳은 각오와 결의를 담은 출사표 부분의 원본 사진을 공개했다. 이 글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한자를 섞어 다소 급하게 흘려 쓴 친필의 본 모습은 공개된 적이 없었다. `자서약력'은 의거 이틀 전인 1932년 4월27일 윤 의사가 훙커우공원을 답사한 뒤 "남기고 싶은 글이 있으면 전해달라"는 김구 선생의 요청을 받고 즉석에서 연필로 수첩에 쓴 글로 해방 후 해외에 유출됐다가 다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비공개로 보관돼 있다. 국내 활동과 상하이로 오게 된 과정, 유언시 등 11쪽 분량의 글을 2시간 만에 적어낸 것이라 흘려 쓴 필체와 곳곳을 고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자서약력 중 출사표에 해당하는 이 글에서 윤 의사는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며 의거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윤 의사는 또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중략)...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며 거사를 앞둔 비장한 심정을 드러냈다.
다음은 윤 의사가 남긴 친필 출사표 전문.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 압박과 우리의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 가는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 늙어지면 무용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 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와 따뜻한 고향산천을 버리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 잡고 압록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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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의연하게 순국한 윤봉길 의사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내. 열사 이봉창, 의사 윤봉길, 열사 백정기의 묘소. ----------------------------------------------
당시 중국인들은 이렇게 탄식했다 한다. ' 이 많은 중국인 중에 어찌 안중근, 윤봉길 같은 인물이 없나.'
장제스(장개석) 대만 전 총통이 1967년 윤봉길 의사 유족들에게 전달해준 친필 붓글씨.
( 장렬(壯烈)함이 천추(千秋)에 살아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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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8개월 고문, 백범 김구 거처 끝내 안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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