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로’셔츠 만들던 공장 “경쟁력 살리려 해외로”
거리엔 실직자 넘쳐나
- 영국 웨일스 남부 트레오키(Treorchy) 마을엔 텅빈 ‘버버리(Burberry) 공장’이 있다. 철문은 굳게 잠겨 있고 주변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버버리 일자리를 되돌려 달라’는 대형 스티커가 아직도 경비실 밖에 붙어 있다. 경비직원이 이따금 내다볼 뿐 주변엔 인적이 거의 끊겼다. 세(貰)를 놓거나 매입할 사람을 찾는다는 표지판은 공장 건물을 더욱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론다(Rhondda) 계곡의 산동네에 자리한 트레오키 공장은 영국의 대표 브랜드 ‘버버리’ 제품을 생산하는 영국 내 공장 3곳 중 한 곳이다. 토마스 버버리가 1856년 영국 남부 배싱스토크(Basingstoke)에서 작은 포목점을 연 데서 출발한 버버리는 현재 본사를 런던 시내에 두고 있다. 트레오키에서는 폴로 셔츠를 만들고 요크셔의 캐슬포드(Castleford)와 로더햄(Rotherham) 두 곳에서는 트렌치코트(짧은 방수 외투)를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해왔다.
- ▲ 영국 웨일스 트레오키 마을의 버버리 공장 후문. 굳게 닫힌 철문에는‘세를 놓거나 팔겠다’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지난 3월 30일 이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직원31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영국 웨일스=김영진 특파원
트레오키 공장은 버버리가 1989년 지역 의류제조회사를 인수해 운영해왔다. 하지만 버버리는 작년 9월 트레오키 공장 폐쇄 방침을 밝혔고 지난 3월 30일 문을 닫았다. 버버리 관계자는 “단순히 이익 때문이 아니었다”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낙후한 트레오키 공장에 재투자가 필요했는데 이보다 해외 공장신설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공장을 폐쇄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싼 인건비도 공장 이전의 큰 원인. 폴로 셔츠 하나를 만드는 데 트레오키에선 11파운드(약 2만원) 들지만 중국에선 4파운드(약 7600원)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자리를 잃은 트레오키의 버버리 직원 311명은 아직도 상당수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 존 글란스(Glans)씨는 전직 버버리 직원이자 절친한 친구인 엠리스 토마스(Thomas)를 만난 지 오래다. 글란스씨는 “토마스가 실직 이후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자 펍(Pub·선술집)에도 나타나지 않고 여름휴가도 못 떠나는 등 이웃들과의 접촉조차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버버리 공장에서 밀려난 웬디 데이비스(Davies)씨는 직장동료였던 동생 카렌과 함께 운전을 배우고 있다. 그는 회사가 요구한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뱅크할러데이(공휴일)도 반납하고 야근을 밥먹듯 했고 심지어 1월 1일에도 일을 했지만 회사 경쟁력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실직자들은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아 다니고 있다. 노조 간부였던 존 영(Young)씨는 얼마 전 병원 간병인으로 취직했고 파멜라 토마스(Thomas)씨는 최근 대형할인점 아스다 직원으로 취직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간마르코 카파니니(Carpanini)씨는 “하나 둘씩 직장을 찾으러 마을을 떠나면 지역 경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기업 환경이 국제 경쟁력을 잃으면 어떤 무서운 결과가 오는지 트레오키 마을은 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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