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의식의 진화란 무엇입니까?
EO - 과연 의식의 진화가 있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다양화한 우주와는 정반대인 하나의 방향성이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운동에서 정지로 향하는 방향성>이다.
인간을 영적 중추와 대응시켜 분류해보면 다음의 여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1. 하층부 세 개의 차크라가 살아있는, 즉 복부까지 살아있는 자는 이른바 동물이다. 그저 움직이고 생식하고 단순한 힘을 확장할 뿐이다. 혹은 무언가 된다면 격투사나 군인, 운동선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복부 차크라는 힘의 유지와 발산에만 관여하기 때문이다.
2. 다음 제2의 타입은 흉부에 중심이 있는 자들이다. 힘을 넣는 정도는 1의 유형보다 약간 느슨하지만 그들은 무턱대고 감동을 찾아서 세상을 방황한다. 기껏해야 모험가가 되거나 예술감상의 취미를 갖거나 여행, 연애중독에 빠지는 수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여하튼 감동일 뿐 그 <질>은 문제되지 않는다. 경험이 분석되지 않으면 그 경험을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가슴이 설레기 위해서만 살 뿐'이다.
3. 다음 제 3의 유형은 행동범위에 한 가지 제한이 더해진다. 그들은 무턱대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그들의 주 관심은 축적이다. 그들이 여행을 한다면 제 2의 유형처럼 감동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즉, 이 세번째 유형은 정보마니아 혹은 어떤 수집가이다. 그들의 주 관심은 기록과 그 축적일 뿐이다. 또, 그것은 특정한 정보에 한정된다.
이러한 특성은 그들이 인후 중추에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록, 기억의 중후이다. 그러나 이 유형의 인간은 기술적 사무적으로 정보를 편성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수는 없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다음 중추의 인간들이다.
4. 제 4의 인간은 중심이 이마에 있다. 그들은 과학자나 발명가 유형이다. <오직 한 사고를 제외하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사고라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발상에 필요한 정보를 구할 때가 아니면 여행도 하지 않는다.
행동범위가 턱없이 넓은 것은 제 3의 유형까지다. 제 4의 인간, 가령 과학자는 실험실에 박힌다. 이와같이 상위의 중추로 중심이 옮겨감에 따라 그 행동범위와 사고범위가 다루는 영역은 좁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논리의 지도와 수식의 길 위에서 살아간다.
5. 다음 제 5 유형의 인간이 되면 실험실조차도 없다.
그들은 실험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의 운동범위는 책상 위, 그것도 손과 눈을 운동하는 것뿐이다. 더구나 그들은 수식도 사용하지 않고 그저 머리속의 논리를 따라다닐 뿐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고하진 않는다. 다만, 그들은 제 4의 인간이 <제외한 단 한가지 사고>를 주제로 사고한다.
그것은 <왜 인간은 사고하는가>이다. 이것만은 제4유형의 인간이 결코 생각하지 않는 주제이다.
왜냐하면 제 4의 인간에게 이 의문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고 테마에는 상업적 가치고 오락적 가치도 없다.
그런데 제5의 인간은 <왜 사고하는가, 무엇때문에 사고하는가, 사고란 애초 무엇인가>를 사고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를 보는것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이 유형에 속하는 인간의 근본 문제이다. 즉 제 5의 인간이란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책상위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령 <세계란 무엇인가>를 물어도 그들은 학자처럼 법칙을 해명하려 하지도 않고 세계를 여행하며 조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세계가 어떻게 되는가가 아니라 <세계란 무엇인가> <무엇때문에 세계가 있는가>라는 그 정의와 의미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심이 되는 중추는 전두부이다.
그들은 많은 사고에는 동화하지 않지만, 사람은 왜 사고하고 만물은 왜 존재하며 자신의 주체는 무엇인가, 의식은 무엇인가라는 사고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화한다.
이리하여 점차 중추가 위로 올라감에 따라 이동범위가 좁아지는 것은 기묘한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제 6의 인간에 이르면 스스로의 사고에 대한 의심조차 없이 완전히 정지한다.
이미 머리속에서조차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말 그대로 <내 집>에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폐인이 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제 6에 이르러서는 내적인 행동조차도 '전혀 없다'
이리하여 인간의 <진화>는 육체활동에서 감정활동,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고활동으로 이행하여 마침내 사고활동 그 자체에 대한 자문(自問)을 통과하고선 사고를 정지한다.
움직임에서 정지로 가는 길...
요약하면 이것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 EO -
EO - 과연 의식의 진화가 있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다양화한 우주와는 정반대인 하나의 방향성이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운동에서 정지로 향하는 방향성>이다.
인간을 영적 중추와 대응시켜 분류해보면 다음의 여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1. 하층부 세 개의 차크라가 살아있는, 즉 복부까지 살아있는 자는 이른바 동물이다. 그저 움직이고 생식하고 단순한 힘을 확장할 뿐이다. 혹은 무언가 된다면 격투사나 군인, 운동선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복부 차크라는 힘의 유지와 발산에만 관여하기 때문이다.
2. 다음 제2의 타입은 흉부에 중심이 있는 자들이다. 힘을 넣는 정도는 1의 유형보다 약간 느슨하지만 그들은 무턱대고 감동을 찾아서 세상을 방황한다. 기껏해야 모험가가 되거나 예술감상의 취미를 갖거나 여행, 연애중독에 빠지는 수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여하튼 감동일 뿐 그 <질>은 문제되지 않는다. 경험이 분석되지 않으면 그 경험을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가슴이 설레기 위해서만 살 뿐'이다.
3. 다음 제 3의 유형은 행동범위에 한 가지 제한이 더해진다. 그들은 무턱대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그들의 주 관심은 축적이다. 그들이 여행을 한다면 제 2의 유형처럼 감동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즉, 이 세번째 유형은 정보마니아 혹은 어떤 수집가이다. 그들의 주 관심은 기록과 그 축적일 뿐이다. 또, 그것은 특정한 정보에 한정된다.
이러한 특성은 그들이 인후 중추에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록, 기억의 중후이다. 그러나 이 유형의 인간은 기술적 사무적으로 정보를 편성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수는 없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다음 중추의 인간들이다.
4. 제 4의 인간은 중심이 이마에 있다. 그들은 과학자나 발명가 유형이다. <오직 한 사고를 제외하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사고라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발상에 필요한 정보를 구할 때가 아니면 여행도 하지 않는다.
행동범위가 턱없이 넓은 것은 제 3의 유형까지다. 제 4의 인간, 가령 과학자는 실험실에 박힌다. 이와같이 상위의 중추로 중심이 옮겨감에 따라 그 행동범위와 사고범위가 다루는 영역은 좁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논리의 지도와 수식의 길 위에서 살아간다.
5. 다음 제 5 유형의 인간이 되면 실험실조차도 없다.
그들은 실험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의 운동범위는 책상 위, 그것도 손과 눈을 운동하는 것뿐이다. 더구나 그들은 수식도 사용하지 않고 그저 머리속의 논리를 따라다닐 뿐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고하진 않는다. 다만, 그들은 제 4의 인간이 <제외한 단 한가지 사고>를 주제로 사고한다.
그것은 <왜 인간은 사고하는가>이다. 이것만은 제4유형의 인간이 결코 생각하지 않는 주제이다.
왜냐하면 제 4의 인간에게 이 의문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고 테마에는 상업적 가치고 오락적 가치도 없다.
그런데 제5의 인간은 <왜 사고하는가, 무엇때문에 사고하는가, 사고란 애초 무엇인가>를 사고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를 보는것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이 유형에 속하는 인간의 근본 문제이다. 즉 제 5의 인간이란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책상위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령 <세계란 무엇인가>를 물어도 그들은 학자처럼 법칙을 해명하려 하지도 않고 세계를 여행하며 조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세계가 어떻게 되는가가 아니라 <세계란 무엇인가> <무엇때문에 세계가 있는가>라는 그 정의와 의미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심이 되는 중추는 전두부이다.
그들은 많은 사고에는 동화하지 않지만, 사람은 왜 사고하고 만물은 왜 존재하며 자신의 주체는 무엇인가, 의식은 무엇인가라는 사고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화한다.
이리하여 점차 중추가 위로 올라감에 따라 이동범위가 좁아지는 것은 기묘한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제 6의 인간에 이르면 스스로의 사고에 대한 의심조차 없이 완전히 정지한다.
이미 머리속에서조차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말 그대로 <내 집>에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폐인이 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제 6에 이르러서는 내적인 행동조차도 '전혀 없다'
이리하여 인간의 <진화>는 육체활동에서 감정활동,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고활동으로 이행하여 마침내 사고활동 그 자체에 대한 자문(自問)을 통과하고선 사고를 정지한다.
움직임에서 정지로 가는 길...
요약하면 이것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 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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