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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화폐개혁 단행(1962) 외 6월10일 속의 역사

by 현상아 2008. 6. 10.

 



[1914] 조선총독부, 학교 교련과목 신설

[1926]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 사망

[1982] 독일 영화감독 파스빈더 사망

[1994] 전쟁기념관 개관

 

 

- 화폐개혁 단행(1962)

1962년 오늘 새벽 0시를 기해 우리 나라의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환'화를 10대1의 '원'화로 바꾸는 개혁이다.

이날부터 액면 50환 이하의 환화를 제외한 구환화는 유통과 거래가 금지됐다.

아침부터 각 금융기관에 구화를 예입하고 새 돈으로 바꾸기 위해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정부는 인플레를 방지하고 고리사채에 쓰이는 돈 등 민간의 주머니에서 잠자는 돈을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으로 끌어내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고 있는 돈을 올바르게 활용할 목적으로 시행된 화폐개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업 가동률의 저하, 생산의 위축 등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6.10 민주항쟁(1987)

1987년 오늘!

국민들의 항쟁이 겉잡을수 없이 번져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여 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른바 6월 항쟁의 불길이 거세게 일었다.

- 6.10만세운동(1926)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이 거행된 1926년 오늘!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3백여 명이 운구행렬이 지나는 서울 종로 3가 단성사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여 장의 격문을 살포했다.

을지로와 종로3가, 동대문, 청량리에서도 학생들이 교육·토지제도의 개혁, 일본제국주의 타도, 8시간 노동제 채택 등을 외치며 시위했다.

학생과 시민 수만 명이 이에 호응해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조선총독부는 서울에만도 경찰과 군인 7천여 명을 동원해 진압했다.

6.10만세사건으로 이날 하루 학생 천여 명이 체포됐다.

만세운동 후 순창,군산,울산,평양,홍성 등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이어졌다. 


- 광주학생운동 기념탑 제막식 (1954)

1954년 오늘, 광주학생운동 기념탑 제막식이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이 학교 후배들은 25년 전 선배들이 발휘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며 묵념했다.

높이 10미터의 이 기념탑에 이승만 대통령이 탑문휘호를 썼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인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것이 바로 광주학생운동이다.

당초 일본 학생이 조선 여학생을 희롱한 데서 비롯된 두 나라 학생들 사이의 충돌이 일제에 항거하는 조선 학생들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1월 12일 전국 194개 학교와 5만4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일투쟁으로 발전했다.

일제는 이에 대해 조선학생 580여 명을 퇴학조치하고 2천3백여 명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 에리트레아 독립전쟁 가열(1977)

1977년 6월 초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에리트레아 해방전선의 무장투쟁이 더욱 거세진다.

에리트레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령에서 에티오피아령으로 귀속됐다.

그 전까지 이탈리아 제국주의에 대항해 온 에리트레아 지역 주민들은 에티오피아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자 독립전쟁을 벌였다.

에리트레아 해방군은 마침내 1991년 5월 에티오피아 멩기스투 정권을 무너뜨리고 일방적으로 독자정부 수립을 선언한다.

-영국 총리, 런던심포니 지휘(1974)

1974년 오늘!

에드워드 히스(Edward Heath) 영국 총리가 오케스트라 지휘봉을 잡았다.

영국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대에 섰다.

열렬한 음악팬인 히스 총리는 총선에서 패한 후의 망중한을 이처럼 독특한 변신을 통해 달래 화제가 됐다.

히스는 EEC, 즉 유럽경제공동체 영국측 수석대표와 영국보수당 당수를 지냈다.

1970년 총선거에서 영국노동당을 이기고 수상에 취임했지만 1974년 총선거에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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