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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포항제철 준공(1973) 외 7월3일 속의 역사

by 현상아 2008. 7. 3.

 

 

[1961] 한국 '반공법' 공포

[1971] 한국-모리셔스 국교 수립

[1974] 홍수환, WBA밴텀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7] 성수대교, 붕괴 후 2년 8개월 만에 재개통

 

 

 

-포항제철 준공(1973)

1973년 오늘, 포항제철이 준공됐다.

착공한 지 3년 3개월 만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인 1,200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

제선,제강공장 등 10개 단위 공장과 12개의 부대시설을 거느렸다.

단일 사업체로서는 우리 나라 최대규모였다.

포항제철은 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인 중화학공업 건설의 중추역할을 떠맡게 됐다.

이에 따라 포항제철은 73년 1기 설비 준공 이후 생산설비 확장을 계속 추진해 나간다.

1976년 5월 2기 설비, 78년 12월 3기 설비, 83년 5월 4기 2차 설비 준공으로 9백10만 톤의 조강 능력을 확보한다.

포항제철이 1987년 준공한 광양제철소는 1,180만 톤 규모의 조강능력을 지녔다.

포항제철은 조강 능력 기준으로 세계 1위의 철강회사로 발돋움하고 2000년에는 민영화됐다.

-인도-파키스탄 '심라 평화협정' 발표(1972)

1972년 오늘!

인도와 파키스탄의 두 정상이 '심라 평화협정'에 조인했다고 발표한다.

인디라 간디 총리와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부토 대통령(Zulfiqar Bhutto)은 인도 북서부의 휴양지 심라(Shimla)에서 전날 밤 늦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이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조인식을 서둘러 시작하느라 식장의 커튼을 뜯어내려 테이블보로 쓰고 간디 총리는 바로 옆에서 취재하던 기자에게 펜을 빌려 서명했다.

이로써 25년 동안 끌어 온 두 나라의 적대관계가 해소된다.

1년 전인 1971년 3월 동파키스탄의 벵골인 독립주의자들이 방글라데시공화국 독립을 선포한 데 대해 파키스탄군이 유혈진압에 나서자 인도가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지지하며 내전지역에 군대를 파견했다.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두 나라의 전쟁은 같은 해인 71년 12월 16일 파키스탄의 항복에 이어 다음 날 휴전에 들어갔다.

두 나라는 이듬해 오늘 발표한 '심라 평화협정'에서 서로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간섭하지 않으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벌이기로 약속했다.

-아데나워 서독총리, 프랑스 방문(1962)

1962년 오늘!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서독 총리가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다.

아데나워 총리는 파리의 개선문에 있는 프랑스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아데나워 서독총리의 프랑스 방문을 놓고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 번에 걸쳐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과거사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데나워 총리의 프랑스 방문을 전후해 프랑스와 서독 두 나라는 EC, 즉 유럽공동체 창설을 주도하게 된다.

아데나워 서독 총리는 1944년 히틀러 암살사건에 연루돼 게슈타포에게 체포됐다가 살아남아 1949년 국회의원 당선에 이어 서독 정부의 초대 총리에 취임했다.

아데나워는 1963년 10월 총리직에서 물러나기까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서독의 경제부흥을 이룩했다.

-미국 순양함, 이란 여객기 격추(1988)

1988년 오늘 페르시아만에서 미 해군의 최첨단 이지스(AEGIS) 순양함 '빈센스(Vincennes)' 호가 이란항공 소속 여객기 A-655기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을 맞은 여객기는 공중폭발했고 승객과 승무원 등 290명의 탑승자 모두가 사망했다.

미국은 빈센스호가 이란의 초계함을 추적하다 레이더에 나타난 민간 여객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벌어진 사고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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