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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홍콩, 중국 영토로 복귀 (1997) 외 7월1일 속의 역사

by 현상아 2008. 7. 1.
[1798] 나폴레옹,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점령

[1863] 미 남북전쟁 최대 격전 '게티즈버그 전투'

[1933] 서울-도쿄 직통전화 개설

[1967] 유럽공동체(EC)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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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첫 재판(2004)

2004년 오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특별재판소 법정에 출두해 재판을 받았다.

후세인은 2003년 12월 13일 미군에 체포된 이후 6개월여 만에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란-이라크전쟁과 쿠웨이트 침공, 걸프전쟁 후 시아파 반란 진압과정에서 저지른 대량 학살, 북부 쿠르드족에 대한 화학무기 사용 등 반(反)인륜 범죄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후세인은 법률 서류 서명을 거부하고 쿠웨이트 침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는 질문에 '나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다' 라고 말했다.

후세인은 또 '재판은 모두 연극이다. 진짜 범죄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을 계기로 후세인의 신분은 전쟁포로에서 피의자로 바뀌었다.

-홍콩, 중국 영토로 복귀 (1997)

1997년 오늘,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 이후 155년 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아 온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다.

이날 자정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주권 반환식에서 찰스 영국 왕세자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신해 고별사를 낭독했다.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은 환영사를 통해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반환식에 이어 둥젠화(董建華) 초대행정장관을 수반으로 하는 홍콩 특별행정구 출범식이 열렸다.

또 중국 인민해방군 4천여 명이 홍콩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광장에서도 10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홍콩 반환을 축하하는 경축행사가 펼쳐졌다.

홍콩 특별행정구에서는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고는 반환 이전의 자본주의가 그대로 존속돼 1국2체제가 이뤄지게 됐다.

-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 (1989)

1989년 오늘, 의료보험이 도시지역 주민에게 확대되면서 전 국민 의료보험시대가 개막됐다.

우리 나라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실시된 지 12년 만이다.

의료보험은 1977년 7월 처음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시행된 데 이어 1979년 1월부터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사로 확대됐다.

1988년 1월에는 농어촌 지역 주민으로, 이듬해인 1989년 오늘부터 도시 주민들에게도 적용됨으로써 전 국민이 의료보험제도의 대상이 됐다.

-한국전력 발족 (1961)

1961년 오늘, 한국전력주식회사가 발족했다.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조선전업과 남선전기, 경성전기 등 전력 3사를 통폐합해 한국전력을 출범시켰다.

전력회사 통폐합은 업무의 중복을 피하고 경비의 절약은 물론 향후 전력시설 확충에 필요한 외국의 원조를 쉽게 받기 위한 시책이었다.

한국전력 시무식은 같은 달 18일 윤보선 대통령과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솜므강 전투 시작 (1916)

1916년 오늘 오전 7시 30분, 연합군 보병이 솜므(Somme)강 북쪽 34km 전방의 독일군 고지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 동원된 연합군의 80%는 영국군으로 구성됐다.

연합군은 이 전투에 앞서 8일 동안 대규모 공습과 포격을 퍼부었다.

연합군 보병들은 이 때문에 진출로가 확보됐을 것으로 보고 안심하고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난공불락의 참호 속에서 기관총으로 응사했다.

공격 첫 날 영국군이 2만 명 가까이 전사하고 6만여 명이 부상했다.

단일 전투에서 하루에 이만큼 많은 전사자가 생기기는 처음이었다.

솜므 전투는 이후 11월 중순까지 계속됐다.

7월 중순의 영국 기병대의 공격도 역시 독일군의 기관총에 의해 무산됐다.

10월에는 폭우가 내리면서 전선이 온통 진흙바다로 변해 연합군은 이 전투가 막을 내린 11월 중순까지 8km 정도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4개월이 넘게 계속된 솜므 전투에서 영국군 42만, 프랑스군 19만5천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독일군 사상자는 65만여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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