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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이혼(1996) 외 8월28일 속의 역사

by 현상아 2008. 8. 28.

[430]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사망

[1231] 몽고, 제1차 고려 침입

[1948] 장면, 이주당 사건으로 구속

[1996] 광주지하철 1호선 착공

 

-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이혼(1996)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6년 오늘 결혼 15년 만에 이혼한다.

성격 차이와 불륜 문제로 오랜 갈등을 겪어 온 두 사람은 런던 고등법원 가사부에서 이혼판결을 받은 뒤 6주 간의 이의 제기 기간 경과로 이혼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했다.

다이애나 비는 이혼 후에도 왕위계승서열 2위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의 어머니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캔싱턴 궁에서 산다.

두 사람이 이혼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녀 4남매 가운데 세 자녀의 결혼이 실패로 끝나게 됐다.

다이애나 비는 이혼 후 대인지뢰 사용금지 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이혼 이듬해인 1997년 8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생애를 마감한다.

 

 

- 화궈펑, 중국 총리직 사임(1980)

1980년 오늘 중국의 최고 지도자 화궈펑(華國鋒)이 총리직을 내놓는다.

화궈펑은 경제대약진운동의 실패와 지나치게 마오쩌둥을 숭배했다는 이유로 실용주의 노선의 덩샤오핑 일파에게 밀려 사임하게 됐다.

이듬해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에서 부주석으로 격하된다.

이어서 1982년에는 부주석 지위에서도 해임돼 완전히 실각한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자오청(交城) 출신인 화궈평은 1937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 항일유격전에 참가했다.

1959년 후난성 당서기를 지낼 당시 토지개혁의 성과로 마오쩌둥에게 발탁돼 중국 정계의 전면에 나섰다.

1976년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국무원 총리직을 대행하며 장칭 등 4인방 제거에 수완을 보인 뒤 1977년 당중앙위원회 주석과 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르면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킹 목사, 워싱턴 대행진(1963)

1963년 오늘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흑인 20만여 명이 평화행진을 한다.

흑인 민권을 요구하는 시위다.

시위 행렬은 링컨 기념관까지 이어진다.

루터 킹 목사가 바로 이 곳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라는 제목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연설을 한다.

루터 킹 목사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면서 이 날 흑인 시위는 절정을 이룬다.

케네디 대통령은 킹 목사에게 고용차별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한다.

실제로 1년 뒤인 1964년 공공장소에서의 인종차별과 고용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통과된다. 

- 독일 람슈타인 에어쇼 참사(1988)

1988년 오늘 서독의 람슈타인(Ramstein) 미 공군기지에서 관객 35만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에어쇼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탈리아 공군 소속 '프레체 트리콜로리'팀의 제트기 3대가 그만 공중에서 부딪치고 만다.

한 대는 관객들 속으로 추락했다.

폭발과 함께 비행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사고로 70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중상을 입었다. 

- 마운트배튼 동남아연합군 사령관 취임(1943)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오늘, 영국의 루이스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 제독이 동남아시아 연합군 최고사령관 자리에 오른다.

영국 해군에 입대한 지 30년 만이다.

마운트배튼은 사령관이 된 뒤 일본군에 점령됐던 미얀마 탈환작전을 성공시킨다.

1947년에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마지막 총독으로 부임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을 실현시킨다.

이후 계속해서 군인으로 여생을 보내다 1965년 퇴임한다.

마운트배튼은 1979년 아일랜드에서 휴가를 보내다 IRA가 배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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