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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210 ‘잊혀진 천재’ 김웅용 영재들의 자살을 접하다

by 현상아 2011. 4. 14.

IQ 210 ‘잊혀진 천재’ 김웅용 영재들의 자살을 접하다

 

서울신문 | 입력 2011.04.14 03:23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동이 있었다.

5세에 4개 국어를 구사했고 6세 때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고등 미·적분을 술술 풀어냈다.

당시 일본에서 측정한 그의 IQ는 210이었다. 이는 10년 넘게 깨지지 않았던 기네스북 기록이었다.

7세 때는 청강생 자격으로 한양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듬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 주선으로 콜로라도 주립대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16세까지 5년간 NASA 핵물리학 분야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그의 인생은 IQ만큼이나 빠르게 내달렸다.

하지만 천재는 어느 순간 자기 삶의 '과속'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16세 때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1년 충북대에 입학했다. 지방대에 가기 위해 검정고시를 치르는 그에게 언론은 '실패한 천재'라는 딱지를 붙였다.

천재 '김웅용'은 빠르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바로 그 김웅용(49)씨가 인터넷에 화제로 등장했다.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고 그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것은 난데없는 저 먼 나라 루마니아의 언론사였다.

역대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 3위라고 김웅용씨를 소개했다.

그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지난 8일, 언론들은 일제히 하루 전 일어난 카이스트 학생의 올해 네 번째 자살을 보도했다.

김웅용씨가 일하는 청주 충북개발공사로 차를 내달렸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고로 실패한 천재가 아니다."

→'실패한 천재' 또는 '잘못된 영재 교육의 표본'이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 같다.

-죄송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다.

남들이 살면서 천천히 배우는 것을 조금 어린 나이에 익힌 것일 뿐이다.

빨리 익혔다고 멀리 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

박태환(수영)이 잘하는 게 있고 김연아(피겨스케이팅)가 잘하는 게 따로 있듯이 모든 분야에서 특출할 수는 없다.

난 남들이 나이 들어 갈 곳을 미리 가서 경험했을 뿐이다.

한때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지만, 나중에 힘에 부치면서 잘못된 선택이란 생각이 들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천재를 평균의 틀에 가둬 둔재로 만들어서야"

→그래도 이른바 '천재'가 지방대와 평범한 직장을 택하기는 참 어려웠을 것 같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학교든 직장이든 내가 좋아하는 곳을 선택했다.

그 전에 공부하던 분야가 파괴를 위한 것이었다면 새로 배운 전공(토목공학)은 없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하는 일이어서 좋았다. 지금 다니는 직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좋다는데 세상의 반응은 내 생각과 달랐다.

아무리 내가 "지금이 행복하고 좋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내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하면 "왜 그런 일을…." 뭐 이런 식이다.

과거에 천재라고 불렸다면 지금 내가 반드시 하버드대나 예일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천재 소년 송유근(15·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천문우주과학 박사과정)군과 비교도 많이 한다.

-제발 부탁인데 나를 유근이와 결부시키지 말아 달라.

신동이라는 세상의 기대 어린 시선으로 유근이나 그 부모가 겪는 부담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보태고 싶지 않다.

→이쯤에서 가장 궁금한 카이스트 얘기를 좀 해 보자. 자살한 학생들이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닌가.

-그건 장학금만의 문제도, 서남표(카이스트 총장)식 과당 경쟁 때문만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이 너무 나약해서라고도 말하지만 그건 그 아이들의 고통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다들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이미 10년 전에도 카이스트는 새벽 3시에 식당이 불야성을 이뤘다.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과제하다 밤참 먹으러 나온 아이들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위권을 맴돈다면 그 이전까지 1등만 해 왔던 아이들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않겠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자책도 감당하기 힘들었으리라고 본다.

→어디에나 치열한 경쟁과 냉정한 평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평균'이란 모호한 기준이다.

사람은 잘하는 분야가 있고 그렇지 못한 분야가 있다.

한 과목에서 특출난 학생이 있으면 그 점을 부각시켜 인정해야 하는데 모든 학점을 평균해서 평가한다.

두 과목 평균 80점을 맞은 학생보다 한 과목 100점, 다른 한 과목 50점을 받은 학생이

특정 분야는 훨씬 우수한데 세상은 평균 80점 학생을 더 알아준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100점을 맞은 학생들을 잘하는 분야에서 같이 연구할 수 있게 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는데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IQ 210이란 숫자는 언제 어떻게 나왔나.

-일곱살 때 일본으로 가서 IQ 테스트를 했다.

당시 한국은 정말로 먹고살기 힘들었다. 두뇌 측정 방법이나 기관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IQ 측정을 위해 7시간 동안 계속 시험을 봤는데 거의 다 맞았던 것 같다.

최고 측정치가 200이었는데 만점을 받으니 '측정 불가'라며 보너스 점수 주듯이 10을 더 얹어 210으로 결론냈다.

이후 수학자인 야노 겐타로 도쿄공업대 교수가 미적분 방정식을 냈는데 마침 아는 문제가 나와 모두 풀었다.

이 모습이 방송되면서 영국 기네스협회는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으로 내 이름을 올렸다.

그 덕에 미국 NASA에서 연락이 와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힘들다는 내 이야기 들어 줄 사람 없던 것이 더 큰 문제"

→그랬는데 왜 스스로 모든 것을 버렸나. 이해가 잘 안 된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난 미국에 가서도 꽤 잘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내가 뭘 잘하고 있는지 몰랐다. 주어지는 과제와 수학문제를 기계처럼 풀기만 했던 것이다.

한 분야를 위해 20개 이상 연구실이 함께 작업을 했지만 정작 옆방에서 뭘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비밀주의 원칙이 이어졌고 거기서 생긴 공은 대부분 윗선의 차지였다.

어린 나이에 힘들다는 내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최근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들도 나처럼 그랬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김웅용씨는 "아들과 공을 찰 때, 퇴근 후 동료들과 대포 한잔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에 자신을 던져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값진 대가를 지불하고 삶의 속도를 늦춘 김웅용씨.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결정적으로 자기 행복을 찾는 데 모두 쏟아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청주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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