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넘새 누나의 부자 되는 길
필자는 누나가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친 누나이고, 또 한 분은 이웃집에 사는 누나의 친구 '넘새'라는 누나다.
'넘새'라는 이름이 지금은 이상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고, 또 그런 이름도 많았다.
즉, 딸이 많은 집 딸 중에 그런 이름이 많았다.
당시 불려지던 넘새나 꼴득이, 후남이 등은 모두 딸이 너무 많아 아들을 낳았으면 하는 기원에서 붙이던 이름 들이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는 필자가 ㄱ, ㄴ, ㄷ...ㅎ 속에 뜻이 들어있고, 그 뜻으로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꼴득이는 꼴지로 딸을 얻었으니 더 이상 딸을 낳지 말라는 기원이 들어있는 이름으로, 호적상에는 '꼴' 자를 쓸 수 없으니 乙得이라 썼고, 후남이는 그야말로 뒤에는 사내가 태어난다는 後男으로 좀 유식한 이름이다.
그럼 '넘새'란 무슨 뜻인가?
북한에서는 '나물'을 남새 또는 넘새라 한다. 남한 방언 중에도 '너무새', '나무새'라 하기도 한다.
쌀이 귀했던 옛날에 산이나 들에서 얼마든지 채취할 수 있는 남새는 먹거리로 치지도 않았다.
야채, 특히 산채가 좋다는 것은 요즘 이야기이고, 그 때는 그저 귀한 쌀로는 배가 채워지지 않으니 오직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의 먹거리로 넘새라 했다.
넘새의 '넘'은 ㄴ은 '눕는다'는 뜻이 있으니 여기서는 '누리', '넘치다'의 뜻이 있고, '새'는 ㅅ은 '솟는다'는 뜻이 있으니, '누리에 넘치게 솟는 것'이 바로 '넘새'이다. 즉, 아무 쓸모없이 넘처나는 게 바로 넘새이니 이제는 알곡을 바란다는 의미가 있다.
쓸모 없는 딸은 이제 넘치니 아들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넘새 누나는 일곱 번째 딸인데 맨 위 언니 하나는 누구네 민며느리로 들어갔다 하고, 그 아래 둘은 남의 집 종인지 첩 같은 것으로 팔려갔다 했으며, 또 둘은 나중에 고무신 공장(정신대)으로 끌려갔다 하고, 그 아래로 둘은 낳자마자 모두 죽었단다.
이웃에서는 아마 낳자마자 할머니가 아기를 엎어놓아 일부러 죽였을 거라고 수근댔다.
넘새 누나도 낳자마자 그 할머니의 극성에 의하여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한다.
즉, 악을 쓰듯이 손자를 바라던 넘새누나 할머니는 '이번에도 딸을 낳으면 갔다 버려라'고 닥달을 했다 한다.
그때는 정말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동네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했다.
산모는 다시 아기를 낳고 보니 넘새 누나.
산모는 몸도 추스를 사이 없이 피눈물을 흘리며 어린 핏덩이를 안고 강가로 가더란다.
이것을 안 우리 선친은 산모를 끌고 그 집으로 가 그 시어머니에게 호되게 야단을 쳤단다.
" 사람이 아들딸로 태어나는 것은 다 하늘이 알아서 하는 일인데 ,어찌 산모에게 죄가 있다 할 것이며, 인두겁을 쓴 사람이 어찌 사람을 죽이려 하는가?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어찌 금방 몸을 푼 사람에게 이게 무슨 짓인가? 내 그 아이를 또 죽이려 한다면 당장 주재소(일정시대 경찰서)에 가서 고발하여 징역을 보내고 동내 사람들에게 말해서 이 동네에서 쫓아내게 할 것이다. "
당시 우리 선친은 그 인근에서도 알아주는 한학자로써 감히 선친의 말을 대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넘새누나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한데다가 딸들만 득실대는 집이니 구박이 자심했다.
거기다가 넘새누나 어머니는 산후 조리가 잘못되었는지 앓다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계모를 얻었으니 넘새누나로써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계모는 들어오면서부터 넘새누나를 너무도 구박했단다. 그러나 넘새누나의 이름 때문인지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 상진이는 필자와 동갑이다.
넘새누나는 어린 나이 때부터 넘새만 먹으며 동생 상진이가 먹는 그 이밥(쌀밥)과 고기국을 침만 삼키며 구경만 했지, 상진이가 먹다 흘린 밥 한 톨이라도 입에 가져갔다가는 엄청 매를 맞았단다.
넘새누나는 틈만 나면 우리집에 왔다.
우리 어머니는 이 넘새누나가 불쌍해서 남은 밥이나 하다못해 누룽지라도 먹였다.
우리 친누나는 일정 때이니 먼 학교에 다니느라고 나를 업어줄 시간이 없었으므로 넘새누나가 나를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
넘새누나 친동생 상진이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거지 자루찟듯 업어 키우니 어차피 넘새누나 차례도 오지 않는다.
필자는 어렸을 때 알지 못할 병이 들어 얼마나 몸이 약했는지 죽은 줄 알고 거적때기에 말아 지게에 지고 산에 올라가 구덩이 까지 판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옛날엔 아이들이 죽으면 3일장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즉시 거적때기에 말아 봉분도 없이 묻어버리는데 이것이 '애장'이라 했다. 그런데 막상 땅에 묻으려 하면 미약하나마 작게 움직이는 기색이 있어 도로 업고 내려와 잘 보섭하면 다시 살아나기가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이 다 죽어가는 나를 업어 키운 것이 바로 넘새누나다. 그러나 필자는 열살이 넘고 6.25 전쟁을 격은 후로는 감기도 손가락을 셀 정도로 알았고 지금은 몇 십 년 전에 감기를 알았는지 기억에도 없다.
넘새누나는 학교에 다니며 글을 배우는 우리 친누나를 무척 부러워했다.
선친께서는 한자를 진서(眞書)라 하여 약한 필자에게도 한학을 가르쳤다. 4살 때부터 천자문을 배웠다.
그런데 넘새누나는 어깨너머로 그 한학을 배워 필자를 업고 다니며 필자가 잊어버린 것을 복습시켜 주곤 했었다.
선친께서는 넘새누나의 머리가 비상하다며 본격적으로 한학을 가르켰다.
이렇게 한학을 배운 넘새누나는 솔직히 말하면 일정때 학교 다녀 일본 사람보다 일본말을 잘 하는 우리 친누이와 비교도 되지 않게 유식했다. 그야말로 진서를 줄줄 읽었다.
필자의 젊은 시절 대학생들은 참으로 유식했다.
당시 신문들은 거의가 한자로 써 있어 이것을 마음대로 읽으니 전문분야 말고도 일반 상식이 매우 유식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한자를 가리키지 않은 이후의 대학생들은 당시 신문 한 장 읽을 줄 모르니 그야말로 일반 상식까지 무식했다.
지금 필자는 한글은 하느님이 우리 한민족에게 주신 글자이므로 얼마나 소중히 해야 할 것인가 운동까지 벌이면서 한문 예찬이나 하는 것 같으나, 한문은 우리 역사를 통하여 우리 언어 등에 침식되어 한자가 아니고는 어떤 글도 쓸 수가 없고 어떤 말을 해도 그 속에는 한문이 들어있으니 지금 당장 한자를 버려가지고는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 된다.
한글학회 같은 곳에서는 한자 말을 한글로 쓰며 한글을 사랑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순수한 말부터 찾아 쓴다면 한자는 쓸래야 쓸 수가 없게 된다. 필자가 지금 하는 일은 순수한 우리말을 찾는 것이다.
한자를 배운 사람들은 매우 유식했다. 세종도 대학은 안 나왔지만 그렇게 유식했듯이 전에 사서삼경 등 한문 공부만 했던 사람들은 의학 화학 등 전문 분야 말고는 일반 상식은 지금 대학생 정도 실력이 아니다. 따라서 학교 구경도 못한 넘새누나도 지금 대학생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유식한 사람이 되었다.
필자와 동갑내기인 상진이는 그 부모는 물론 할머니까지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아무리 없어도 이밥에 고깃국만 먹였다.
그러다 보니 이놈은 밥상만 갔다놓으면 상식(上食)부터 하는데, 이 상식이란 부모님이 돌아가셔 3년상이 끝날 때까지 밥상을 차려놓고 곡을 한 다음 먹었기 때문에 밥상머리에서 우는 아이를 상식하다고 했다.
즉, 너무 귀하게 키우다 보니 아무리 이밥에 고깃국만 줘도 불만인 것이다.
이 놈은 국민학교를 필자와 함께 들어갔는데, 필자는 몸이 아파 1학년을 단 한 달만 다녔는데도 학급에서 2등을 했는데 이놈은 일학년을 두 번, 이학년 두 번, 즉 낙제를 두 번 하고도 4학년이 되어도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필자가 단 한 달을 다니고도 2등을 한 것은 필자의 머리가 좋아 그런 것이 아니고 4살 때부터 선친으로부터 배운 한문과 넘새누나로부터 받은 복습 덕분이었다. 즉, 한자만 알면 언문(당시는 언문이라 했음) 아는 것은 하루 아침이면 된다. 언문은 그 원리만 알면 그만큼 쉬운 좋은 글자이기 때문에 그 골머리를 써야 하는 한문과 다르고, 평민들은 아무라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다. 이 골치 아픈 한자를 어려서부터 배운 덕분에 언문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가 됐다.
왜 학교 성적이 일등을 하지 못하고 이등인가도 넘새누나 때문이다.
넘새누나는 집에서 구박을 하도 받은 사람이라 눈치가 빠르고 모든 사물 판단을 자기 경험으로 습득한 사람이다.
넘새누나는 나를 업고 다니며 항상 말했다.
" 항상 누구 말 믿지 말고 사물을 보고 그 주위 환경과 비교 판단하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필자가 시험을 볼 때 모든 필기는 모두 정확히 다 써서 모두 100점이었지만, 학기말 시험은 책읽기였다.
당시 교과서는 폐지, 즉 마분지로 만든 것인데 질이 나쁜 마분지라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도 형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는다. 그때 필자의 읽을 차례가 되어 책을 읽는데, 그 내용은 비 오는날 아침 풍경을 묘사한 글로 '검은 우산, 빨간우산 ㅇ 어진 우산' 이었다
그런데 책이 마분지라 그 'ㅇ' 자 있는 부분이 뚫어져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필자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며 몇 번 읽었던 책이라면 이 뚫어진 곳에 있는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알았을 테지만, 처음 읽는 책이라 무슨 글자인지 몰랐다.
그러나 넘새누나의 그 '주위 환경과 비교 판단하고 생각하라'는 말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검은 우산, 빨간우산 ㅇ어진 우산'이라면 이는 틀림없이 '뚫어진 우산'일 것으로 판단 자신 있게 큰소리로
'검은 우산, 빨간 우산 뚫어진 우산!' 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읽었다.
그랬더니 여기 저기서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났고 선생님도 웃었다.
" 인석아. 그게 왜 뚫어진 우산이냐? "
" 여기 책이 이렇게 뚫어져 있으니까 뚫어진 우산이지요. "
" 이 녀석아. 책이 뚫어졌으면 다른 책으로 읽겠다고 해야지.. .책이 뚫어졌다고 우산도 뚫어졌냐? "
애들이 또 까르르 웃었다.
그 책 내용은 '검은 우산, 빨간 우산, 찢어진 우산' 이었던 것이다.
결국 너무 건방지게 자신만만해 하다가 괘씸죄로 2등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넘새누나를 예찬하려는 것은 이 한학에 유식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넘새누나는 어머니 배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서러움을 받은 사람이라, 그만큼 생존 능력과 창의력이 살아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가 먼저 관상 보는 법 등 사이비 도사 같은 말을 한 것도 이 넘새누나의 눈칫밥으로 부터 나왔다.
넘새누나는 눈칫밥만 얻어먹고 살았으니 누구에게 어떻게 해야 쌀 한 톨, 누름지 한쪽이라도 입에 들어간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사람의 인상을 잘 관찰하는 관상쟁이었다.
그러나 넘새누나는 이 밥 한 숫갈, 누름지 한쪽을 위하여 사람들의 관상 정도만 잘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풀을 뜯어 먹다 보니 약초 박사가 되었으며, 풀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고 아침이나 저녁의 노을을 보고 그 날이나 다음 날 일기를 점쳤으며, 벌레 울음소리나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요즘 일기예보는 저리가라 하는 일기예보관이 되었다.
또 달무리를 보고 며칠 후에 비가 올 것 등 참으로 일기 예보를 잘도 알고 또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넘새누나는 초저녁에 필자를 업고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 지금 여기는 바람이 없지? 그런데 하늘 높은 곳에는 바람이 불고 있어.
그것도 아주 높은 하늘과 중간쯤 하늘에서 부는 바람의 방향이 달라. "
" 그걸 어떻게 알아? "
" 저 하늘의 구름을 봐! 동에서 서쪽을 흘러가지? 그런데 저 별빛 좀 봐!
별이 저렇게 깜박거린다는것은 아주 높은 곳 하늘의 공기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증거야. "
" 별이 어떻게 깜박거리는데? "
" 처음에는 잘 안 보이지만 잘 봐! 서쪽서부터 먼저 깜박이지? 그건 서쪽에서 동쪽으로 공기가 움직인다는 증거야. "
" 그럼 어떻게 되는데? "
" 내일쯤이면 저것들이 내려와 돌풍이 몰아치겠지! "
지금은 없어진 소리지만 그때는 정말 늙은이 허리만 아파도 날이 궂는다는 것. 어린 아기가 입에 거품을 불며 투레질만 해도 비가 온다는 것, 개미가 이사 가고 지렁이가 길 위에 나오는 것만 보고도 누구나 다 일기예보를 할 때였다.
그러나 넘새누나는 여기에 좀 더 사물을 관찰하여 한수 위까지 알았던 것이다.
즉, 살아남기 위하여 어려서부터 사물들의 세심히 관찰하다 보니 그야말로 무엇에나 도사가 된 것이다.
넘새누나는 처음에는 남의 일 참견까지 하고 다녔다.
즉, 타작을 하고 알곡을 검불과 가리는 일.
전에 타작을 하고 알곡을 가리려면 큰 바람개비 같은 걸로 한 사람은 돌리고 한 사람은 알곡을 키에 담아 날려야 하는데 그 바람개비 있는 집도 당시 별로 업었다.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 바람을 이용하는데, 바람이 없는 날에는 한 사람은 키로 바람을 일으켜야 하니 그 고생이 말이 아니다.
그때 넘새누나는 그 집에 찾아가 말한다.
" 내일은 바람이 많이 불어요. 내일 하세요. "
또 비가 오지 않아 물을 퍼대고 있으면,
' 내일은 비가 많이 와요. 내일까지만 기다려요. "
이때 넘새누나의 말만 믿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도 드물지만 세상 인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만약 그 말을 들었다가 맞으면 칭찬해주는 것은 인색하고 만약 맞지 않으면 생욕을 해댄다.
" 너 무당년이 될라고 헛소리냐? 괜히 네 말만 믿었다가 내 일만 망쳤잖아! "
그리고 이 말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 계모라도 알게 되면 그녀는 그날 저녁 그야말로 개 터지듯 터진다.
그 뒤 넘새누나는 하도 맞아서 그런지 다음부터는 일기예보 등 아는 소리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즉, 넘새누나는 나에게만은 자세히 자기의 관찰 결과를 가르쳐주었지만 남들한테는 말을 아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의 말은 거의 70~80 %는 맞는 것 같았다.
지금 서울지방의 일기예보,
" 구름이 좀 끼고 때에 따라 한 때 비. "
'때에 따라 한 때 비?' 그러니까 이 넓은 서울 바닥에 어디선가 비도 조금 올 수가 있다는 말이니 이따위 일기예보는 나도 하겠다. 넘새누나의 일기예보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그외 동네 누가 누구한테 얼마의 돈을 꾸어 었다는데 그 돈 꾸어간 사람의 인상을 보니 그 사람은 사업이 망해서 꾸어간 돈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등의 설명을 해주었고, 이것은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그런 말을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을 아끼던 넘새누나가 하루는 다시 일기예보를 했다.
개울가 뚝방집에 사는 집에 찾아가,
" 오늘 밤 큰 비가 옵니다. 집이 쓸려갈 걸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식구들은 대피하세요. "
" 너, 네 에미한테 또 맞으려고 헛소리냐? 무당 될 년이라더니 정말이구나. 내 이 집에서 30년을 살았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큰 비가 왔어도 끄덕 없었어. 괜히 재수 없는 소리 말고 빨리 꺼져. "
" 아니에요. 정말예요. 큰일나요. 빨리 대피하지 않으면 식구까지 몰살해요. "
" 아니, 이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뭐 우리 식구가 몰살당해? 이년이 재수 없게 악담이네. 너 정말 맞아 죽을래? "
그집 노인도 완강했단다.
이때 이장이 지나가다 그 소리를 들었다. 이장은 그래도 그 동네에서 행세깨나 하는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이장님은 넘새누나에게 물었단다.
" 너 이 집이 오늘밤에 물에 휩쓸려간다는 것을 어떻게 아니? 비야 맨날 오는 비이고 아무리 큰 비가 와도 30년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잖아. "
" 오늘 저녁을 달라요. 여러 가지로 관찰해보니 오늘밤에 큰 비가 와요. 제가 이 집이 걱정이 되어 얼마 전부터 이 집을 세심히 관찰해 보았는데, 이 집에서 쥐들은 벌써 이사를 갔어요. 꼬리를 물고 어린 새끼까지 데리고 갔어요. "
" 뭐라구? 쥐들까지? 그럼 정말이네. 이봐요 영감! 이 처녀 말이 맞아. 빨리 저 언덕 위에 당집으로 대피해. 아, 그 나이 먹도록 말도 못 들었나? 바닷가에 어부들은 일부러 배에 쥐를 기르고 만약 쥐가 도망가면 절대로 그 배는 타지 않아. 만약 탔다가는 그 배가 침몰된다는 것을 쥐들이 먼저 알거든. 저 애 말이 틀려봐야 별로 손해볼 것 없으니 저 애 말대로 해! "
먼저 글에서 얼마 전 있었던 서남아시아 지진 해일 때도 인도네시아 어떤 작은 섬에서는 단 한 명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즉, 배에 있던 쥐들이 산으로 도망가는 것을 본 주민들은 벌써 큰 해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모두 산으로 대피했기 때문에 단 한 명의 사고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미물들은 비록 창의력을 없을망정 신의 섭리, 즉 자연의 섭리대로 사니 자연의 섭리를 미리 예측할 수가 있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미물들은 그것을 안다고 했다. 그러나 창의력이 있는 인간은 그 창의력 때문에 오만해져서, 즉 선악과의 지혜가 생겨서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다 보니 엄청난 재난을 당했다고 했다.
여기서 이장님은 그런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넘새 누나는 자기의 관찰력으로 뚝방 같은 데 쥐굴에서 큰물이 오려면 쥐들이 도망가는 것을 관찰하여 알았던 것이다.
하여간 이장님의 강요로 그 집 식구들은 투덜대며 당집으로 대피했고 새벽녘에 엄청난 천둥번개와 함께 큰 비가 쏟아져 그 집은 흔적도 없이 쓸려가버렸다. 지금 같으면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군청에서 표창장이나 상금이라도 받을 일이지만 그때는 그저 칭찬 몇 마디로 끝이 났다.
그러나 넘새 누나는 그때부터 유명해졌다. 일기예보는 그만두고 누구네 굴뚝 고치는 날짜까지 물으러 왔다.
즉, 유명하다니까 점점더 유명해진다.
굴뚝이나 부뚜막 같은 것은 아무 날이나 고치면 동티가 나니 무당 등에게 물어 손 없는 날을 잡아 고쳤다.
넘새누나도 그야말로 이런 선무당 취급을 당했으나 손 없는 날 잡기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지금도 이사를 가려면 손 없는 날을 따지는데, 손 없는 날이란 음력으로 초하루 이틀은 동쪽에 손이 있고, 사흘 나흘은 남쪽에 있으며, 이레 여드레는 북쪽에 있고, 아흐레 열흘은 아무데도 손이 없다.
그러니까 아흐레 열흘에 이사가는 것은 아무데도 손이 없으니 상관 없지만, 초 하루 이틀은 동쪽에 손이 있으므로 남쪽 서쪽 북쪽으로 이사 가는 것은 손이 없어 괜찮은 것인데, 이 간단한 것 하나 알지 못하고 무당집에 간다.
넘새누나는 이런 원리를 일일이 설명해주며 가르쳐주어 그야말로 동네의 보배가 되었다.
그런데 동네의 보배가 된 넘새누나가 시집을 가게 됬다.
그 이장님의 형님이 한 30리쯤 떨어져 살고 있는데 그 집도 행세깨나 한다는 집이다.
이장님은 이 처녀가 하도 영리하니 족하 며느리라도 삼고 싶어 형님을 구워삶은 것이다.
신랑될 사람은 서울 연희 전문학교(현 연세대)에 다니는 인텔이라 하였다.
그때는 맞선도 못 보던 시대였으므로 사진 교환도 매우 개화된 생각이었는데, 넘새누나는 사진 찍을 돈도 없어 사진이라곤 있지도 않았다.
넘새누나는 정말로 용감했다.
이장님이 사진을 달라는 청에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없으니 지신이 직접 그 동네 장터에 찾아가 자신의 실물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도 신랑감을 보고 그 관상을 보고 난 후에 자신의 일생을 맡기고 싶어서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과감한 제안을 했던 것이다. 좀 개화된 신랑짜리야 불감청이언정 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환영했으나, 시부모짜리야 좀 건방지다는 생각을 했지만 시숙이 하도 칭찬하니 그대로 응했다.
드디어 그들은 그때 말로 생소했던 맞선이란 걸 봤고, 신랑은 처음에는 촌 무지렁이인 줄 알았다가 몇마다 해보니 말이 조리가 있고 학식이 높아 한 눈에 뿅 갔고 넘새누나 역시 만족한 눈치였다. 넘새누나 집에서는 사돈네가 행세깨나 한다니 그제서야 넘새누나에게 가끔 가다 이밥도 주었고, 동네사람들은 동네의 보배를 잃는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그런데 넘새 누나가 시집을 가자 바보가 되었다고 했다.
즉, 친정에 있을 때 일기예보도 그렇게 정확히 하여 여러 인명까지 살렸다고 그 동네까지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도 기대가 컸는데 막상 시집을 와서 무엇인가 물으면 도무지 모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양하는 줄 알고 시부모가 설득했으나 정말 모르니 모른다는 것이다. 하루는 시 아버지가 정중하게 물었단다
" 너네 친정에 있을 때는 그렇게 정확히 일기예보 등을 하여 인명을 살리고 농사에 도움을 주었다는데, 여기와 서는 도무지 모른다니 그 이유가 뭐냐? "
" 예. 죄송합니다. 저는 그 동네에 태어나서 19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 동네 산천 사정과 바람이 도는 방향을 대당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동네는 산도 다르고 물도 다르고 휘도는 바람의 감각도 달라서 제가 전에 느끼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동네 산수지리 등 모든 것을 대강 파악하려면 최소한 3년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시부모는 너무나 조리있는 며느리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연세전문 어쩌고 유식하던 신랑도 이 신부 앞에서는 큰소리를 못하고 사랑이 아니라 존경까지 했단다.
넘새누나의 서러운 생활은 드디어 끝이 나고 행복의 날들만 올 것 같았다.
그러나 넘새누나는 행복한 얼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수심에 차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는 일은 누에를 열심히 길러 명주를 짜는데 이 명주 짜는 법이 매우 특이했다 한다.
즉, 그렇잖아도 가는 명주실을 더욱 가늘게 하여 비비고 꼬아 명주를 짜는데, 보통 명주 같으면 바디질을 한두 번 할 것을 열 번씩이나 하여 그야말로 물도 새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짰다고 한다. 시어머니나 동네 사람들이 물어도 그저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는 일을 할 뿐이라 했다.
시어머니 등은 궁금해 못 견디었으나 현명한 며느리가 하는 일이니 그저 구경만 할뿐이다.
'아마 명주를 잘 짜서 시부모 옷을 해주려 하는 모양이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명주를 다 짜고는 그 명주로 참으로 이상한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단다.
그것은 요즘 말로 런닝샤스 같은 것과 팬티 같은 것인데 이것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니, 명주로 런닝샤스와 팬티? 당시에는 런닝샤스나 팬티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그런 말도 없었다.
남자들은 그저 바지 저고리, 그리고 여름에는 등거리에 잠방이를 그대로 입었으니 그야말로 괴춤에 괴타리만 풀으면 그야말로 본색이 다 나온다.
또 속옷이라는 것이 굳이 있다면 고이적삼 등인데, 이 '괴춤, 괴타리, 고이'란 말의 어원은 '고이는 것', '꼬이는 것', 즉 '꼬챙이'고 이것은 꾀는 기구를 가진 사내들의 남근을 뜻한다. 그러니까 꾀보, 꾀쟁이란 바로 여자를 잘 꾀는 놈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런닝샤스나 팬티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런닝샤스나 팬티라는 우리말도 없던 시절 구경도 못한 그런 물건을 만드는 넘새누나를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시어머니는 물론 신랑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명주 런닝샤스와 팬티는 한 겹으로 하는게 아니라, 먼저 다섯 겹으로 하고 이것을 칼로 찔러본 다음 열 겹으로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한다. 정말 정신이 돈 사람이 아니고는 할 짓이 아니었다.
- 다음으로 계속 -
필자가 연속극을 보면서 못된 것만 배운 것이 꼭 재미날만하면 다음이라 한다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넘새누나의 말 '사물을 보고 그 주위 환경과 비교 판단하고 생각하라'는 말과 같이 한번 넘새누나의 이상한 행동을 추리해보시라! 도대체 이 물건은 무엇이며 무엇에 쓸 것인가를...
다음엔 정만 넘새누나의 일생일대 행복한 순간과 피눈물 나는 인고의 세월이 다시 이어지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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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정리 한다.
먼저 전철간에서 앉은 사람들이 어디 가서 내릴 것인지, 맞은 편에 앉은 사람들의 직업은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이고 그 사람의 학식이나 인품은 어떤 것인지 한 번 보면 알 수가 있다고 했다. 꼭 사이비 도사 같은 말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인데, 다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부터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경험을 쌓아 두어야 한다. 넘새누나처럼 끊임 없는 사물의 관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초등학교 2학년인 밤톨이 친구들은 거의 핸드폰을 사주어 한 달에 핸트폰 비용이 십만여 원씩 나오고 목이 마르면 돈 천원을 들고 슈퍼로 가서 생수를 사 마시는데, 밤톨이 놈은 물도 그 더럽다는 수돗물을 마시고 핸드폰 하나 없이 맨날 공짜 공중전화나 눈독을 들이니 참 눈물 날 정도로 불쌍한 애 같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창의력이 대단해서 없으면 있게 한다. 궁하면 통하게 한다.
이 아이들의 잠재적 창의력을 죽이는 것은 아이들이 부족함이 없이 다 해주는 것이다.
즉, 아이들에게 부족함이 없이 다 해주면 그 놈의 창의력이 살아날 틈이 없어진다.
또 먼저 그 잘난 아파트에 살면서 서민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그 엄마들은 밤톨에미가 아이에게 수돗물 좀 먹인다고,
" 어떻게 애들한테 수돗물을 먹게 교육시켜요? 정말 수준 차이네. "
라고 했다. 그러나 정말 누가 수준 차이인가?
만약 남편이 어떤 병이라도 걸리던가 실직이라도 하면 그들은 서민 임대아파트로 가야 하고 더 안 되면 지하 월셋방에 가야 한다. 도대체 생존력이란 없고 그저 오늘만 살고 내일은 생각지도 않는 창녀와 같다.
그러면서도 부자는 되고 싶겠지. 거기까진 좋다. 그러나 그 어린 아이까지 빌어먹을 짓을 가리킨다.
넘새누나는 그 서럽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그의 동생 상진이는 그렇게 귀여움과 부족함이 없이 컸는데도 바보가 되었다.
'어릴 때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옛 말이 있다.
부자 되려는 사람은 대인관계를 잘 해야 하고, 이 대인관계를 잘 하려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물론 아기까지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또 지금 이 천국에 살면서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들. 특히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 말에 '줄수록 양양거린다'는 말이 있듯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점점 더 불만이 많아진다.
필자가 예언하건대 아마 우리가 그 행복하다는 천국에 가보면 그곳은 자살한 시체가 들퍽거릴 것이다. ㅎㅎ
다음은 신지녹도전자 '열'에 대당하는 글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다음 그림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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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새장을 열고 날아오르는 새
http://cafe.daum.net/chunbuinnet 우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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