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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세상만사

환경 호르몬, 넌 누구냐

by 현상아 2019. 6. 23.

텔레비전에선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맛집 소개가 한창이다. 30년 전통의 이 식당은 좋은 재료만을 엄선해서 밤새 정성 들여 푹 끓인 국물이 최고라고 칭찬이 대단하다. 아, 나도 한 그릇 시원하게 비우고 싶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커다란 솥에서 펄펄 끓는 국물 안에 플라스틱 바가지가 푹 잠겨 있다. 이 바가지로 국물을 양껏 퍼서 플라스틱 통에 담더니 냉장고로 가져간다. ‘저 식당은 안 되겠어!’ 입맛이 뚝 떨어진 나는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어느덧 배가 출출해서 찾아간 곳은 우리 동네의 시장통 가게. 진열대에서 먹을거리를 고르며 상품 라벨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원재료가 국산인지 외국산인지, 좋은 재료인지도 따져 보고 포장지도 확인해 본다. 유리병에 든 먹을거리라면 재료 확인만 한 뒤 통과! 그러나 플라스틱 포장지나 비닐에 담긴 먹을거리는 요모조모 더 따져 본다. 뜨거운 상태이거나 기름기가 든 상태로 플라스틱에 담긴 건 아닌지, 플라스틱의 종류가 무엇인지도 확인해 본다. 여러 겹 포장한 과대 포장은 아닌지, 이 플라스틱 포장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본다.

 

이런 까탈스러운 과정을 모두 통과한 뒤에야 먹을거리는 비로소 우리 집 입성이 가능해진다. 이 재료로 만든 음식도 사기그릇이나 스테인리스, 유리그릇에 담아 둔다. 이렇게 쇼핑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텔레비전의 맛집 소개마저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 건 순전히 환경 호르몬 때문이다.

 

 

환경 호르몬, 넌 누구냐

 

호르몬은 사람과 동물의 몸속에서 만들어져 피를 타고 흐르면서 특정 기능을 하는 화학 물질을 말한다. 성장 호르몬은 키가 자라게 하고, 성호르몬은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뚜렷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남자의 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굵어지는 것, 여자의 가슴이 커지고 월경을 하는 것이 모두 성호르몬 때문이다. 이렇게 호르몬은 주로 성(性)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데, 외부에서 들어온 환경 호르몬 또한 자연적인 성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환경 호르몬의 본디 이름은 내분비 교란 물질이다. 환경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여러 기능을 하는 호르몬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몸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 아니라 바깥 환경에서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몸속에 들어와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하면서 정상적인 몸 상태를 바꿔 버리는 것이다. 호르몬은 보통 백만 분의 1에서 수십억 분의 1mg정도로 아주 작은 단위로 활동하기 때문에 양이 조금 달라지거나 외부에서 방해 물질이 들어오면 쉽게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이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들이 사람과 동물의 몸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내분비 교란 물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환경 호르몬은 우리 생활에 매우 넓게 퍼져 있다. 머리를 감을 때 쓰는 샴푸와 이를 닦는 치약 속에 든 계면 활성제, 빨래할 때 넣는 합성세제 등에도 들어 있고, 즉석식품 용기를 비롯한 일회용품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그릇에도, 모기를 잡으려고 뿌리는 살충제에도 들어 있다. 새집 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가구 접착제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 세탁소의 드라이클리닝 세제, 페인트 등 생활 곳곳에 환경 호르몬이 있다.

 

수년 전 아기 젖병에서 검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스페놀 에이, 여러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하는 프탈산 에스테르, 컵라면 용기의 재료인 스타이렌 수지 등도 대표적인 환경 호르몬이다.

 

이 환경 호르몬은 음식과 호흡기, 피부 점막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스며든다. 비스페놀 에이는 불임 확률을 높이며 치아 손상과 천식 위험도 크다. 플라스틱 제품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 쓰이는 원료인 프탈레이트는 어린이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또, 성조숙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성장판이 일찍 닫혀 아이들의 키 성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아이가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하여 공부에 지장이 있거나 행동이 과격하며 남을 때리고 공격하는 것도 환경 호르몬 영향일 수 있다고 한다.

 

여성에게는 자궁암이나 유방암 발병을 높이고 불임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자의 몸에서 점점 여성과 비슷한 징후가 나타나고, 생식기가 작아지거나 정자의 숫자가 줄어들기도 한다. 또한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갖가지 질병의 원인이 되고 당뇨병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설거지와 빨래를 할 때 사용하는 합성 세제는 냇물이나 강으로 흘러들어 물고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

 

환경 호르몬은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들어진 합성 화학 물질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흔하고 신경 써서 멀리해야 할 것은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비닐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릇과 포장 용기, 숟가락, 젓가락, 컵, 비닐 팩, 랩으로 싼 음식 등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올 수 있다. 특히 뜨거운 음식이나 기름기 있는 음식을 담거나 떠서 먹을 때 위험할 수 있다. 이처럼 플라스틱과 비닐은 사용할 때도 문제지만 태우면 맹독성 다이옥신이 나온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장난감도 잘 골라야 한다. 물고 빠는 습관이 있는 아이의 장난감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최근에 ‘BPA-Free’라고 적힌, 비스페놀 에이가 나오지 않는 플라스틱 물통이나 젖병, 식기 등이 생산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무리 비스페놀 에이가 들어 있지 않더라도 플라스틱 제품은 환경 호르몬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플라스틱보다는 천연 재료로 만든 제품이 낫고, 포장 용기나 그릇은 유리와 스테인리스가 낫다. 채소와 과일은 농약을 치지 않은 국내산 유기농 식품이 좋고, 우유나 유제품도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된 것이 좋다. 일회용 용기에 담긴 즉석식품이나 음식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플라스틱은 환경 호르몬의 주요 원인이지만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인류 역사는 구석기를 거쳐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이어졌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제 플라스틱 시대라고 말한다. 플라스틱은 매우 가볍고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고, 투명한 색부터 화려한 색깔까지 다양한 빛깔로도 만들 수 있으며, 전기가 통하지 않아 절연성도 뛰어나다. 그러나 고온에 잘 녹으며 표면이 부드러워 흠집이 생기기 쉽고, 정전기를 띠기 때문에 표면에 먼지가 잘 붙는 단점도 있다.

 

플라스틱은 지구상에 없던 물질을 인간이 만들어 낸 것으로, 석유를 널리 사용하면서부터 개발되어 탄생한 지 이제 100년가량 되었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분해되는 기간은 500년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고, 어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분해 기간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편안한 마음으로 쓰고 버린다. 하지만 플라스틱 종류가 너무 많아서 재활용되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태우거나 쓰레기 매립장에 묻는데, 수거되지 않은 나머지는 어딘가 묻혀 있거나 떠돌아다닌다. 해양 쓰레기의 60-80%는 플라스틱이 차지하고, 바다에 떠다니거나 풀숲 사이에 흉물스럽게 버려져 경관을 해치며 관광 산업에도 피해를 준다. 잘게 부서진 플라스틱은 새와 물고기가 삼켜서 결국 이들을 죽게 하고, 어업과 어장 같은 수산업에도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배의 스크루에 감겨 선박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이 플라스틱 시대에 플라스틱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순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특히 짧은 시간에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선택하지 말자. 석유는 지구가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 낸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는 이 소중한 석유를 10분가량 쓰고 난 뒤 버려질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수백 년 동안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로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죽어 사라져도 내가 사용한 플라스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계속 이렇게 써도 될까?

 

 

2주만 노력해도 줄일 수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의 종류가 늘어난 만큼 이런 제품에 쓰이는 화학 물질은 더욱 다양해졌다. 인간의 몸속에 들어온 유해 화학 물질은 몸 밖으로 배출되기도 하지만 배출되지 않고 몸속에 쌓이기도 한다. 이렇게 몸속에 쌓인 유해 물질의 총량을 ‘보디버든’이라고 한다. 보디버든을 구성하는 유해 화학 물질은 여러 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는데, 암이나 기형, 당뇨병, 불임, 자궁 내막증 등에 영향을 미치고, 월경 불순과 아토피, 노인성 치매 등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아이쿱생협은 2017년 4월 13일부터 시민 500명과 함께 2주 동안 보디버든을 줄이는 실험을 했다. 유해 물질 함유 가능성이 큰 제품의 사용을 피하는 ‘노출 줄이기’, 충분한 물 마시기와 적당한 운동을 통한 ‘적극적으로 배출하기’, 사용하는 제품에 보디버든을 증가시키는 성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기’ 등 보디버든을 줄이기 위한 세 가지 실천을 한 뒤 참가자들의 실험 전후의 보디버든 변화를 알아보았다.

 

구체적으로는 친환경 유기농 재료로 요리하기, 육류 줄이기, 세제와 화장품 사용 줄이기,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품·스프레이 사용 줄이기, 손 씻기, 환기, 청소하기 등을 실천했다. 그랬더니 500명의 몸속의 유해 물질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2주 뒤에도 이런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환경 호르몬을 비롯한 유해  화학 물질은 알면 알수록 일상의 공포로 다가오곤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 이겨 내야 하듯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유해 화학물질을 줄이는 실천법은 친환경 생활과 맞닿아 있고, 세상으로 좀 더 눈을 넓히면 환경 운동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제 환경 호르몬의 걱정 없이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자!

 

 

유해 화학 물질을 줄이는 법

 

• 농약 노출을 줄이도록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이용한다.

• 합성 계면 활성제, 인공 향이 들어간 제품을 피한다.

• 친환경 주방 세제와 비누, 세탁 세제를 이용한다.

• 친환경 화장품을 사용한다.

• 색조 화장, 매니큐어, 인공 향 첨가물이 들어간 제품은 피한다.

• 샴푸, 린스, 보디워시, 보디로션, 치약, 구강 청결제 등은 친환경 제품을 사용한다.

•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를 사용한다.

• 플라스틱 용기의 사용은 피하고 유리나 사기,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한다.

•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우지 않는다.

• 일회용 랩과 같은 포장지는 사용하지 않는다.

• 탈취제, 방향제, 향수, 살충제, 파리약, 모기약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모기약보다는 모기장을 친다.

• 하루에 여러 번, 특히 식사 전엔 손을 씻는다.

• 실내를 자주 환기하고 물걸레질하여 청소한다.

 

* 박경화 - 환경 단체인 녹색연합에서 활동했다.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환경 책을 내고자 환경 생태 운동가로 활동하며 생태적인 삶을 모색하는 글을 써 왔다.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여우와 토종 씨의 행방불명」, 「지구인의 도시 사용법」 등의 환경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7년 11월호, 박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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