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업, 송록도, 19세기, 종이에 수묵
담채. 58.5 cm × 32 cm, 충북대학교박물관 소장.
‘송(松)’은 소나무이고, ‘록(鹿)’은 사슴입니다. ‘송록도’는 그러므로 소나무와 사슴을 그린 그림이지요. 소나무나 사슴은 둘 다 십장생에 속해서, 예로부터 천 년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사슴은 천 년을 살면 푸른 빛을 띄고, 다시 오백 년을 지나 흰 빛을 띄며, 또 오백 년이 지나 검은 빛을 띈다고 하였습니다. 그림 속의 사슴은 고개를 들어 솔잎을 먹고
있습니다. 깨끗한 털, 날씬한 다리, 맑고 푸른 눈빛, 가지런한 뿔이
인상적입니다. 소나무
둥치 아래는 도장에 ‘장생안락(長生安樂)’이라고
새겨서 찍었습니다. 편안하고 즐겁게 오래 산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소망입니다. 소나무와 사슴 그림은 그러므로 즐겁고 편하게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이지요. 사슴이 실제로 천 년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사람들이 사슴을 신비한 장수의 동물로 여기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숫사슴의 머리에 달린 뿔에 있습니다. 이 뿔은 마치 풀이나 나무처럼 해마다 다시
돋습니다. 봄에 난 새 뿔은 녹용이라고 하며, 점점 딱딱한 각질로 변해 이듬해 봄에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이 뿔이 나뭇가지와 비슷한 모양이며, 매년 새로 돋아나는 이치를 보고
사슴을 여느 동물과 다르게 보았습니다. 옛 글에 등장하는 사슴은 대개 어질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로
묘사되었습니다. 고려 시대의 문신인 서희 집안에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서희의 할아버지는 화살에 맞고 쫓기는 사슴을 구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 속에 한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고맙다.
네가 살려 준 사슴은 내 자식이다. 나는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그대의 후손들을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할 것이니라.” 이후로 과연 그 자손들이 줄줄이 재상을 지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우리 신화 속에는 사슴이 지상과 천상을 이어 주는 동물로
나타납니다. 동명왕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났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이웃 나라인 비류국의 송양왕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일찍이 바닷가에 살다 보니, 그대와 같은 인물을 본 적이 없었다. 오늘
그대를 만나 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대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하늘의 자손이다. 감히 묻겠는데 그대야말로 누구인가?”
송양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습니다.
“하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신선의 후손이라고 말해 두지. 여러 대를 이어 왕 노릇을 했단
말이야. 그대는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고 영토도 작으니 나와 합치는 게 어떤가?” 송양왕은 비로소 속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왕이 그 말에 바로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하늘의 자손이라고 했거늘, 그대는 신의 자손이 아니면서 어찌 왕이라고
하는가. 오히려
나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하늘이 그대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송양왕은 오히려 난처해졌습니다.
말로 해서는 더 이상 뜻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였는지,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왕끼리 활쏘기나 한번 해 보자.” 왕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송양왕은 사슴을 그려서 백 걸음 앞에 걸어 놓고 먼저 활을
쏘았습니다. 겨우 맞추기는 했지만, 가운데 배꼽 부위를 많이
벗어났습니다. 이때 왕은 사람을 시켜 옥 가락지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역시 백 걸음 앞에 걸어 놓고 활을 쏘았습니다.
화살은
정확히 중앙에 맞아, 옥 가락지는 ‘쨍’
소리를 내며 부서졌습니다. 송양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하지만 선뜻 왕의 실력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은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하루는 서쪽으로 나가 흰 사슴을 한 마리
사로잡았습니다. 왕은 곁에 있는 신하들을 시켜 사슴을 벌판 한가운데 거꾸로 매달게
하였습니다. 왕은 사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슴아,
하늘에 고하여 비를 내리게 하여라. 그리하여
저 비류국의 수도를 물에 잠기게 하지 않으면 내 너를 살려 두지 않으리라!”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슴이 목을 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이내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는 일 주일 내내 내렸고, 마침내 비류국의 수도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마침내 송양왕은 고구려에 항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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