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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생활리듬 및

유쾌한 대화법 78

by 현상아 2006. 9. 10.
따져서 이길 수는 없다

누군가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잘못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면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화가 나는 법이다. 그 때문에 당신이 만약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일일이 따져 반드시 그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꽉 막힌 사람이어서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어서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면 그때그때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어 시시비비를 가렸을지라도 마찬가지다. 상대편은 자신의 잘못은 잊고 일일이 따지는 것만을 피곤하게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편은 당신의 지독한 말에 상처받고 언젠가는 복수할 궁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당신이 아무리 옳아도 일일이 따져서 모욕을 준 당신의 승리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따지기를 잘하는 당신은 어쩌면 바르고 정의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만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정의감 때문에 남들이 꺼리는 일도 당신이 먼저 나서서 따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당신을 정의의 사자로 평가하는 대신 “꼬장꼬장하고 피곤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그래서 당신과의 대화를 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신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상대가 없어 외로울 것이다. 당신은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가 야속하겠지만 유쾌한 대화 상대를 만나려면 당신의 눈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그들이 사람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밖에 없는 잘못을 포용하고 이해해라. 타인의 조그만 잘못에 대해 핏대를 세우며 일일이 따지던 자세를 버리고 “그럴 수도 있다.”라고 받아들여라. 사람들이 당신에게 대화를 청해올 것이다.


유머에 목숨을 걸지 말라

당신은 스스로 유머 감각이 없어서 설득력이 없다고 좌절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남들은 입만 열면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는데 왜 나만 그렇게 할 수 없는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당신은 늘 사람들이 유머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당신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에게 설득력이 없는 것은 유머가 없어서가 아니라 유머가 없어서 설득력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유머 감각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 억지로 유머를 말해 보았자 분위기만 썰렁해질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억지로 유머를 사용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타고난 말솜씨를 정확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우선 당신은 “내가 말하면 항상 썰렁해.”라며 의기소침해하는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유머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유머가 전혀 없어도 얼마든지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유머가 없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들어 주는 사람이 설득력이 있으며, 유머로 떠들썩하게 말하는 사람보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정성을 기울여 말하는 사람이 더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숫기 없고 조용한 사람이라면 유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억지로 유머를 개발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당신의 스타일을 살려 정성껏 말하면 어설픈 유머로 웃기는 것보다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편은 내가 아니므로 나처럼 되라고 말하지 말라

당신도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또 그 사람에게 “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야.” “내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며 화를 낸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상대편이 하는 짓이 너무 말도 안되어서 기가 막혔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상대편은 그렇게 펄펄 뛰는 당신을 향해 “네 상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야단이야. 내 상식으로는 네가 이해 안 된다.”라며 코웃음을 칠 것이다. 상대편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상식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도 내가 가진 상식과 똑같은 상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신은 이기주의자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전혀 다른 상식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대화가 유쾌해진다.


당신이 상사인데 부하직원들에게 “나는 전에 그렇게 일하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부하직원들에게 존경받기 어려울 것이다. 존경은커녕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당신이 사람마다 상식이 다르며 세대에 따라서는 더욱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그들은 당신을 대화에 끼워 줄 것이다. 아버지인 당신이 대학 입학 후 빈둥거리는 아들을 향해 “나는 대학 때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하고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왜 너는 그 모양이냐?”라고 말하면 당신의 자녀는 당신처럼 되기 힘들어 당신과의 대화조차 회피할 것이다.


농담이라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가볍게 던진 농담 때문에 상대편이 화를 내면 “야, 농담도 못하냐?”라고 오히려 큰소리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신은 농담이라고 주장하지만 듣는 사람은 절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말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농담 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당신이 친한 친구에게 “네 주제에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와 같은 농담을 했을 때 당신 친구는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이 농담이라고 주장하는 그 말이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무시하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친구에게 “농담한 걸 가지고 뭘 그래?”라고 일축한다면 당신은 친구와의 대화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제자인 당신이 아무리 스승과 친해도 “선생님은 성적 나쁜 애들은 사람으로 안 보시잖아요?”라고 농담을 하면 무례한 것이다. 또는 교직에 몸담고 있는 당신이 모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 제자를 향해 “네가 웬일이니?”와 같은 농담을 하면 그 한 마디로 제자의 기를 꺾을 수 있다. 이처럼 농담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당신이 농담으로 한 말을 상대편도 반드시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말은 하기 쉽게 하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해라

공부를 많이 한 당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어나 전문 용어를 많이 사용해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나치게 외국어나 전문 용어를 많이 섞어 쓰면 사람들은 당신을 유식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정말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상대편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이 진짜 말을 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전문 용어를 남용하다가 약간씩 틀리게 말한다면 그것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분은 해외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20년 간 체류하다 오셨는데 그분이 나보다 더 영어를 섞지 않고 말해 내가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반면에 미국에 몇 달 연수를 다녀오신 분이 영어 반 우리말 반으로 말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도 있다. 연변 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나라에 온 후 남한 말이 다 영어 같아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말로 번역이 안 되어 원어를 사용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버젓이 우리말이 있는데 영어를 쓰면, 유식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 혹시 열등의식이 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말이란 아무리 잘해도 듣는 사람이 소화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말을 잘하려면 듣는 사람을 위해 쉬운 용어로 말해야 한다.



흥분한 목소리보다 낮은 목소리가 위력 있다

당신은 역시 목소리가 큰 사람을 당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당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는 길거리에서 목청 높여 싸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런 식으로 싸움이 시작되면 상대편의 기세를 꺾기 위해 별의별 유치한 말을 다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런 식으로 소리를 높여서 진짜로 이긴 적이 있는지. 당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상대편은 마음속으로부터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뭐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짜 당신 생각이 옳고 상대편이 그르다는 확신이 있다면 목소리를 낮추어 보라. 평소보다 낮은 음성은 듣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낮은 목소리는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를 만들어 상대편의 입을 다물게 하는 힘이 있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더 위력 있다는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뜨거운 불일수록 차가운 물에 쉽게 꺼지는 것처럼 뜨겁게 흥분한 사람은 차갑고 낮은 목소리를 들으면 쉽게 가라앉는다. 내가 정말 옳다는 말을 하고 싶으면 목소리를 높여서 할 것이 아니라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라.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더 쉽게 내 의견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을 내세워 말하면 자존심을 상하게 된다

당신이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면 자존심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뿐만 아니라 자존심 강한 사람은 대개 당신처럼 행동해서 변변한 짝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존심이 당신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은 당신의 자존심 뒤에 숨은 진심까지 보지는 못한다. 당신의 깊은 마음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내 당신 곁을 떠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자존심 뒤에 숨긴 당신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에게 아쉬운 말을 하지 못해 남의 도움조차 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매우 불만스럽게 고립되어 버린 당신의 처지가 마치 남의 탓인 것처럼 말할 것이다. 게다가 당신은 자존심 때문에 뻔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제때 사과하지 못해 남들을 불편하게 했을 가능성도 높다.


당신이 믿는 자존심은 대개 자만심과 혼동되어 당신은 남들의 잘못을 쉽게 용서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자존심을 내세워 “고맙다.”는 말 대신 “그런대로 괜찮군.”이라고 말하거나 사랑해.“라고 말하는 대신 ”됐어. 딴 데 가서 알아 봐.“라고 말하면 상대편은 당신의 자존심이 불편해 당신의 자존심을 짓밟고 당신 곁을 떠나 버릴 것이다. 자존심이란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남에게 불편을 겪게 하는 사람은 남의 존재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자격이 없다. 따라서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며 대화하려면 당신이 자존심이라고 믿고 있는 고집을 버려야 한다.


  

남의 명예를 깎아내리면 내 명예는 땅으로 곤두박질 처진다

당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사람이 화제에 오르면 “그 인간 별거 아냐. 전에 내 밑에 있었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별 의도 없이 그렇게 말했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남의 명예를 깎아내린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세상 참 좋아졌지. 그 사람 용 된 거야. 옛날에는 형편없었어.”라고 말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삼자일지라도 당신이 남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모습을 좋게 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 말에 동조하기보다 당신 태도를 우습게 여길 가능성이 더 높다. 그 중에는 “흥, 주제 파악도 못해.”하며 코웃음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이 나쁘면 누군가가 당신이 한 그 말을 당사자에게 옮길 수도 있다. 운이 좋아서 당신 말이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해도 당신에게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 감정이란 서로 교류하는 것이어서 당신이 그 사람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동안 그 사람 역시 당신의 명예가 우습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당신보다 더 설득력 있게 당신의 명예를 짓밟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화문과 여의도의 행세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라. 어린 시절을 내세울 만한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가? 그들은 오히려 가난하고 비천한 어린 시절을 훈장처럼 여기며 산다. 그런 그들에 대해 “그 사람 왕년에는 별 볼 일 없었다.”라고 말해 보았자 귀담아 들을 사람도 없다. 남을 씹는 맛이 고기 씹는 맛보다 더하다고 해도 이제는 버려야 한다. 남을 씹는 대신 “그 사람 아주 좋은 사람이다.” “같이 일해 보니 언젠가는 큰 인물이 될 것 같다.”라고 바꾸어 말해 보라. 당신의 운명까지 바뀔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깎아내리면 당신이 먼저 깎이지만 당신이 누군가를 높이면 당신이 더 높아질 것이다.



쓴소리는 단맛으로 포장해라

당신이 만약 남에게 쓴 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는 나처럼 올곧은 사람이 설 자리가 없다.”라고 착각하기 쉽다. 남의 쓴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쓴 소리 잘하는 당신 역시 다른 사람의 쓴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을 쓰며 우리나라에서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 설문 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책에 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분이 2등에 뽑혔다. 책이 출간되어 그분에게 가지고 가자 그분은 대뜸 “내가 2등이라고?”하며 얼굴빛이 싸늘해졌다. 그분은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말을 가장 잘한다고 믿었던것 같다. 나는 설문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분과 통화할 일이 생겨 전화를 했지만 비서가 바꾸어 주지 않았다. 그분은 항상 웃는 얼굴에 남에게 쓴 소리도 잘하는 분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쓴 소리는 단 한 마디도 듣기 싫어했던 것이다.


그처럼 쓴 소리는 쓴 소리 잘하는 사람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이 정말로 올곧은 사람이라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쓴 소리로 적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단맛으로 포장해라. 당신이 만약 밥 먹을 때 다리 떠는 남편의 버릇을 고치고 싶다면 “또 다리를 떨어?”라고 쓴 소리를 하는 대신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덜 떠는 것 같애.”라고 말해 보라. 당신 남편은 계면쩍게 웃으며 다리를 떨지 않기 위해 신경 쓸 것이다. 당신이 만약 상사에게 결재 라인을 줄여 달라는 쓴 소리를 하고 싶으면 “결재 라인이 길어서 업무가 지연돼 문제가 많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결재 라인이 짧아지면 그런 것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단맛으로 포장해 말해 보라.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릴 것이다. “안 된다.”고 말하는 대신 “노력해 보겠다.” “그럴 리가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착오는 아닌 것 같다.” “문제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해라. “절대 하지 말라.”대신 “안 할수록 당신에게 이익이다.”라고 바꾸어 말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비밀은 차라리 개에게 털어놓아라

세상에 비밀은 없다. 상대편과의 우정을 돈독히 하려고 당신의 모든 치부를 다 말해 주었는데 그가 당신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를 제삼자에게 공개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배신감으로 치를 떨 것이다. 그러나 그들만을 탓하지 말라. 당신에게도 잘못이 있다. 당신의 잘못이란 비밀이 지켜지기를 바란 비현실적인 판단이다. 관계가 달라지면 공유하던 비밀의 무게는 먼지처럼 가벼워지는 법이다. 연인간에도 금이 가면 둘만의 비밀이 흉으로 전락하지 않는가? 따라서 지금 친하다고 해서 당신의 치부를 낱낱이 다 말하면 안 된다. 그들은 언젠가는 나와 가장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할 라이벌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당신이 털어놓은 비밀들을 죄의식도 없이 무기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선진국 사람들은 진짜 비밀은 가족이 아닌 개에게 털어놓는다고 한다. 동료를 욕하거나 흉을 보는 것도 개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회사에서 열 받는 일이 생기면 개에게 그 사람 욕을 해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그들은 개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가르치려고 하면 피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한 살 위인 형도 동생을 가르치려고 한다. 며느리도 구식 시어머니에게 신식 살림법을 가르치고 싶어하고 신입 사원도 최신 정보에 어두운 직장 상사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을 가르치는 것은 좋아하지만 남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편이 잘 모르는 일을 가르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가르치려면 방법을 달리하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가르침받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도 당신이 가르치는 방법을 달리하면 무조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가르치면서 윽박지르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상대편은 “지가 뭔데?”하며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이런 식으로 한번 해보면 어때?“라고 부드럽게 말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치면 잘 받아들일 것이다.


만약 며느리인 당신이 시어머니에게 새로운 살림법을 알려주고 싶다면 ”어머님, 그런 방법은 구식이구요. 신식은 이렇게 하는 거예요.“와 같은 무례한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당신의 시어머니는 당신에게 ”이것이 감히 나를 가르치려고?“하며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자존심을 북돋우며 ”저도 잘 몰랐는데 친구가 알려 줘서 이런 식으로 해보니까 잘 되던데요.“라고 말하면 시어머니도 며느리의 가르침을 거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내들은 남편이 운전이나 골프를 가르쳐 주며 구박하면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가르치면서 자존심을 짓밟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내를 당신과 같다고 착각하지만, 당신 아내의 능력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아내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 정말 잘 가르치고 싶으면 상대편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남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말도 연습을 해야 나온다

모국어는 누구나 저절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말도 갈고 닦아야 잘할 수 있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은 연습 부족 때문이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 중에는 마음이 고약해서라기 보다 칭찬하는 말을 연습해 두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말은 연습이 잘 안되어 있어 그처럼 사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 막 진급한 동료의 호칭을 바꾸어 부르려고 할 때나 막 결혼한 후 배우자 가족들에 관한 호칭을 부를 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연습 없이 바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처음부터 고쳐 부르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치기 어렵다. 나 역시 결혼 직후 분가해 시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호칭을 생략한 채 “오셨어요?” “안녕히 가십시오.”등으로 말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이런 나의 태도를 크게 꾸짖으셨다. 그 후 나는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에서 “오셨어요? 어머니.”라는 말을 연습해 ‘어머니’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연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뭐든지 자신 있게 표현하려면 말하기를 연습해야 한다. 남들에게 말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말을 연습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가족 간의 자유로운 대화라든가 교회나 동네 모임에서의 발표 기회 같은 것들이 다 말하기 연습의 장이다.


말하는 데 자신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말하기 연습을 해보라. 당신에게도 놀랄 만한 대화 실력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말하기 연습을 하려면 말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듣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실수는 당신 생각보다 작게 받아들여진다. 그들이 당신 말을 듣고 웃는 것은 비웃는 것이 아니라 당신 말이 재미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 말을 당신 생각만큼 오래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을 연습해라.



내가 먼저 털어놓아야 남도 털어놓는다

당신이 정말로 설득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당신이 가장 알려 주기 싫은 비밀 한 가지를 말해주어라. 그 사람 또한 당신에게 가슴 깊이 묻어 둔 비밀 한 가지쯤을 털어놓을 것이다. 비밀을 공유하는 것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어린 시절 친구가 영원한 친구가 되는 것도 함께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누군가와 단번에 친해지려면 서로의 치부를 적어도 하나쯤은 공유해야 한다. 군대 친구가 사회 친구보다 끈끈하고 동아리 친구가 동네 친구보다 더 가까운 이유는 그만큼 서로의 비밀을 많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이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으면 당신이 먼저 가식을 벗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편도 가식을 벗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것이다.



그런 시시한 것조차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학력이 높다고 해서 세상 이치를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도 경험하지 않은 것은 모른다. 당신도 아주 가끔 박식한 사람이 의외로 아주 기본적인 상식을 모르는 것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몸짱과 얼짱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증권 전문가가 증권 한다고 해서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고, 교사라고 해서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듯,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분야에 대한 매우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 때문에 그 정도쯤은 다 알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하면 상대편이 잘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타인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상식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상대편의 실력을 어림짐작하고 거기에 맞추어 말하면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당신 말의 주제에 관한 기본 상식은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이라고 전제 한 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편의 지식 수준에 관계없이 대화할 수 있다.



말투는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같은 말도 듣기 싫게 하는 사람이 있다. 어투가 퉁명스럽거나 거친 용어를 사용하거나 목소리가 유난히 공격적일 때 그런 느낌을 준다. 그러나 말투가 좋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된다. 당신이 좋은 말도 퉁명스러운 말투로 하면 듣는 사람은 “나한테 화난 것일까?”라고 오해할 수 있다. 말이란 내용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도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당신이 속마음과 달리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한다면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을 것이다. 남편인 당신이 결혼 전과 달리 결혼 후 퉁명스러운 말투를 사용한다면 아내는 당신의 애정이 식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장성한 자녀인 당신이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한다며 “담배 좀 그만 피우세요. 큰일나고 싶으세요?”라고 화난 목소리로 말하면 부모님은 당신이 자신의 건강을 염려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내가 나이가 들어서 자식 간섭이나 받는다.”라는 슬픔에 빠질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칭찬할 때와 꾸짖을 때, 걱정할 때와 간섭할 때 등 경우에 따라 말투를 달리해야 한다. 말투란 말을 담는 그릇이다. 물을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세숫물로 보이기도 하고 먹는 물로 보이기도 하듯 말투는 그 나름대로 독립된 의미를 지닌다.

돌아서서 후회하지 않는 유쾌한 대화법 78

이정숙(대화전문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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