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만사 이모저모/생활리듬 및

저녁형 인간의 반격

by 현상아 2006. 9. 10.

회사원 김모씨(32)는 최근 출근시간을 30분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본래 정해진 출근시간은 8시이지만 ‘아침형인간’ 열풍이 불면서 일찍 출근하는 동료들이 늘어나 제시간에 출근해도 지각생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아침형인간 행렬에 동참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침잠이 많은 체질이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결국 회사 업무시간만 늘어나게 된 것 아닌가 김씨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아침형인간’이 널리 유행하면서 김씨와 같은 ‘경계인’들이 많이 늘어났다.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아침형인간’을 강요하는 회사 측의 압력과 ‘아침형인간’을 실천 중인 주변 동료에 뒤떨어지지 않아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부득이 출근시간을 앞당길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퇴근시간이 앞당겨진 것은 물론 아니다. 김씨는 ‘아침형인간’이란 말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아침형인간’ 유행을 적극 반기는 쪽은 기업이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아침식사를 겸해 부서별 회의를 가지는가 하면 비상시국임을 이유로 출근 시간을 일괄적으로 앞당기기도 한다. 번호이동성 제도로 경쟁이 치열해진 이동통신회사들은 경쟁적으로 출근 시간을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형인간’이 유행하면서 김씨와 같은 ‘경계인’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
집중도가 높은 아침 시간을 활용해 자기계발을 한다’는 본래 의미가 출근시간만 앞당기는 셈으로 변질된 탓이다. 이쯤되면 ‘아침형인간’ 열풍이 ‘새벽별보기’ 운동의 재판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게 된다.

저녁형 인간의 반격
아침형인간의 저자 사이쇼 히로시는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형인간이었으며 야행성생활은 인생을 나락에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아침형인간 체질이었으며 아침 시간에 가장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아침시간을 얼마만큼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한 저녁형 인간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주로 소설가, 시인과 같은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소설가 조경란씨는 신문 기고를 통해 “아침형의 인간은 탁월한 판단력을 갖고 있고 나같은 저녁형의 인간은 집중력을 갖고 있다”며 “비록 낮에 일어나는 사람이긴 하지만 내 체질과 리듬에 맞는 효율적인 시간관리도 하려고 늘 노력한다”고 말했다.

창작행위 자체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인터넷을 즐기는 네티즌들 중에도 밤시간을 이용하는 저녁형인간이 많다. 이들은 밤시간을 활용해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남기고 자신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은 사회활동의 연장이라고 말한다. 블로그 운영자 김지수씨(22)는 “아무래도 밤시간에 글을 쓰고 다른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것이 낮시간보다 편하다”면서 “낮시간보다 밤시간에 감성적으로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엄밀히 말해 ‘아침형인간’의 핵심은 무조건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있지 않다. 정확히 말해 자신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에 가깝다. ‘아침형인간’이든 ‘저녁형인간’이든 자신의 체질에 맞는 시간을 택하면 그만이라는 절충론도 꽤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아침형인간 = 성공형인간?

‘아침형인간’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유행처럼 번진 데에는 ‘성공’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일일이 제시한 접근법이 큰 몫을 했다. 아침형인간으로 가는 방법을 단계별로 설정한 100일 프로젝트가 제시되었으며 잠은 짝수 시간으로 자야한다는 조언까지 곁들여져있다. 그렇게 해서 ‘아침형인간’으로 거듭낸 사람에게는 엄청난 성공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침형인간’은 ‘자기의 인생을 다스리며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고 진정한 건강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이같은 ‘아침형인간’은 ‘남보다 앞서 성공하고 그렇게 성공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소시민적 욕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성공하지 않으면 곧 패배’로 이어지는 ‘성공제일주의’의 강박관념이 ‘아침형인간’ 열풍을 이끌어낸 셈이다. ‘아침형인간’을 실천하는 이들은 아침시간을 활용해 ‘자기개발’ 활동을 한다고 말한다. 아침시간은 영어를 공부하거나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등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간이다.
‘아침형인간’에게 시간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자신이 활용해야 할 그 ‘무엇’이며 시간에 자신의 노력을 ‘투자’해 ‘능력’이라는 ‘잉여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아침형인간’은 남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져, 즉 더 많은 ‘자본’을 가져 경쟁사회에서 승리한다는 논리다. ‘아침형인간’의 이면에는 이처럼 개인을 ‘가치있는 자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가 숨어있다.

게으름의 미덕

불과 몇 년전인 2000년 무렵에만 해도 ‘느림’ 열풍이 불었었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이나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같은 책은 무한속도경쟁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느리게 사는 지혜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일자리마저 위협받는 추세가 심해지자 ‘느림’의 주문은 순식간에 효력을 잃어버렸다. 사람의 몸에 ‘시간’이 얹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띠 위를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간다. 발전과 계몽을 강조하는 근대주의와 경쟁을 통한 적자생존 논리가 더욱 강조되는 이 때, ‘아침형인간’은 매력적인 인간형으로 부상했다.

‘아침형인간’이 강조하듯 ‘부지런함’은 미덕이다. 그러나 역으로 ‘게으름’도 미덕이 될 수 있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책에서 “노동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며 즐겁고, 가치있고, 재미있는 활동들을 자유롭게 추구하기 위해 ‘사색하는 습관’이 필요하고, 이 습관을 가지려면 ‘게으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획일적인 ‘아침형인간’ 찬양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대목이다. 특히 기업이 ‘아침형인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소치는 아이야 상기아니 일었느냐’로 시작하는 시조 속‘소치는 아이’에게 ‘밭을 갈라’고 호통치는 양반의 모습을 닮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