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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1900년대 및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언-9-]한국 코미디 50년, 그 파란만장한 역사.

by 현상아 2006. 9. 10.

TV와 드라마, TV와 코미디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지금까지 안방극장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드라마와는 달리 '천박' 의 영역으로 내몰렸던 코미디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코미디 50년 史와 그 역사를 주도한 코미디언들. 그들만의 파란만장한 50년 역사를 들여다보자.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던 때는 1969년 MBC가 여의도에 첫 발걸음을 내딛던 때였다. 당시 TBC라는 거대 방송국을 경쟁자로 두고 신생 방송국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던 MBC는 드라마와 함께 코미디 프로그램을 대거 양산해 냄으로써 한국 대중문화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60년대 만들어진 프로그램만 따져봐도 거의 30년동안 장수하며 사랑받았던 <웃으면 복이와요> 를 비롯해 <노래합시다><월요음악회><여러분의 인기 스타 윤복희 쇼><일요일 밤의 살롱> 등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코미디 프로 <웃으면 복이와요> 는 극단에서 소위 '날리고' 있었던 천재개그맨 서영춘을 비롯,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권기옥 등이 총 출동하면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의 대표 코미디언 3인방인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은 코미디언이기 보다는 '희극인' 의 이미지가 강했으며 충무로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영화 쪽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그들을 '영화인' 이라기 보다는 '코미디언' 으로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 코미디에 그들이 끼쳤던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명절이면 회자되는 구봉서의 대표적인 유행어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새프리카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바둑이는 돌돌이" 라던가 서영춘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뿜바라빠빠 뿜바빠" 등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다.

 

 

"코미디가 뭔줄 알어? 코미디는 인생살이를 조명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연기야. 단순히 웃기는 것이 아니라 메세지가 있어야 하는거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아마 나중에도 그럴거야. 우리세대의 코미디와 후세대의 코미디가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지." (희극인 구봉서)

 

 




1960~70년대에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등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한국 코미디의 장을 넓혀 놓았다면 1977년 스타덤에 오른 이주일의 등장은 그 전세대의 집대성이라 할만큼 파격과 파탈의 연속이었다. 남다르게 못생긴 얼굴 때문에 "풍기문란" 이라는 웃지 못할 죄목으로 TV 출연에 실패했던 이주일은 1977년 하춘화 콘서트홀 폭발사건 때에 하춘화를 들쳐 업고 나온 것 하나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1979년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아, 글쎄. 뭔가 보여드리겠다니까요." 등의 유행어로 안방극장을 장악한 이주일은 특유의 표정연기와 '수지큐' 로 대표되는 몸짓 연기로 한국 코미디의 황제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주일은 TBC와 MBC를 넘나들며 더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의 전신인 <일요일 밤의 대행진> 이라던가 TBC의 <토요일, 전원출발> 등은 그의 대표적인 TV 히트작이다.

 

 

그는 이런 대중적인 인지도를 등에 업고 1992년 현대그룹 故 정주영 회장의 권유에 따라 국회의원 총선에 나갔고 "정치로 웃음을 주기 바라는" 국민의 바람으로 인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4년 뒤 그는 국회를 나오면서 "4년간 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 라는 명언을 던져 화제를 모았고 복귀작이었던 <이주일 쇼> 는 첫방송부터 시청률 35%가 나올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히 '황제' 다운 면모가 아닌가.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공영방송이었던 TBC(지금의 KBS) 와는 달리 비교적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MBC는 <MBC 코미디 대행진><구서방 배서방><청춘만세><폭소대작전><명랑운동회> 등을 공격적으로 편성하면서 MBC 코미디의 달라진 위상을 대변했다. 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MBC 코미디는 구봉서, 배삼룡 등 제 1세대 개그맨들과 1.5세대로 불리는 이주일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70년대에 상당한 성장기를 맞이했던 한국 코미디는 80년대에 심형래, 김한국, 이경규, 이봉원, 김미화, 오재미, 이성미, 이경실 등 '천재' 코미디언들의 대거 등장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줬다. 특히 그 동안 MBC 코미디에 밀렸던 KBS는 <쇼, 비디오쟈키><유머 1번지><한바탕 웃음으로>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하고 82년부터 공채 개그맨을 선발함으로써 MBC 와 동등한 수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KBS 공채로 데뷔한 이만 따져봐도 1기 심형래를 비롯해 김한국, 이봉원, 김미화, 오재미, 배동성, 서현선, 김지선, 양원경, 유재석, 김수용, 장미화, 이창명, 박수림 등 한국 코미디에서 '한가닥' 한 사람들이 총 집합해 있다. 특히 1기 공채로 여의도에 입문한 심형래는 '영구' 라는 바보 캐릭터로 역사에 길이남을 명연기를 펼치며 80년대 코미디계를 좌지우지 했으며 훗날 맹구, 오서방 등 수많은 아류 캐릭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KBS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80년대에 MBC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일요일 일요일 밤에><우정의 무대><내고향 큰잔치><스타 24시><쇼 네트워크> 등 정통 코미디에서 벗어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MBC 예능 프로그램의 자존심을 지켰다. 특히 정통 가요쇼에서 벗어나 최초로 버라이어티라는 개념을 도입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또한 지금까지 MBC의 대표적인 버라이어티 쇼로 자리잡고 있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는 '토크 코미디' 라는 새로운 장르를 도입해 인기를 끌었고 이경규, 주병진, 이성미, 이홍렬, 이경실, 박미선 등이 <일밤> 의 MC를 맡으면서 '개그맨 MC' 의 첫 주자가 됐다.

 

 




또한 80년대는 김병조, 故김형곤으로 대표되는 '시사풍자 개그' 가 주류로 편승한 시기기도 했다. KBS <유머 1번지> 의 히트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을 통해 신성한 영역으로 평가되던 '정치' 와 '재벌' 을 가장 천박하다고 여겨지는 '코미디' 의 장에 끌어왔던 故김형곤은 지금까지도 시사개그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잘 되야 할텐데~" "잘 될 턱이 있나!" "워낙~~비싸요!" 등의 유행어를 통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이러한 시사 개그를 버라이어티와 접목시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의 '스타 청문회' 라는 코너를 신설함으로써 시사 개그가 어떠한 모습으로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배추머리' 김병조 역시 "지구를 떠나거라~" 라는 유행어로 날카로운 해학과 풍자를 보여줬고 90년대 SBS가 모습을 드러내자 <코미디 전망대> 에 출연, 법정 개그로 다시 한번 그 재능을 뽐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전설' 로 회자되고 있는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쏟아져나온 80년대를 지나 90년대가 다다르면서 한국 코미디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슬랩스틱 코미디로 대변되었던 '정통 코미디' 가 하락세를 걷고 재치있는 말빨과 애드립으로 승부를 거는 '버라이어티 쇼' 가 각광을 받았다는 것이다. 약간은 기형적인 이 변화에 많은 코미디언들이 퇴보의 길을 걸었으나 능수능란하게 변화에 적응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던 대표적인 이가 바로 이경규와 서세원이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들에게 이 말을 붙이면 딱 어울리지 않을까.

 

 

<몰래카메라><양심냉장고> 로 일대 파란을 일으킨 이경규와 <서세원쇼>로 한국 토크쇼의 전형을 확립한 서세원은 개그맨 MC의 양대 산맥으로써 수많은 후배 MC들의 교과서적 토대를 마련하며 그 위상을 확고히했다. 장난스럽게 남을 비하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이경규와 교묘한 말장난과 애드립을 주로 사용하는 서세원은 진행 방식과 개성면에서 도드라지는 개성을 지닌 천재들이었다.

 

 

90년대 눈이 부실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던 이 두 MC는 이른바 3세대 개그맨들-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강호동, 남희석 등-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입지를 마련했고 90년대 전반을 통틀어 3세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경규와 서세원을 대표주자로 세운 2세대의 활약 속에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김국진' 이 전국민적 사랑을 받는 MC로 등장하며 70년대 구봉서, 80년대 이주일의 인기를 능가하는 파워를 보여줬다. <테마게임><일요일 일요일 밤에><21세기 위원회><칭찬합시다><전파견문록> 등을 히트시키며 대표적인 국민 MC로 등장한 김국진은 오랜기간 안방극장을 장악하면서 신드롬에 가까운 기현상을 일으켰다.

 

 

"국진이 빵" 이라는 캐릭터 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김국진은 김용만과 콤비를 이뤄 환상의 앙상블을 보여줬고 "여보세요~" "밤 새지 말란 말이야~!" 등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김국진 천하' 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이 때에 모든 여성들의 희망 결혼 상대자 1위는 김국진이라는 통계가 나돌았고 시청률 TOP 10에서도 '김국진' 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빼 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전파견문록> 이 후, 2년간의 휴식기간을 가졌던 김국진은 2년의 기간동안 신동엽, 이영자, 김용만, 유재석, 박수홍, 남희석, 서경석, 이윤석 등이 MC 자리를 휘어잡음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잃어버렸고 지금까지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90년대는 또한 개그맨 출신 여성 MC들이 대거 등장했던 시기기도 했다. SBS 개국과 함께 SBS 코미디의 부흥을 이끌었던 이영자와 관록의 개그우먼 이성미, 이경실, 박미선 그리고 신예 김효진 등은 방송 3사를 넘나들며 여성 MC로써 출중한 재능을 뽐냈다. 특히 신동엽과 콤비를 이뤄 방송가를 종횡무진한 이영자의 활약이야 말로 상상을 초월했을 정도.

 

 

SBS <기쁜 우리 토요일><기분 좋은 밤> KBS <슈퍼 선데이><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지금까지 각 방송사가 자랑스러워하는 버라이어티 쇼를 장악했던 이영자는 파워풀한 말솜씨와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방식, 뛰어난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로 "영자의 전성시대" 를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이성미, 이경실, 박미선 등 관록이 돋보이는 개그우먼들은 버라이어티 쇼에서도 굳건한 인기를 과시하며 평균 4~5개의 프로그램을 소화해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아무리 '버라이어티 쇼' 가 대세를 이뤘던 90년대라 하더라도 '정통 코미디' 에 대한 열망은 코미디언 누구에게나 있었다. <이홍렬 쇼><서세원 쇼><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김혜수의 플러스 유> 등의 토크쇼가 활기를 띠고 <목표달성 토요일> 등 전형적인 쇼프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내던 때에 KBS에서는 '대모' 김미화가 전유성과 손을 잡고 '정통' 의 부활을 외치고 일어났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개그콘서트> 즉, '스탠딩 코미디' 의 발족이었다.

 

 

김미화는 백재현, 심현섭, 김영철, 김준호, 김대희 등 재능있는 KBS 공채 개그맨들을 직접 이끌고 <개그 콘서트> 를 진두지휘 했고 코미디 무대와 라이브 무대를 혼합해 성공적인 히트 사례를 만들어냈다. 직접 KBS 예능국과 담판까지 지으며 <개콘> 을 발족시켰던 김미화는 '스탠딩 코미디' 를 주류로 편입시키면서 공채 개그맨들의 숨통을 열어줬고 지금까지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재하고 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코미디는 급격히 개그맨 출신 MC를 내세운 버라이어티 쇼가 전체 예능 라인업의 90%를 차지했다. 특히 이 때에 MC로서 재능을 선보이며 이름값을 보여준 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강호동, 박수홍, 남희석 등은 자신들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높여가며 '귀족 MC' 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특히 15명도 채 안되는 유명 MC 중 이경규, 신동엽, 김용만, 유재석, 강호동, 박수홍은 회당 700~1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으며 "방송가 6대 MC" 로 이름을 날렸고 방송 삼사의 예능 라인업을 좌지우지하며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다. 지금까지 굳건한 이들의 위치는 이휘재의 약진과 탁재훈, 김제동, 이혁재, 노홍철 등 신예들의 등장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의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코미디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 코미디는 구봉서, 배삼룡을 시작으로 유재석, 강호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화를 거치며 사회에 적응해 왔다.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던 시대에 몸을 사리지 않으며 원초적인 웃음을 줬던 60~70년대, 독재로 얼룩진 시기에 해학과 풍자로 시원함을 안겨준 80년대, 가파른 경제성장과 일회성 소비형태를 반영하여 변화를 꾀한 90년대,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2000년대까지 코미디는 항상 '대중' 곁의 친숙한 '베스트 프렌드' 였다.

 

 

혹자는 코미디에 '정통' 이 사라졌다고 말하고, 혹자는 오늘날의 코미디가 '사회' 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코미디에 대한 우리 세대의 정의가 달라졌을 뿐이지 그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다. "코미디는 최대한 남을 웃겨야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라는 유재석의 말도 맞고 "코미디는 사회를 향한 메세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코미디다." 라는 이경규의 말도 맞다.

 

 

어찌되었건 우리 코미디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변화하고 발전하며 대중의 곁에서 끊임없이 웃음을 주고 있질 않던가. 우리는 그들이 던져주는 웃음을 아무런 사심없이 받아들이고 마음껏 웃어주면 된다. 그 웃음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코미디의 발전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반세기 동안 안방극장에서 함께 했고, 아마 평생동안 TV 곁에서 웃음을 전해줄 그들의 '파란만장' 코미디에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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