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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사랑과 진실

[임신/육아] 임신과 출산, 정말로 행복했나요?

by 현상아 2006. 10. 2.

 

  글 : 박진희
5기 위민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진 나혜석(1896-1948)은 [母된 감상기]에서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내는 악마'라고 표현하며 육아의 고통을 토로했다. 물론 그녀는 그 후 자식을 제일 중히 여기는 여느 어머니가 되었다. 나는 임신을 했을 때에도, 출산을 했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처럼 기쁘지가 않았다. 이런 내게 나혜석의 이 글은 굉장히 솔직하고 용감한 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보석처럼 빛나는 세명의 자녀를 둔 것을 무척 행복해하고 있지만 말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들에게 정말 기쁜 일일까? 모성은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감정일까? 오래도록 나는 이 고민을 풀지 못해왔다. 첫아이 임신을 처음 알았을 때에는 기쁘기 보다는 생경했고, 두 번째 임신에서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두렵기만 했다. 첫째는 산도가 좁아 자연분만을 몇시간 시도하다가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했고,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라 어쩔 수 없이 또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출산은 내게 생명의 신비를 느끼는 과정이 아니라 단지 육체적 고통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는 몇날며칠 한없이 눈물만 나왔고, 아이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사회적 소외감을 심각하게 느꼈다. 더 이상 나를 위해 살 수 없을 것이며,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비교적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와 관련된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지만  내 눈물이 산후 후유증에 기인한 것이며, 산후에 호르몬 변화가 우울증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생물학적 나와 나의 정체성은  임신과 출산으로 끊임없이 혼란을 겪고 또 겪었던 것이다. 거기에 직접 임신 당사자가 아니며, 수동적 자세로 육아에 임하는 남편의 역할도 고통을 가중시켰으리라. 물론 모두 나와 같지는 않으리라. 어떤 이는 임신과 출산이 너무 행복하고, 생명의 신비로움을 만끽했으리라.


  아이가 예쁜 웃음을 짓고, 옹알이를 하고, 한걸음씩 떼고, 대화를 나누게 되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커다란 기쁨과 행복을 느꼈고, 내게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워졌다.

물론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정 외에 남녀 공히 평등한 가사분담과 육아가 필요하고, 임산부와 자녀가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정책이 필요하고,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면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이 여전히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제적 필요 인구의 개념으로 국가가 나서서 출산을 장려하는 것을 동의하지는 않는다. 논란은 있지만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자신과 동반자의 삶과 관련해 결정해야할 사항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인구가 적은 국가라고 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소득은 창출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이고, 교육제도 등에 대한 혁신적 변화가 없다면 자녀 출산을 경제 문제로 환산하지 않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가 출산을 장려하는 것보다 출산을 어렵게 하는 사회적 요인들의 제거와 입양에 대한 적극적 정책을 정부가 먼저 펼쳐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 임신과 출산은 고통스러웠지만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은 기쁨 그 자체이다. 커가는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은 내게 두번째의 출산, 가슴으로의 출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슴으로 아이를 낳는 일을 우리 모두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입양정책, 그리고 입양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한다면 임신과 출산, 가슴으로의 출산 모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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