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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지금여기

문제의 본질에 관한 고찰

by 현상아 2006. 10. 22.
오늘은 문제의 본질에 대해 고찰해보려 한다

99퍼센트의 즐거움을 누리고 나서
1퍼센트의 불행을 만나면
그 전 인생은 분명 무효화된다

앞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 적이 있다
정신은 육체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육체소멸시 정신도 붕괴되어 깨달음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미리 깨닫거나, 육체소멸시 깨닫거나
그 과정에서 감지하는 고통의 양은 같다

그럼 결국 우리네 인생의 끝발은 안 좋다는 얘기인가?  
죽기 전까지 속세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다가
마지막 죽음을 겪을 때,인간은 불행해지는 것인가?
죽기 바로 전까지 즐거울 수 있다면..이라고 가정하자
이것저것 속세의 즐거움을 죽기 바로 직전까지
누린다고 가정해보자

예컨대, 죽기 1주일 전까지 즐겁다고 가정해볼까?
그럼 그 일주일까지 속세의 즐거움을 이것저것 누리고
일주일 뒤에는 불행해질라나?
이런 질문에 오류가 있다는 걸 독자도 잘 알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 시간을 모른다

따라서 언제까지 즐겁다가 그 이후부터 불행해진다는 식으로
우리네 인생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10분 후에 죽을지라도
죽는 당사자는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

어떤 선사는 자기가 죽을 시간을 미리 안다고 하는데,
그런 예지능력이 있어봤자 무슨 소용인 걸까?
"나하구 내기나 할까?
지금부터 10분 후 내가 죽는데 걸께
(하하,내가 확실히 이길꺼야!!)..." 라고 즐거워 하는 걸까?
그리고 여기 키보드를 두드리는 한 개체의 경험으로 보면
단 한번도 그런 작자를 만난 적이 없다
단지 책으로 얻은 정보,혹은
타인을 통해 그런 사람이 있었대....정도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자기가 죽을 시간을 알려면,
내가 안다고 하는 시점에서의 현재 건강상태,
그리고 그 순간부터 점점 악화되는 나의 건강상태..
그리고 그렇게 유발하는 다양한 환경인자,대기상태
거기에 맞물려 카오스적으로 반응하는 인체 내부시스템 상태
....라는 거의 우주적인 수준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결국,
확실한 정보는 없다


기상대에서 예보를 하는 것도 상당부분이 빗나간다
인간이 머리를 아무리 짜내봐야 그 정보는
계량적 계측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늘 추측에 불과하다
덧붙여 얘기하면,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하나는 서양에서 신봉하는 과학이라는 종교이고
또 하나는 동양에서 신봉하는 주역이라는 종교이다
과학은 계량적인 수치를 정산하여 미래를 예측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주역은 음양을 분화시켜 정보를
몇 개의 느낌의 카테고리로 귀속시키는데  
이건 그야말로 애매~~~~한 인지다
어느게 더 낫다는게 아니며 장단이 있건 없건
둘 다 추측일 뿐이다

물론 이 두가지 인지방법만 있는 건 아니지만,,
지성과 감성이라는 두 가지 인식도구에서
발현되는 인식이란 결국 이런 식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1초 뒤에 죽을 정도로 몸이 쇠약하더라도
그 1초 뒤에 소멸할 것인가..라는 것은
당사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란 현상은 에오의 언급대로
단 한방에 끝나는 것이기에,,
(고통을 겪다 죽든,안락하게 죽든 어쨌건 즉사다)  
단 한방에 끝나는 죽음에 대해
과연 인간이 불행감을 느낄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인가..
숙고해본다

여기서 문제의 본질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이 느끼는 불안임을 알 수 있다
보통 현대인들의 죽음까지의 기전을 살펴보면,
청소년기,혹은 청년기에는 불확실한 노후를 준비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사이에
어느 정도 타협을 보며 괴로워하다가,
장년기에는 사람들이 박수쳐주는 직업의 노예가 되고,
노후에는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로 보험의 노예가 되며
그러다 결국 각종 스트레스,혹은 외상으로
암,심근경색,고혈압,당뇨,뇌졸증이 유발되고
병원에 입원,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즉, 자기 스스로의 충분한 숙고없이
남들이 하라는대로, 책에서 주입당한대로
세상을 살다가, 말기에 가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자연사?
독자들도 잘 알겠지만 자연사는 드물다
안락하게 집에서 잠자듯이 죽는다?
그런 일은 현대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죽는 순간까지 일에 치이다가 과로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보통은 이런저런 암에 걸려 병원에서 항생제 치료를 받다가
머리털 다 뽑히고 세상을 하직한다

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    
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
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

스스로의 인생을 그렇게 방치하고
부모가
학교선생이  
교수가
의사가
회사가
붓다가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말잘듣는 착한 아이로
언제까지나 남아있는 당사자 책임이다
죽는 순간까지 붓다의 말을 고분고분 잘듣고
사인선을 열심히 하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 이런 느낌이 든다
"이런! 붓다의 말이 뻥이면 어떡하지...
윤회 안하면 어떡하지..."
     
~하면 어떡하지..라고 맨날 곱씹어봐도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깨달음을 얻어 제 2의 인생을 구가해보고자 하는 자는
죽을 때까지 제 1의 인생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죽음전에 느끼는 불안감은
그 관심이 죽음으로 향해 있지않고, 삶으로 향해 있다
그것은 후회감이다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
어떻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라는 감정

그런데 스스로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런 기분이 들 것이다
괜히 여러 사람 눈치보고 못 했던 일들이 생각나며
그렇게 해도 괜찮았을텐데 하지 못했다..라고
이제 와서 보면 다 추억이고
부끄러운 기억도 한낱 스쳐지나가는 바람인데
그 바람이 바람이 아닌 까닭은
그 시절에는 망설임이 있었고
그 망설임은 미래를 계산한 것이었고
그 계산으로 스스로의 바램을 왜곡시키고  
합리화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완결되지 않은 무엇이 남는다
그 시간은 그 당사자에게서 지나가지 않았다
찝찝하게 남아있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은 필요할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갖추어야 한다  

현대 한국에서는 굶어죽을 위험은 거의 없다
이래저래 노동운동을 하지만
굶어죽을 거 같아서 하는게 아니고
더 잘사는 사람들과의 괴리감으로 발생하는
상대적 불만족 때문이다
지금 그게 옳다 그르다..라는 건 아니다

현대는 그야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기본적인 생계가 유지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좀 더~ 좀 더~ 라고 매일 보채기만 한다
좀 더?
좀 더는 끝이 없다
언제까지 기다린다면 언젠가 그런식으로 죽는다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박수를 받지 않아도
당신 혼자 즐거운 일이 무엇일까?
그게 만드시 머리 위에 찻잔을 올려놓는 일은 아닐 것이다
봉사일 수도 있고
공부일 수도 있고
연애일 수도 있고
여행일 수도 있다
운동일 수도 있고
무엇일 수도 있다    


요약하면,
1.인간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2.죽음은 즉사현상이므로 죽음 자체에서 불행감을 느낄 수 없다
3.불행감은 죽음 전에 감지된다
4.그 원인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연기하기 때문이다


결론; 깨달음이 없으면 최후에 불행하다..는 참이 아니다
99퍼센트 행복뒤에 1퍼센트의 불행이 오느냐는
깨달음 여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에게 얼마나 충실했는가..에 달려있다
이걸 굳이 스스로에게 충실하는게 깨달음이야..라고 우겨대면
할말 없음_ - 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                   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지금 여기 있다

출처 : 20010517. 끝발 좋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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