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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지금여기

내가 아닌 무엇이 내 안에 있다...라는 기분에 대하여

by 현상아 2006. 10. 23.

스스로를 관찰해보면
어떤 행위를 하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주체가 따로 있어서
그 행위,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그 행위,생각 자체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행위 주체와 행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종교라는 간판을 내건 여러 집단들이
"내가 아닌 무엇이 내안에 있다" 라는 기분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종교에 포함되는 대상은
순진무구 기독교도들과 빡빡이 불교도들,
돈 뜯어먹기 좋아하는 대순진리회,
증산도,이슬람교도들 뿐만 아니라
라즈니쉬 할배,라마나 마하리쉬,아름다운 청년 에오의 추종자들까지 싸그리 포함된다  
"내가 아닌 무엇이 내 안에 있다" 고 하면
여러가지 우스꽝스런 해프닝이 벌어지게 된다
기독교도들은 그걸 성령이라 부르고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불교도들은 진아라고 부르며 머리를 빡빡 민다
그리고 기독교도들과 더불어 윤회라는 환상에 중독된다  
증산도,이슬람교에서는 열심히 절을 하며
대순진리회에서는 나쁜 귀신이 들었다거나
조상 중 문제있는 분이 들어와서 고생시킨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다
현대인 대부분이 서양과학이라는 종교에 빠져 있기 때문에
보통 이런 분들을 미친 놈 취급하게 되나
[4차원의 세계]같은 오컬트에 빠지거나
현대과학의 한계를 실감한 나약한 헛똑똑이들은
쥐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결국 시스템에 늘 의존하는 버릇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일이 꼬이면 시스템 잘못으로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아닌 그 무엇,조상탓,악마탓,에오탓이 아니라  
"당신 아닌 무엇이 당신 안에 존재한다" 는
어리석음에서 유래한다
당신 안에 무엇도 당신 아닌 것이 없건만
쉽사리 그것을 "내가 아닌 것"으로 규정한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응원하는 많은 어리석은 집단들에 중독된다
그 집단들에게 놀랄만치 쉽사리 이용당하는 건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뭘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에오가 당신보다 당신 스스로에 대해 잘 알까?
당신은 누구라도 붙잡고 싶다
확실한 스승을 찾고 싶다
현대과학과 여러 종교 시스템에서
라즈니쉬,마하리쉬,에오까지 ...
그런데 그들은 고작해야 당신의 부분을 볼 뿐이다
당신의 전체를 아는 건 당신 뿐이다
물론 여기서 안다는 건
이해하는 주체가 되어 이해할 대상을 이해한다는게 아니며  
그저 전체로서 계속 유지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인데..
그걸, 그렇게 쉬운 걸 당신은 부정하느라 바쁘다  

현대인은 스스로 책임지길 두려워한다
조상탓이라느니,악마 때문이라느니..하면서
주문을 외고 방언을 쏼라쏼라 욀 것이다
돈을 요구하는 종교인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바칠 것이다  
그들이 무언가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하며...

현대인들은 스스로 걷지 못하는 절음발이로,
주류 패러다임의 영원한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국가,종교라는 시스템을 구성한채
함께 미쳐버린 사람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다  

라즈니쉬,마하리쉬,에오 추종자들은
앞에서 열거한 무리들을 비웃으며  
"나 아닌 무엇" 찾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이 또한 미친 짓임을 알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한마디로  
서양사유방식의 침투가 이런 류의 심리상태를 조장한다  
이런 류의 심리 상태란
"내가 아닌 무엇가 내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이런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나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려는 욕망을 생산해낸다
그런데 그 현재의 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람 기분은 날씨처럼 변화무쌍하다
물론 거기에 어떤 질서도 없다고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혼돈 속에는 어떤 질서가 존재한다
매일날씨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밤낮이 거듭되고 사계절이 있다
이런 식으로 대강의 룰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간의 자아도 이와 마찬가지..
그래서 자아현상은 혼돈흐름이지만 거기에는 질서가 있어
대강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상일 뿐이므로 부정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
항상 똑같은 나는 없지만
"나"라고 하는 일말의 질서는 존재하며
그걸 부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그 질서에 집착하여
사고로 "난 이래야해" "이건 내가 아냐" 하는 식으로
질서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것도 역시 아이러니다
무우 자르듯 규정되는 세상이 아니며
무우 자르듯 규정되는 자아가 아닌 것이다

앞에서 서양사유방식을 언급했는데 여기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말에는 주어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를 포함한 인도계 언어는 주어를 반드시 사용한다
이 부분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언어라는 것에 의해 인간사유구조가, 인간삶의 구조가
인간문화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말 운동을 하자는게 아니다
단지 주어를 생략하기도 하고 집어넣기도 하는 우리말이
현상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주어(자아)는 사라질수도 있고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신경쓸 때도 있고 신경쓰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
본래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사유가 자유스러웠다
나에 집착하지도 않고 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바로 그 상태에서 살았다
이걸 굳이 말하자면 타오라 불러야겠다
타오를 규정짓지 않는 상태라 한다면 말이다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현상계가 왜곡된다고
걱정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래서 언어를 떠나자..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무엇을 통해 그렇게 주장하는 겐가
그렇다.언어를 통해 언어를 떠나자고 주장한다
언어를 떠나자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들..
그리고 자아를 떠나자는 거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은..
잠시 이야기를 마저 들어주시기 바란다
자아의 재료가 바로 언어인 것이다
때문에 언어를 떠나자는 것은 자아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침묵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여기까지가 "사고라는 감옥에 갇힌 병자"의 모습이다    
이런 행위는 전체 현상을 살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붓다들은 왜 그렇게 많은 설법(언어)을 했는가 살펴보자
그건 침묵만이 해답이다..라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그들은 수다쟁이들이다
라즈니쉬의 책들을 보자
할배는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었는가
無苦無道,
에오는 깨달음이란 환자에게 접종하는 치료약이라고 했다
애초에 현상과 괴리된 사유방식이 없던 우리언어구조에서는
이런 환자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화니 국제화니 해서
참으로 미혹 그 자체인 사유구조가 흡수되기 시작했고
마치 그런 사유구조 속에 있는 것이
수준높은 것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서양철학사를 살펴보면 온통 유치한 미혹 투성이며
애매함 그 자체를 규정 지으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규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고립을 전제로 한다
나라는 개념을 세상과 분리시키려는 것이 규정이다  

심각함 그 자체를 유발하는 것은
언제나 현상과 괴리된 사유방식이다
규정 지으려는 노력이 심각함을 유발하는 것이다
현상과 괴리되었기 때문에 심각해지는 것이다
라즈니쉬가 "심각함은 병이다"라고 했는데
참으로 솔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뭔가 다를 것이 있을거야..라고 한다
예를 들면 주시가 끝없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걸
붓다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내가 아닌 무엇"이  나를 본다는 얘기일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하나이며 분리할 수 없는데
누가 누굴 본다는 걸까?
사고,행위를 할 때 스스로를 보고 있다면
아직도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를 설정해놓고
거기 갇힌 상태란 얘기다
누가 누굴 보는 게 아니다
나무를 볼 때는 나무를 볼 뿐이며
새를 볼 때는 새를 볼 뿐이다
"나는 새를 본다"가 아니라 "새를 본다"이다
설령 "나는 새를 본다" 라고 하더라도
새를 볼 때 나는 이미 사라지는 것이다
"새를 본다"는 순간이며 전체이지만
"나는 새를 본다"는
나에 대한 주시와 새를 보는 행위작용으로 분열된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걸 잘 살펴보기 바란다  
"나에 대한 주시"를 부정하는게 아니다
단지 나에 대한 주시는 그 자체로 전체이며
새를 보는 작용도 그 자체로 전체라는 것이다
보는 주체,내가 있어서 보는게 아니라
이미 "보는 작용"이 있을 뿐이다

주시가 유지되고 자시고 하는 그런 게 해답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여기서 "그래도 주시하는게 좋아" 라고 한다면
그는 언제나 자기분열상태를 힘써 유지하는 것이며
결코 대오했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사실 자기분열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당신이 스스로를 보려는 순간,
보이는 자는 사라지고 보는 자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건 늘 지는 숨박꼭질이다  
사실 당신은 언제나 붓다(하나)인데
스스로 그렇게 믿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주시하지 않아도 당신은 하나라는 걸 알아야 한다
심지어 당신이 슈퍼마켓에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이는 과정에서도 당신은 하나다
"망설이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무얼 하든 하나다
당신이 원하는게 붓다가 되는 거라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붓다다
다시 한번 확실히 말해두겠다
당신은 이미 붓다다
당신은 이미 붓다다
당신은 늘 붓다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거기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초능력을 얻으려고 수행하는 건 좋다
그러나 붓다가 되려고 수행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붓다 아닌적이 없었건만
혼자 아니라고 착각한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늘 당신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오가 마치 현재 자기상태와
뭔가 다른 상태가 아닐까..기대하기 때문에 노력하게 된다
그 노력이 아니다
그냥 당신 모습에 안착하는 것..
과거 스스로 비하하던 보잘것 없는 자기 모습에
그대로 만족하는 것이다
만족해야지.. 하고 만족하는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안착하려고 노력해서 안착하는게 아니다
사실 안착할 고정된 당신은 없다
아무것도 콘트롤하려 해선 안된다
그냥 심각함없이 한 인생 살아가는 흐름 자체가
타오이며 자연이다
당신은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욕망이 생길 수도 있다
예컨대 성욕,물욕 따위가 생길 수 있다
완전히 보통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삶을 초월하겠네,붓다가 되겠네
수다를 떨진 않을 것이다
붓다란 붓다가 되는 것에 관심없는 사람일 뿐이다

이제 거리를 걸어보자
온통 붓다 투성이일테니..  

작성자:  소리샘  등록파일 없음   조회: 99, 줄수: 62   
옳으신 말씀 뿐이군요...
매우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내가 아닌 무엇이 내안에 있다는 것은
분명 착각입니다.

그러나 나를 조종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성격, 본능, 직관, 무의식, DNA 유전구조 등등등
그걸 스스로 주시하고 관찰해 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의식상태가 그걸 가능하게 하겠지요.

모두가 붓다인 것은 논리상 맞습니다.
그러나 현상세계는 그 한계상 개인간 차이를 지닐 것입니다.

어떤 동기나 의지, 갈망이 항상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

에오는 그걸 간파하고 모두를 거부한 채 사라져갔으며,
그는 생명의 완벽한 해소,해탈을 구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생명자체를 부정해야만 할 근거가 있겠습니까 ?

오쇼는 에오와 다르게 생명을 긍정하는 입장에 서 있었을 뿐, 전하려는 메시지는 같았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물질주의자입니다.
아니 현상주의자라고 해야겠지요.
의식은 물질의 부수적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물질이라는 생각도 의식이긴 하지만요.

도나 자연스러움,
그건 생명의 속성이며
우리의 의식은 생명을 유지하거나 거부하는
판단능력이겠지요.

그이상 더 무엇이 있겠습니까 ?
신이 어디에 있으며,
깨달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
솔직함만이 내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줄거라 생각합니다.

에오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그의 우주론적 목적이나 해결이 아니라
그의 집요하고도 철저한 논리방식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의식되지도 않는 것을 가정하여
그에 매달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요.
즉, 자신도 모르게 가식적으로 되어가겠지요.
그것은 순전한 개인적인 희망이나 소망의 산물일 뿐이지 그 이외에 더 새로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어떤 수학자가 불확정성 원리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고 합니다. 풀어보자면 다음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우주안의 어떤 의식적인 논리의 결과도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즉, 완전한 것은 그 한계상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완벽하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
60억 인구 만큼의 다양한 성격의 붓다가 있으니
서로 시기하지 말고
서로 인정하며
서로 이해하며
사는 길 밖에요.........총총....
2001-08-30(10:06:56) from 210.98.53.177

  442   Re:에오킬러 님..답변좀 부탁합니다..
작성자:  질문좀..  등록파일 없음   조회: 107, 줄수: 250   
김부민Write:
>그동안 글 잘 봤구요..
마음이 심란해서 님 께 답변 좀 듣고 싶습니다..
두달전 우연히 티비 에서 한 여성을 보고(모델)

그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진리를 깨우쳤다고 자부하던 제가
지금은 마음이 두쪽으로 갈라져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머리속은 온통 그녀에 대한 걱정,관심,질투,
이런 식으로 되버렸고..지난날 다짐(진리)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려 허탈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몰두 하는게 허무 하단걸 느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롭습니다..
부디..답변좀 해주세요..
몸도 허약해 지고 밥도 못먹습니다..
>>에오킬러 Write:
>>스스로를 관찰해보면
>어떤 행위를 하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주체가 따로 있어서
>그 행위,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그 행위,생각 자체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행위 주체와 행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
>종교라는 간판을 내건 여러 집단들이
>"내가 아닌 무엇이 내안에 있다" 라는 기분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종교에 포함되는 대상은
>순진무구 기독교도들과 빡빡이 불교도들,
>돈 뜯어먹기 좋아하는 대순진리회,
>증산도,이슬람교도들 뿐만 아니라
>라즈니쉬 할배,라마나 마하리쉬,아름다운 청년 에오의 추종자들까지 싸그리 포함된다  
>"내가 아닌 무엇이 내 안에 있다" 고 하면
>여러가지 우스꽝스런 해프닝이 벌어지게 된다
>기독교도들은 그걸 성령이라 부르고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불교도들은 진아라고 부르며 머리를 빡빡 민다
>그리고 기독교도들과 더불어 윤회라는 환상에 중독된다  
>증산도,이슬람교에서는 열심히 절을 하며
>대순진리회에서는 나쁜 귀신이 들었다거나
>조상 중 문제있는 분이 들어와서 고생시킨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다
>현대인 대부분이 서양과학이라는 종교에 빠져 있기 때문에
>보통 이런 분들을 미친 놈 취급하게 되나
>[4차원의 세계]같은 오컬트에 빠지거나
>현대과학의 한계를 실감한 나약한 헛똑똑이들은
>쥐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결국 시스템에 늘 의존하는 버릇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일이 꼬이면 시스템 잘못으로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아닌 그 무엇,조상탓,악마탓,에오탓이 아니라  
>"당신 아닌 무엇이 당신 안에 존재한다" 는
>어리석음에서 유래한다
>당신 안에 무엇도 당신 아닌 것이 없건만
>쉽사리 그것을 "내가 아닌 것"으로 규정한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응원하는 많은 어리석은 집단들에 중독된다
>그 집단들에게 놀랄만치 쉽사리 이용당하는 건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뭘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에오가 당신보다 당신 스스로에 대해 잘 알까?
>당신은 누구라도 붙잡고 싶다
>확실한 스승을 찾고 싶다
>현대과학과 여러 종교 시스템에서
>라즈니쉬,마하리쉬,에오까지 ...
>그런데 그들은 고작해야 당신의 부분을 볼 뿐이다
>당신의 전체를 아는 건 당신 뿐이다
>물론 여기서 안다는 건
>이해하는 주체가 되어 이해할 대상을 이해한다는게 아니며  
>그저 전체로서 계속 유지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인데..
>그걸, 그렇게 쉬운 걸 당신은 부정하느라 바쁘다  
>
>현대인은 스스로 책임지길 두려워한다
>조상탓이라느니,악마 때문이라느니..하면서
>주문을 외고 방언을 쏼라쏼라 욀 것이다
>돈을 요구하는 종교인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바칠 것이다  
>그들이 무언가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하며...
>
>현대인들은 스스로 걷지 못하는 절음발이로,
>주류 패러다임의 영원한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국가,종교라는 시스템을 구성한채
>함께 미쳐버린 사람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다  
>
>라즈니쉬,마하리쉬,에오 추종자들은
>앞에서 열거한 무리들을 비웃으며  
>"나 아닌 무엇" 찾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이 또한 미친 짓임을 알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    
>한마디로  
>서양사유방식의 침투가 이런 류의 심리상태를 조장한다  
>이런 류의 심리 상태란
>"내가 아닌 무엇가 내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이런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나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려는 욕망을 생산해낸다
>그런데 그 현재의 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람 기분은 날씨처럼 변화무쌍하다
>물론 거기에 어떤 질서도 없다고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혼돈 속에는 어떤 질서가 존재한다
>매일날씨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밤낮이 거듭되고 사계절이 있다
>이런 식으로 대강의 룰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간의 자아도 이와 마찬가지..
>그래서 자아현상은 혼돈흐름이지만 거기에는 질서가 있어
>대강의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상일 뿐이므로 부정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
>항상 똑같은 나는 없지만
>"나"라고 하는 일말의 질서는 존재하며
>그걸 부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그 질서에 집착하여
>사고로 "난 이래야해" "이건 내가 아냐" 하는 식으로
>질서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것도 역시 아이러니다
>무우 자르듯 규정되는 세상이 아니며
>무우 자르듯 규정되는 자아가 아닌 것이다
>
>앞에서 서양사유방식을 언급했는데 여기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말에는 주어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를 포함한 인도계 언어는 주어를 반드시 사용한다
>이 부분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언어라는 것에 의해 인간사유구조가, 인간삶의 구조가
>인간문화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말 운동을 하자는게 아니다
>단지 주어를 생략하기도 하고 집어넣기도 하는 우리말이
>현상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주어(자아)는 사라질수도 있고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신경쓸 때도 있고 신경쓰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
>본래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사유가 자유스러웠다
>나에 집착하지도 않고 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바로 그 상태에서 살았다
>이걸 굳이 말하자면 타오라 불러야겠다
>타오를 규정짓지 않는 상태라 한다면 말이다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현상계가 왜곡된다고
>걱정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래서 언어를 떠나자..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무엇을 통해 그렇게 주장하는 겐가
>그렇다.언어를 통해 언어를 떠나자고 주장한다
>언어를 떠나자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들..
>그리고 자아를 떠나자는 거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은..
>잠시 이야기를 마저 들어주시기 바란다
>자아의 재료가 바로 언어인 것이다
>때문에 언어를 떠나자는 것은 자아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침묵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여기까지가 "사고라는 감옥에 갇힌 병자"의 모습이다    
>이런 행위는 전체 현상을 살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붓다들은 왜 그렇게 많은 설법(언어)을 했는가 살펴보자
>그건 침묵만이 해답이다..라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그들은 수다쟁이들이다
>라즈니쉬의 책들을 보자
>할배는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었는가
>無苦無道,
>에오는 깨달음이란 환자에게 접종하는 치료약이라고 했다
>애초에 현상과 괴리된 사유방식이 없던 우리언어구조에서는
>이런 환자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화니 국제화니 해서
>참으로 미혹 그 자체인 사유구조가 흡수되기 시작했고
>마치 그런 사유구조 속에 있는 것이
>수준높은 것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서양철학사를 살펴보면 온통 유치한 미혹 투성이며
>애매함 그 자체를 규정 지으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규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고립을 전제로 한다
>나라는 개념을 세상과 분리시키려는 것이 규정이다  
>
>심각함 그 자체를 유발하는 것은
>언제나 현상과 괴리된 사유방식이다
>규정 지으려는 노력이 심각함을 유발하는 것이다
>현상과 괴리되었기 때문에 심각해지는 것이다
>라즈니쉬가 "심각함은 병이다"라고 했는데
>참으로 솔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뭔가 다를 것이 있을거야..라고 한다
>예를 들면 주시가 끝없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걸
>붓다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내가 아닌 무엇"이  나를 본다는 얘기일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하나이며 분리할 수 없는데
>누가 누굴 본다는 걸까?
>사고,행위를 할 때 스스로를 보고 있다면
>아직도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를 설정해놓고
>거기 갇힌 상태란 얘기다
>누가 누굴 보는 게 아니다
>나무를 볼 때는 나무를 볼 뿐이며
>새를 볼 때는 새를 볼 뿐이다
>"나는 새를 본다"가 아니라 "새를 본다"이다
>설령 "나는 새를 본다" 라고 하더라도
>새를 볼 때 나는 이미 사라지는 것이다
>"새를 본다"는 순간이며 전체이지만
>"나는 새를 본다"는
>나에 대한 주시와 새를 보는 행위작용으로 분열된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걸 잘 살펴보기 바란다  
>"나에 대한 주시"를 부정하는게 아니다
>단지 나에 대한 주시는 그 자체로 전체이며
>새를 보는 작용도 그 자체로 전체라는 것이다
>보는 주체,내가 있어서 보는게 아니라
>이미 "보는 작용"이 있을 뿐이다
>
>주시가 유지되고 자시고 하는 그런 게 해답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여기서 "그래도 주시하는게 좋아" 라고 한다면
>그는 언제나 자기분열상태를 힘써 유지하는 것이며
>결코 대오했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사실 자기분열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당신이 스스로를 보려는 순간,
>보이는 자는 사라지고 보는 자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건 늘 지는 숨박꼭질이다  
>사실 당신은 언제나 붓다(하나)인데
>스스로 그렇게 믿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주시하지 않아도 당신은 하나라는 걸 알아야 한다
>심지어 당신이 슈퍼마켓에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이는 과정에서도 당신은 하나다
>"망설이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무얼 하든 하나다
>당신이 원하는게 붓다가 되는 거라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붓다다
>다시 한번 확실히 말해두겠다
>당신은 이미 붓다다
>당신은 이미 붓다다
>당신은 늘 붓다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거기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초능력을 얻으려고 수행하는 건 좋다
>그러나 붓다가 되려고 수행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붓다 아닌적이 없었건만
>혼자 아니라고 착각한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은 늘 당신이다
>
>어떤 사람들은 대오가 마치 현재 자기상태와
>뭔가 다른 상태가 아닐까..기대하기 때문에 노력하게 된다
>그 노력이 아니다
>그냥 당신 모습에 안착하는 것..
>과거 스스로 비하하던 보잘것 없는 자기 모습에
>그대로 만족하는 것이다
>만족해야지.. 하고 만족하는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안착하려고 노력해서 안착하는게 아니다
>사실 안착할 고정된 당신은 없다
>아무것도 콘트롤하려 해선 안된다
>그냥 심각함없이 한 인생 살아가는 흐름 자체가
>타오이며 자연이다
>당신은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욕망이 생길 수도 있다
>예컨대 성욕,물욕 따위가 생길 수 있다
>완전히 보통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삶을 초월하겠네,붓다가 되겠네
>수다를 떨진 않을 것이다
>붓다란 붓다가 되는 것에 관심없는 사람일 뿐이다
>
>이제 거리를 걸어보자
>온통 붓다 투성이일테니..  
>
>    
2001-08-29(13:20:30) from 211.239.61.59

  441   Re:에오킬러 님..답변좀 부탁합니다..
작성자:  에오킬러  등록파일 없음   조회: 151, 줄수: 47   
김부민님께,

그저 하고픈대로 하십시오
전 그냥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지금 집인데요,어머니가 해주신 호박죽을 먹었죠
하도 맛있어서 한 번 만들어볼까 합니다
집 뒤에 작은 밭이 있는데
거기 호박이 자라고 있어요
여기 이사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무성하죠,귀뚜라미 소리도 들리네요..

잠시 뒤에 물 주러 갑니다
저녁에 물주는게 좋죠
물이 흙에 잘 스며들거든요

이번 가을에 호박죽 만들어서
친구,후배들하고 나눠먹으려고 합니다  
예전에 서운하게 했던 일도 있고 해서리...
기분도 풀어줄겸,뭐 그런거죠

아무도 당신 스승이 될 순 없습니다
친구가 될 순 있어도..
전 여기 게시판 사람들이 좋습니다
가끔 오죠..
에오 만나는 분들은 그리 흔하지 않아요
우연히 만난 분도 계시겠지만
뭔가 열정을 가지고 추구해 오신 분들입니다

함께 에오를 열심히 읽은 친구로서 말씀드리면,
세 끼 꼬박 챙겨드시는게 좋겠습니다
운동을 가볍게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전 줄넘기를 하죠...-_-;;
원래 이 동네 줄넘기 하는 사람이 저 혼자였는데
어제 보니까 조그만 꼬마애들도 나와서 하더라구요
두 명이서 한 줄 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기분 좋았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추신]
예전에 제가 올린 글 중에
무례한 글이 좀 있죠
그 분들한테 무척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2001-08-29(20:08:25) from 211.177.216.182

  440   Re:정말 멋진 답변 이시네요..
작성자:  김부민  등록파일 없음   조회: 115, 줄수: 50   
감사합니다..자주 뵙죠..맘이 편합니다..
>
>>에오킬러 Write:
>>김부민님께,
>
>그저 하고픈대로 하십시오
>전 그냥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지금 집인데요,어머니가 해주신 호박죽을 먹었죠
>하도 맛있어서 한 번 만들어볼까 합니다
>집 뒤에 작은 밭이 있는데
>거기 호박이 자라고 있어요
>여기 이사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무성하죠,귀뚜라미 소리도 들리네요..
>
>잠시 뒤에 물 주러 갑니다
>저녁에 물주는게 좋죠
>물이 흙에 잘 스며들거든요
>
>이번 가을에 호박죽 만들어서
>친구,후배들하고 나눠먹으려고 합니다  
>예전에 서운하게 했던 일도 있고 해서리...
>기분도 풀어줄겸,뭐 그런거죠
>
>아무도 당신 스승이 될 순 없습니다
>친구가 될 순 있어도..
>전 여기 게시판 사람들이 좋습니다
>가끔 오죠..
>에오 만나는 분들은 그리 흔하지 않아요
>우연히 만난 분도 계시겠지만
>뭔가 열정을 가지고 추구해 오신 분들입니다
>
>함께 에오를 열심히 읽은 친구로서 말씀드리면,
>세 끼 꼬박 챙겨드시는게 좋겠습니다
>운동을 가볍게 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전 줄넘기를 하죠...-_-;;
>원래 이 동네 줄넘기 하는 사람이 저 혼자였는데
>어제 보니까 조그만 꼬마애들도 나와서 하더라구요
>두 명이서 한 줄 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기분 좋았습니다
>
>건강하십시오
>
>
>[추신]
>예전에 제가 올린 글 중에
>무례한 글이 좀 있죠
>그 분들한테 무척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
>

출처: 에오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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