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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지금여기

욕심과 원력을 구별하자

by 현상아 2006. 11. 23.

"스님은 욕심도 많으셔요...하루 네번 기도하는 것도 부족해서 다섯번이나 하시고...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셔요.   1~2시간 차를타고 와서 매일 기도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욕심도 많으셔라.."

 

모든 욕망의 근본은 갈애渴愛라 하였다...목마를때 물을 갈구하듯  하고자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고자하는 뜻에 집착을 하는 것을 욕심이라부르는 것이다..

 

욕심에는 크게 다섯가지가 있는데 재물욕(財物慾)·명예욕(名譽慾)·식욕(食慾)·수면욕(睡眠慾)·색욕(色慾)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상한게 있다....다섯가지 욕심중엔 공부에 대한 욕심은 없다...불자들은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부 욕심이 많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왜 오욕중엔 공부욕이라는 말이 없을까?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올리거나 절을 많이하거나 경전을 많이 독송하거나 불사를 많이하거나 용맹정진을 하는 것도 집착하니까 열심히 하는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도 욕심이라 불러야 할 터인데 경전에는 이런 것을 욕심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런것들은 무엇일까?   

 

바로 원력이라부른다....원력이란 무엇인가?

 

불교를 신행(信行)하는 사람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내적으로 수립하는 기본적인 결심과 그에 따르는 힘이다.

 

백과사전에 있는 말이다...불자들이 어떤 행위를 할때 그것을 원력이라 부르는 것과 욕심이라 부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원력이라 부르면 같은 행동을 해도 자신감있게 진취적으로 할 수 있는데 반해 욕심이라 부르면 열심히 하다가도 '내가 왜 이러지?   부처님께서 집착하지 말라했는데..' 하는 생각에 전념하여 행하기 어렵다..

세속의 일이든 수행이든 일념으로 하지 않으면 성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사업하는 사람이 돈을 열심히 벌려할 때 한참 열심히 하다가도 '내가 왜 이리 욕심이 많지?'  하는 생각을 하면 생각이 흩어져 제대로 돈을 벌 수가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려하는 것을 원력이라 부르자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이 대체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 잘먹고 잘살기 위해 하는 것이 대부분이니 돈벌려하는 것은 욕심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돈을 벌려하는 것도 그 목적이 다르다면,  모든 중생을 위해, 불사를 위해 하려 한다면 그것도 원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욕심히 많아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원력이 강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하나는 하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이요  하나는 불국정토에 나는 것이다..

 

하지만 원력의 이름으로 불사나 사업을 자신의 욕구충만을 포장해서는 안된다..

 

그 관계는 지극히 미묘해서 구분하기 어렵지만 난 천수경이나 보현행원품을 매일 독송하면서 그 원력을 순수하고 굳게 만들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고 불사나 사업을 한다면 모두 욕심이라 생각한다..

 

불자들은 언어표현을 하는데 신중해야 한다..  선행을 하거나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을 원력이 강하다는 표현을 해야 불자로서의 자세가 더 곧아진다...그러한 일에 욕심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원력:

 

불교를 신행(信行)하는 사람이 목적을 성취하고자 내적으로 수립하는 기본적인 결심과 그에 따르는 힘. 일반적으로는 원·서원(誓願)·행원(行願) 등으로도 표현하지만, 내면적인 원은 결코 원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원을 이룰 수 있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원과 힘은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불도를 닦는 보살은 반드시 원을 세워야 하고, 그 원을 성취하여 성불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보살이 인위(因位)에서 세우는 원을 본원(本願) 또는 인원(因願)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보살의 기본적인 원은 부처가 되고자 맹세하는 원작불심(願作佛心)과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도중생원(度衆生願)으로 대별되며, 이를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원(下化衆生願)이라고 한다. 불교의 거의 대부분의 부처와 보살은 그들의 본원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불교가 채택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법장비구(法藏比丘)가 극락정토를 건립하기 위하여 세웠던 48대원(大願)과 약사여래의 12대원, 보현보살의 10대원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48대원은 크게 섭법신원(攝法身願)·섭정토원(攝淨土願)·섭중생원(攝衆生願) 속에 모두 포섭된다. 또, 약사여래의 12대원은, ① 나와 남의 몸에 광명이 끝없고 상호(相好)가 원만하도록 하겠다는 광명보조원(光明普照願), ② 몸은 유리와 같고 빛나는 광명은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어 모든 사업이 생각대로 되도록 하겠다는 수의성변원(隨意成辨願), ③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루게 하겠다는 시무진물원(施無盡物願)이다.

또 ④ 외도(外道)를 믿는 사람은 불법(佛法) 속으로, 소승은 대승으로 이끌어들이겠다는 안립대승원(安立大乘願), ⑤ 청정한 수행을 하는 이가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갖추도록 하겠다는 구계청정원(具戒淸淨願), ⑥ 불구자의 육체를 온전하게 만들겠다는 제근구족원(諸根具足願), ⑦ 온갖 병을 없애고 위없는 깨달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제병안락원(諸病安樂願), ⑧ 여자의 몸을 버리고 남자의 몸을 받아 성불하게 하겠다는 전녀득불원(轉女得佛願)이 있다.

그리고 ⑨ 삿(邪)된 견해를 버리고 정견(正見)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안립정견원(安立正見願), ⑩ 중생으로 하여금 도난과 투옥 등의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제난해탈원(除難解脫願), ⑪ 음식이 풍족하고 불교의 진리를 들어 안락한 경지에 있도록 하겠다는 포식안락원(飽食安樂願), ⑫ 가난하여 헐벗은 이에게 아름다운 옷을 얻게 하겠다는 미의만족원(美衣滿足願) 등이다. 이 12대원은 소홀하기 쉬운 여러 가지 사항에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원이기 때문에 깊이 신봉하고 있다.

 

또한, 보현보살의 10대원은, ① 모든 부처에게 예경하겠다는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 ② 여래를 찬탄하겠다는 칭찬여래원(稱讚如來願), ③ 공양을 널리 행하겠다는 광수공양원(廣修供養願), ④ 업장을 참회하겠다는 참회업장원(懺悔業障願), ⑤ 부처의 공덕을 수희하겠다는 수희공덕원(隨喜功德願), ⑥ 항상 설법하여주기를 청하는 청전법륜원(請轉法輪願), ⑦ 부처가 항상 세상에 머물러 있기를 청하는 청불주세원(請佛住世願)이 있다.

그리고 ⑧ 항상 부처를 따라 배우겠다는 상수불학원(常隨佛學願), ⑨ 항상 중생을 따라 순응하겠다는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 ⑩ 모든 수행의 공덕을 중생과 깨달음의 길에로 돌리겠다는 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 등이다. 이 보현보살의 10대원은 수행하는 과정에 있는 보살이 닦고 익혀야 할 기본적인 실천행으로서 높이 받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선종(禪宗)의 저녁 예불 때에는 이 10대원을 기본으로 삼아 만든 108배의 참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 고승들 가운데에는 신라의 의상(義湘)과 고려 말의 나옹(懶翁)이 특별한 원을 세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의상은 관세음보살을 향한 〈백화도량발원문 白花道場發願文〉과 일승(一乘)의 보살이 될 것을 천명한 〈일승발원문 一乘發願文〉을 남겼다. 나옹은 세세생생(世世生生) 반야(般若)에서 물러나지 않고 부처와 보살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며, 마침내 부처도 중생도 없게 하겠다는 발원문을 남기고 있다.

 

≪참고문헌≫ 藥師如來本願經
≪참고문헌≫ 普賢行願品
≪참고문헌≫ 懶翁集
≪참고문헌≫ 韓國佛敎全書 第一冊(東國大學校 出版部, 1978)

(출처-보살로가는길 기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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