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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우리나라 역사 속의 커플들 ...

by 현상아 2006. 11. 26.

역사서에 실린 내용과 설화, 일화 등이 유명한 커플들을 위주로 뽑았습니다.

 

곽리자고(霍里子高) ♥여옥(麗玉)

고조선시대 사람들이죠. 어느날 곽리자고가 강가에 나갔다가 강기슭으로 달려오는 머리가 하얗게 센 사나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친듯이 강으로 뛰어들어가 물에 빠져 죽죠. 뒤따르던 아내는 공후를 타면서 슬피 노래하다가 남편을 따라 강물에 몸을 던져 죽습니다.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와 아내 여옥에게 그 부부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하니, 여옥이 이를 공후에 담아 노래한 것이 〈공후인〉이라 합니다.

 

유리왕 ♥ 치희(雉姬)

서기전 17년(유리왕 3)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화희(禾姬)와 함께 유리왕의 후실이 됩니다. 그러나 서로 왕의 총애를 다투다가, 결국 유리왕이 사냥을 나간 사이에 화희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고 스스로 왕궁을 떠나죠. 이 사실을 안 유리왕이 급히 찾았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유리왕은 이를 슬퍼하여 〈황조가 黃鳥歌〉를 지었습니다.

 

김수로왕허황옥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먼 뱃길을 따라 가야로 와서 김수로왕과 혼인하고 왕비에 오릅니다. 김수로왕은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고 허황옥의 아들 10명중에 두명이 허씨의 성을 따라 김해허씨의 시조가 됩니다.

 

연오랑 ♥ 세오녀

신라 8대 임금 아달라 왕 때 동해 바닷가에 잉꼬부부였답니다.

연오랑이 홀연히 나타난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고 얼마뒤 아내 세오녀 또한 바위를 타고 뒤를 따라 왕비가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부가 떠난뒤부터 해와 달이 빛을 잃었고 신라에서는 사신을 일본에 보내 귀국을 요청했지만 부부는 거절하고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면 하늘에 제사지내라 했죠. 영일현에서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동 ♥ 선화공주

무왕(서동)은 선화공주를 얻기위해 서동요를 만들어 신라의 선화공주가 궁에서 쫓겨나게 만듭니다. 결국은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가는데 성공하죠.

 

원효 ♥ 요석공주

원효대사가 파계를 하면서 요석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설총이죠. 그 후부터 원효대사는 파계하였다고 속복으로 바뀌어 입고 소성거사라고 자칭하죠. 그리고 촌락으로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하기 시작하여 불교를 대중화시키는데 전념하였죠. 원효대사는 소요산에 머무르며 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 시기에 요석공주도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에 들어와 조그마한 별궁을 짓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원효대사가 공부하는 원효대를 향하여 삼배를 드렸다고 전 해오고 있으며, 그 때의 별궁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요석궁지라 불리고 있습니다.

 

진성여왕 ♥ 위홍

삼촌과 조카사이지만 당시 신라의 근친혼이 성행했던 사실을 인정하면 그리 흠잡을 것이 못되죠. 당시는 골품제라는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자식 사이의 결혼을 제외한 근친혼이 성행했습니다. 진성여왕 역시 위홍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고 정치의 전권을 위홍에게 일임할 정도였죠. 위홍이 죽은 뒤에 시호를 내려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 했습니다.

 

김춘추 ♥ 문희(문명왕후)

문희는 김유신의 누이로 김유신과 김춘추가 격구를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이 떨어져나가자 이를 꼬매주면서 연분이 맺어졌죠. 전날 밤 언니 보희의 꿈을 샀다고 합니다. 김춘추가 결혼에 대해 망설이자(김춘추가 이미 결혼한 몸이어서 당시 정황이 김춘추가 결혼하지 못할 상황이었다고 함) 김유신이 문희를 화형시키려는 것을 선덕여왕의 중재로 결혼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유명하죠.

 

김유신 ♥ 천관녀

천관녀는《원사(怨詞)》의 작자로서 그녀의 집을 천관사(天官寺)라 하였다. 젊었을 적 화랑 김유신이 기생인 천관녀에게 흠뻑 빠져있었는데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다시는 그녀의 집으로 가지 않기로 맹세하였죠. 어느 날 술에 취하여 집에 돌아가는데, 말이 늘 하던 버릇대로 그녀의 집앞에 멈추자, 유신이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말의 목을 베었습니다. 천관녀가 그의 무정함을 원망하는 원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공민왕노국대장공주

공민왕은 원나라 출신의 노국대장공주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반원정책을 쓰는 와중에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공민왕은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친히 왕비의 초상화를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울었다합니다. 또 그녀를 추모하여 불사(佛事)에만 전념하여 고려가 기울게 됩니다.

 

왕건 ♥ 장화왕후

왕건이 거느린 왕비중에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 장화왕후입니다. 고려2대황제인 혜종의 어머니죠. 왕건이 전략적 요충지인 나주에 주둔할때 우물가에서 어느 처자에게 물한그릇을 요구했는데 이 처자가 바가지에 천천히 드시라고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넸다는 것은 유명합니다.

 

최경창 ♥ 홍랑

1573년(선조 6)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시명이 높았던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과 기생 홍랑의 사랑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도 유명하죠. 최경창이 북방에서 관직을 지낼때 만났으나 그리 오래 사랑을 나누지 못했죠. 둘이 동거한 기간은 1년도 못됩니다. 하지만 최경창이 객사를 하자 홍랑은 시묘살이를 하며 사랑으로 절개를 지키며 살다 죽습니다.

 

광해군김개시

김개시는 상궁으로 미모의 여인도 아니었으나, 민첩하고 꾀가 많아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는데, 이를 배경으로 국정에 관여하여 권신인 대북(大北)의 영수 이이첨(李爾瞻)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죠. 이러한 권세를 힘입어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국정을 크게 문란시켰습니다. 이에 윤선도(尹善道)·이회(李洄) 등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논핵했으나, 도리어 그들이 유배되는 등 광해군 일대를 통하여 권세를 누리었으나, 1623년(광해군 15)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반정군에 잡혀 참수당했습니다.

 

연산군장녹수

최악의 역사 커플입니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이 거느린 종의 신분이었으나 가무와 여색이 뛰어나 궁에 들어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습니다. 장녹수는 정치에 관여하는 등 악행을 일삼다고 중종반정으로 사형에 처해집니다.

 

윤원형정난정

역시 국사를 농단한 최악의 커플이죠. 정난정은 윤원형의 본처를 몰아내고 독살시키면서 정실부인이 되고 윤원형과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켜 권세를 움켜쥡니다. 또한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정경부인이라는 칭호를 받죠.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권세를 잃어 윤원형의 유배길을 같이 가다가 같이 음독자살합니다. 정난정이 백성들의 돌팔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허균 ♥ 매창

매창은 당대에 뛰어난 시인이자 기생이었지만 허균이 매창을 알았을때는 유희경이라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고 수절하고 있었습니다. 허균은 매창의 마음을 알고 매창이 38세(허균과는 네 살차이)의 나이로 죽을때까지 서신을 오고가며 인간적인 친분만을 키웠죠. 요즘 말로하면 플라토닉사랑 (Platonic love)이라 할수 있죠.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 허균이 매창에게 보낸 편지를 2통의 편지와 매창의 죽음 애도하는 시가 남아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매창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구구절절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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