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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9월 2일 역사 속 오늘

by 현상아 2007. 9. 2.
9월 2일 역사 속 오늘
 
▶ 세계 첫 탱크 등장(1916)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오늘 영국이 제작한 세계 최초의 탱크 '마크 원 Mark-1'이 선보인다.

마크 원 탱크는 기관총과 대포를 장착했지만 속도는 겨우 시속 6km!

보병이 걷는 속도에 맞췄다.

이날 첫 선을 보인 마크 원은 13일 뒤인 9월 15일 '솜므(Somme) 전투'에 투입된다.

▶ 비전향 장기수 63명 북한으로 송환(2000)

2000년 오늘 오전 비전향장기수 63명이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거쳐 북한으로 송환됐다.

이들은 간첩으로 남파된 후 붙잡혔거나 빨치산,인민군 등으로 활동하다 검거돼 짧게는 15년부터 길게는 45년까지 장기복역한 사람들로 대부분 70살 이상의 고령자들이었다.

북한은 이날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 등 5백여 명이 나와 이들을 맞이한 데 이어 평양 도착 후에도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열었다.

이에 앞서 납북자가족모임과 전몰군경유가족회 등은 임진각과 통일대교 남단 등에서 납북자 국군포로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일본 항복문서 조인식(1945)

1945년 오늘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군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인정하는 항복문서에 조인한다.

연합군 대표는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

일본대표는 우메즈 대장과 시게미스 외무장관.

두 사람의 서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완전히 끝났다.

항복 후 연합군의 통치를 받은 일본은 우리 나라의 6.25전쟁을 경제부흥의 발판으로 삼고 1951년 9월 연합국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한다.

▶ 레바논 내전 휴전 합의(1986)

내전 11년째를 맞은 레바논!

1986년 오늘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기독교도 민병대와 회교도 사이에 휴전이 합의됐다.

그러나 이 휴전 합의는 곧바로 유명무실해지고 양측 사이의 테러와 국지전이 계속된다.

결국 4년 뒤인 1990년에야 기독교 민병대가 정부군의 대규모 포격에 항복하고 같은 해 12월 기독교와 회교도 등 각 분파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출범함으로써 내전이 종식된다.

레바논은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데 이어 1946년 프랑스군이 완전히 철수했지만 그 이후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975년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기독교도 우파 '팔랑헤당'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게릴라 기지를 습격하고 팔레스타인인이 탄 버스에 테러를 가한 것이 도화선이 돼 레바논 전역이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 미국 인종차별 반대 시위(1966)

1966년 오늘 미국 시카고 근교의 시세로(Cicero) 마을!

흑인 수백 명이 흑인거주지역의 확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다.

경찰의 호위 속에 펼쳐진 평화적 시위였지만 일부 흑인들은 병과 계란을 던지기도 한다.

이날 시위는 큰 불상사 없이 마무리됐다.

이 당시 시카고와 주변 지역은 인종에 따라 주거지역을 제한하는 차별정책이 심해 흑인들의 큰 반발을 샀다.

▶ 장칭 중국 특사, 알바니아서 귀국(1966)

마오쩌둥의 세 번째 부인 장칭(江靑)!

1966년 이맘 때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공산 알바니아를 특사 자격으로 방문하고 귀국한다.

장칭은 린뱌오와 함께 문화대혁명을 이끌고 홍위병을 진두지휘해 중국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장칭은 10년 뒤인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권력을 잃고 이른바 '4인방 사건'으로 체포된다.

1981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형으로 감형돼 복역하다 1983년 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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