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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1900년대 및

추억거리들의

by 현상아 2007. 9. 30.




★ 금    줄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 하던 시절 금 줄에 걸린 붉은 고추는 행인 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만큼 스스로 당당함 을 뽐냈다.
빈부 격차나 신분의 고하 지역을 가릴것 없이 새끼줄에 빨간 고추와 숯 솔가지가
매달렸으면 아들이고 솔가지 와 숯만 걸리면 딸이었다.




★  이

해병대 300기 이하이신 선.후배님들은 현역 복무시절 털로짠 동내의 틈 사이에서
[이 님]들이 살이 통통 찌도록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추억을 갖고있어며
어렵던 어린 시절에 이 징그러운 미물이 목숨 걸고 날라다 준 인정과 우애의
교감 조차도 지금은 온 몸을 활보하던 스물거림의 추억과 함께 잊혀져가고 있다.




★  헌  책 방

40대중반 이상이면 학창시절 헌책방에 얽힌 추억을 하나쯤은 간직하고있다.
미팅으로 만난 여 학생과 대화를 위해 고전 문학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던 곳,
멀쩡한 교과서나 사전등을 팔아 군것질을 하기위해 찾았던곳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새책값으로 헌책을 구입하고 나머지는 군건질이나 미팅 비용에 슬쩍했던 일등….




★ 뻥   튀기 장수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60∼70년대의 풍경이다.당시는 주전부리 라고 해봐야
고작 찐 고구마,감자,옥수수 등이 전부였다.
봄 부터 여름 까지 과일등 으로 입을 달래던 꼬마들은 날씨가 선선해 지면서
주전 부리를 할  먹 거리가 별로 없어 심 심 하였다.    이런 가운데  뻥 튀기
장수라도 올라치면 최고의 군것질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물론"눈깔사탕"과
같은 것도 있었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 먹을수 있는것이  뻥  튀기였다




★ 측    간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못했던 것들도 현실이 탈색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
"측 간"(厠間)이란 말에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가려주는 시간의 먼지가 소담하게 쌓여 있다.







★ 지    게

북청 물장수 물지게, 영 호남의 바지게 등 온갖 지게는사실상 용도 폐기되고
몇개는 박물관으로 옮겨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하지만 난데없이 ‘지게차’란
서양차가 태어나 지긋지긋한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




★ 전  당  포

전당포가 절박한 삶의  마지막 구원처가 되었던 그때 그 시절이 있었다.
고작  몇 천원짜리 꼬리 표를 매단채 시커먼 금고 속으로 사라지는 고물
태엽 시계 같은 삶의 사연들로 전당포 문지방이 닳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 서 커 스 단

빨간 코에 얼룩무늬 옷을 입은 피에로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롱을 피울 때는
부초(浮草)같이 떠도는 그네들의 삶의 서글픔 마저 배어났다.




★ 엿   장  수

보리 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  엿 장수는 시골
어린이 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 이었다.  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
엿 장수가 오길 기다리며 모아 놓았던 갖가지 고물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 흑 백  탤 레 비 죤

시골에 처음 흑백 T V 가 들어온 것은 60 년대 말에서 70 년대 초.
값이 비싸  대개 한 동네  통 틀어 제일 잘사는 부자 집  한 집에만
T V 가 있기 마련 이었다. 라디오 보다 몇 백배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저녁마다 그 부자집 마당은 T V 를 보러온 마을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T V 를 가진 부자 집의 "TV 유세" 는 대단했으며 이들은 흑 백 T V 를
보물 단지 모시듯 했다. 낮 에는 자물쇠 를 채워 놓은 집이 흔했다




★ 꽃   상 여

기억 나시지요.  아득한 들길 멀리 너울  너울 꽃  상여가 떠나고  마침내는
"어 화 널   어 화 너 얼   어화리 넘 자  어 화 너얼"  애잔한 상두꾼들 소리조차
가 물  가 물 아지랭이에  먹힐 즈음이면  뜸부기 우는 들 가운데 서서 까닭없이
눈 물을 훔 쳤던 콧 잔등 싸 한 추억이.....




★ 양은 도시락

지난 80 년대 까지 도시락 대표 주자는 양 은(洋 銀) 도시락 이었다.
재질이 별로여서 뚜껑이 뒤틀려 맞질 않았고 빛 바랜 색깔도 엇 비슷해
집안 에서도 곧잘 바뀌었다.
밑 바닥은 송곳으로 쑤신 것처럼"송송"올라와 하얀 녹이 슬기도했다.
겨울에 언 밥을 덥히기 위해 도시락을 난로에 올려놓은 후유증이었다.


★ 소  달 구 지

우리와 함께 숨쉬던 달구지가 70년대 근대화 바람으로 리어카와
경운기에 밀려나 골동품 신세로 전락했다






★ 방  앗  간

정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쌀 생산량이 줄어 들어서가 아니다.
농 협에서 운영하는 대형 도정 공장 때문이다.
도시에서 대형 유통 업체가 구멍 가게를  몰아내는 적자 생존의
법칙이 농촌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 요    강

돌이켜 보면 요강 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않았습니다.
염 치(廉恥)가 중했던지라 낮에는 딴전 부리듯 마루 한쪽에 엎어두지만 부엌일
마친 어머니 요강 단지를 방 한쪽 구석에 들여놔야 비로소 일과가 끝났습니다.
바로 뼈 빠지는 노동의 대 미(大尾)에 요강이 있었던 것이지요.




★ 학  교  종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교정에 맑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든
학교  종소리.  땡  땡  땡,그 소리가 그립다.




★ 고  무  신

20 여년 전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용되던 고무신이 요즘은
특 별 한때 특 별한 곳에서 쓰는것으로 인식될 만큼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 성    냥

선진국에서도 성냥산업이 사양 산업으로 분류돼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물  장 수

집  집으로 물을 팔러 다니는 물장수 의 모습에는 급수 시설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옛 시절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우리들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상수도가 본격 보급된뒤 "물장수"라는 말이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생수보급이라 해서 신종 물장수가 아닌 기업체가 늘고 있는실정이다.





지나간 사진들은 Neil Mishalov

한국의 주둔했던 미군에 의해 촬영된 것들입니다.

우리가 1950-60년대 옛 사진을 대개 흑백사진을 통해 보게 되는데

흑백 사진과는 달리 생생한 컬러로 촬영되어 있어서

그 시절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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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에 여념이 없는 농부들(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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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족의 단란한 한 때(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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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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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가무를 즐기던 할머니들, 손만 뻗으면 바로 춤이다.(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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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 풍경` 이 시절만 해도 애를 없고 다니던 사람이 많았다.(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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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피서, 옷을 `훌러덩 벗겨 놔도

창피함이 없었던시절

그냥 시원하게 놀면 장땡이다.(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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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초가집 풍경(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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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시장 길 노점 요즘처럼 포장 노점이 아니라

초라한 인력거 위에서 빵을 굽고 있다.(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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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가을 추수, 벼를 탈곡하고 볏집을 묶는 아낙(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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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울역, 1960년대는 새마을운동으로 일환으로

마을 길 정비 울역이 있었다.(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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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에 풀을 지고 가는 농부,

소에게 풀을 주거나 퇴비 용도로 쓰임(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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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후반의 서울 명동거리-

서울의 신사 숙녀만 다녔던 거리

사람들의 옷 차림에 잔뜩 무게감이 실려 있다.(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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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우시장, 시장이라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갓쓴 노인, 핫바지 저고리 의상을 갖춘 모습

말뚝에 소를 매어놓고 흥정하는 모습이 그 시대를 잠작케 한다.(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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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발발로 모든게 초토화된 시절

오직 운반수 단은 소가 끄는 구루마였다.(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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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의 여름 개울가-아주머니는 빨래하고

아이들은 민물고기가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다.(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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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들의 한양땅나들이, 한복 복장에

머리를 딴 여인들의 모습이 요즘과 다른 모습(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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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의 행차

여렸을 적에 할아버지의 긴 담뱃대

긴 수염 봉초가 생각난다.(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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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큰절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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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행차(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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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를 끌고가는 촌부(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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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오물 뿌리러 가는 촌부(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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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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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언덕길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동네 어르신들, 대개

모자나 갓을 쓴 모습이 이채롭다.(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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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도시 외곽 지역 골목안 풍경(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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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남자아이들-대개 까까머리거나

코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 녀석들이 많았다.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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