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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미스터리 및

동족을 잡아먹는 행위는 치명적 뇌손상을 초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by 현상아 2007. 11. 10.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문의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심약한 분들이나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등은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조사하여 올리는 글들은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닌데 하나를 조사하니 그와 관련된 다른 글들이 자꾸 눈에 띄어서 연속적으로 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cannibalism에 대한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고민할 정도.


네바다주의 시에라 산맥을 넘는 도너 패스(Donner Pass)라는 산길이 있다. 도너 레이크(Donner Lake) 호수 주변으로 난 길로 황금광시대(gold rush) 많은 이들이 동부에서 꿈을 좇아 서부 캘리포니아로 가기 위해 지나간 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도너 패스와 도너 레이크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에는 참혹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도너 패스, 1870년대


1846년 조지 도너와 그의 형제 제이콤 도너가 가족과 동료들과 함께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동부지역을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캘리포니아로 향해 새로운 땅에서 정착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서둘러 짐을 꾸려 출발한다. 가는 도중 다른 이들과 합류하여 총 87명의 대인원이 되어 동부에서 서부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큰 문제라면 시기를 잘못 잡은 것이였다.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사막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거대 산맥들이였는데, 산맥을 넘기 위해서는 계절이 여름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출발 시기가 매우 늦어진데다 웨건(이주민들이 타던 마차)을 소가 끌게 하여 일정이 더더욱 늦어지게 된다. 늦여름을 사막에서 보내며 이미 5명의 사망자가 나게 되었으며 그들이 산맥 초입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겨울로 접어든 상태였다. 이 시기에 산을 넘는 것은 자살행위, 하지만 그들은 산을 넘기로 했다. 산만 넘으면 바로 그곳이 '약속된 땅'이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10월 무렵, 일찍 찾아온 겨울에 아니나다를까 10월 30일경 그들은 해발 2000m 높이에 있는 트릭키 호수 주변에서 조난당하고 만다. 눈 때문에 마차는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이 산 속에서 겨울을 보내야할 판이었다. 주거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바로 식량이었다. 마차를 끌고 온 소를 잡아 먹는다 하더라도 겨울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구조요청을 위해 구원팀을 보내지만 두번에 걸친 구원대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마지막 구원대가 출발한 것은 12월 16일, 최후의 희망이었다.

구원팀은 열심히 산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식량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때 그들이 선택한 것은 구원팀 가운데 혼수상태에 빠진 일인, 다음날 죽음을 맞이한 그는 곧 다른 팀원들의 '일용할 양식'이 된다. 해가 넘어 1847년 1월 1일,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그들이 식량으로 먹은 사람이 5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체력을 비축한 그들 중 아무도 죽는 사람이 없었고 또 한번의 식량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 상당히 대식가였던 포스터라는 인물은 은밀하게 동행하고 있던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 2명을 잡아먹자는 제의를 한다. 이에 에디라는 인물이 크게 반발, 이 과정에 모의를 눈치챈 두명의 인디언들은 재빨리 도망치고, 포스터의 말에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은 그들을 사냥하기 위해 쫓기 시작했다. 구원팀은 이 사건으로 포스터일행과 에디 일행으로 갈라지게 된다. 포스터 일행은 사냥(...)에 성공, 자신들의 배를 불렸고 아이러니 하게도 최종적으로 구원요청에 성공한 것은 포스터 일행이었다.

1월 11일, 다쓰러져가는 몰골로 산을 넘어 새크러먼트의 존슨 목장에 구조요청을 하였고, 곧 구조대가 조직되었다. 하지만 한겨울의 산을 넘어 조난된 사람들을 구해올 수 있다는 보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2월 16일, 천신만고 끝에 트릭키 호수 근처의 조난자 캠프에 구조대는 도착했다. 캠프지에서는 아직 식인 행위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추위와 배고픔으로 체력이 다한 그들 가운데 다수의 사망자가 있었고, 그들을 묻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곧곧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더욱이 불행한 일은 구조대 역시 식량이 넉넉치 않았고, 구조대 자신들도 조난당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산을 넘을 수 있는 이들만 데려가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하여 24명이 선발되어, 목장으로 돌아온다. 물론 조난 캠프에 남겨놓은 식량은 없었다.


1972년 비행기 사고로 안데스 산맥에 조난당한 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72일간 죽은 사람의 인육을 먹고 버텨, 29명이 죽고 16명이 구출된다.


3월 1일, 두번째 구조대가 도달했다. 무서워하던 일은 벌어져 있었다. 식량을 남겨놓고 가지 못했음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존해 있었고, 조난 캠프 주변에는 '골격 표본'이 널려져 있었다. 그들은 죽은 이들을 먹고 살아남은 것이였다. 두번째 구조대 역시 식량은 넉넉치 않았고 이번에는 12명의 사람들이 구조대와 함께 산을 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조대 역시 식량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목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식량이 바닥나게 된다. 그때 7세의 메리 도너"또 죽은 사람을 먹지 않으면..."이라고 순진하게 말했다. 1시간도 되지 않아 그레브스 부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결국 2차 구조대는 11명을 구조해 내었다.

한편 남겨진 조난 캠프에서는 조지 도너 가족을 중심으로 수십명의 사람이 남겨져 있었다. 그런데 조지 도너는 동상에 걸려 다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루이스 케스바그가 리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당시 루이스 케스바그는 반쯤 미쳐있는 상태였다. 루이스는 4세의 조지 포스터를 자신의 옆에 두고 재웠다. 그런데 다음날 조지 포스터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모두들 살해를 의심했으나 루이스는 자연사라고 주장하며,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고 나이프를 꺼내며 말했다. "자, 빨리 먹자"

3월 13일, 3번째 구조대가 도착한다. 이번에는 대부분의 사람을 데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지 도너의 부인은 중태의 남편을 두고 갈 수는 없다는 이유로 눈이 녹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남기로 했다. 구조대는 부인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으므로 루이스 케스바그를 남겨두고 가기로 했다. 사실 그를 두고 가는게 걱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식량이 충분했으므로 별다른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4월 17일, 마지막 구조대가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에 생존자는 케스바그 혼자였다. 구조대는 그에게 "도너 부인은?"이라고 묻자, "거기에 있다"라며 커다란 냄비를 가리켰다. 두 개의 큰 냄에서는 '무언가'를 넣은 스프가 끓고 있었으며, 프라이팬에도 버터를 바른 고기 등이 구워지고 있었다. 그것을 가리키며 케스바그는 태연하게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서 그녀가 가장 맛있었다"라며 말했다. 구조대가 황당해서 오두막을 조사해보니 이전에 남겨둔 식량이 충분히 남겨진 상태였다. 그것을 지적하자, 케스바그는 "아무래도 소고기 육포는 너무 딱딱한데다 별 맛이 없다. 사람의 간 등이 훨씬 맛있다"라고 말했다. 기가 막힌 구조대는 그를 고문했지만 도너 부인 살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루이스 케스바그는 도너 파티의 마지막 생존자로 귀환했으며, 가끔 술에 취하면 "그녀는 정말 부드러운 여자였다"며 말했다고 한다. 1850년대 초, 케스바그는 스테이크 하우스를 개점하는데 선전문구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최상의 부드러운 육질의 고기 밖에 취급하지 않습니다."



도너 파티 기념상








기타

채플린의 영화 '황금광시대Gold Rush'를 보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구두를 삶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정성스럽게 삶은 구두를 잘라 먹고, 구두끈을 스파게티처럼 먹는 장면은 코미디 영화 속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영화 속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 채플린이 구두를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복통을 일으켜 일주일간 영화 촬영이 지연되기도 했는데, 채플린은 왜 그런 무모한 촬영을 했을까?
황금광시대가 촬영된 장소가 바로 트루키 호수 근처였으며, 그는 아마도 도너대의 처참했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상황을 가깝게 느꼈기에 그와 같은 촬영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구두를 뜯어먹는 채플린




동족을 잡아먹는 행위는 치명적 뇌손상을 초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아마존 오지의 식인 부족 가운데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종족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뇌가 석화되는 질병이 가진 이들이 발견된바 있다. 이는 흡사 소에게 소뼈를 갈아먹여 발생하게 된 광우병(국내에서는 절대 곡물 사료만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 미국산 소고기의 소뼈 문제에 민감한 것은 이때문이다)과 흡사하게 뇌손상을 일으킨다. 종족 번성의 유전적 특징 때문에 아마도 자기방어인자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B급문화 f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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