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도대체 왜 중국과 일본은 이토록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일까요?

by 현상아 2007. 11. 27.

이젠 고려까지.. 지나족의 동북공정은 어디까지 일까요?

 

표지판위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보이시나요?

高句麗人幷非朝鮮人 - 고구려인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ㅠㅠ

 

 

 

중국 역사잡지 "고려는 중국 출신 통치자의 세번째 정권"

고려는 기자조선과 고구려에 이어 '중국 출신 통치자가 한반도에 세운 세번째 정권'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포함한 논문이 중국에서 나와 한·중 역사학계에 또 한차례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주장은 고려 태조 왕건이 중국 한족(漢族)의 후예이고 고구려와 고려는 아무런 계승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중국의 고구려사·발해사 침탈에 이은 또 한차례의 한국 고대사 왜곡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논문의 저자가 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이고, 이 논문을 게재한 역사잡지가 지린성 사회과학원 주관 아래 발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잡지 발행인이 바로 지린성 당 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격월간 '동북사지(東北史地)' 2007년 3호(5~6월호)에 실린 '당()나라 명종(明宗)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族籍)을 밝혔다'라는 논문의 저자로 돼 있는 연구원 '스창러(史長樂)'가 본명이 아니라 가공인물의 이름일 가능성이 농후해 이 논문의 의도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논문은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태조 16년(서기 933년) 당나라 명종 이사원(李嗣源)이 고려에 책봉사를 보내 왕건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책봉조서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그 같은 강변에 대한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주몽이 개국한 땅의 상서로운 조짐을 좇아 그 군장이 되고 기자(箕子)가 이룩한 번국(蕃國)의 자취를 밟아 행복과 화락(和樂)을 펴도다"라는 대목과, "경()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이라"고 하는 대목이다.

'주몽이 개국한 땅'과 '기자가 이룩한 땅'에 대한 언급을 "한반도 역사에서 기자와 주몽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중국 출신 통치자가 새로운 고려정권을 세우고 임금이 되어 행복과 화락을 가져다 주었다"는 뜻이라고 논문은 풀이했다.

동북사지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추진한 동북공정의 연구과제를 수행한 학자들이 대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발행자는 장푸여우(張福有) 지린성 당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고, 고문은 전 현직 변강사지연구중심 주임들인 마다정(馬大正)과 리성(¤)이다.

논문은 "왕건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처럼 위장했다"면서 "그는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중국 화이허(淮河) 유역에 살던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앞서 이른바 '민족사학가' 양바오룽(揚保隆)의 고구려 관련 문장에서 "왕 씨는 서한(西漢) 낙랑군(樂浪郡) 당시의 명문 귀족이었기 때문에 왕건도 낙랑군의 한인 후예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한 주장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논문은 "당 명종이 조서에서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고 한 것은 조상의 고향이 장회 지방이었다는 뜻과 조상이 장회 지방의 명문 귀족, 즉 벼슬을 사는 집안이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면서 "바로 이 대목에서 그의 원적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로 왕건의 조상이 중국인임을 거듭 강조했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서 잠깐!

조선(흔희 고조선이라 부르는)에 대해서 먼저 알고 넘어야 할 게 있습니다.

지나족이 고려를 세웠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도 열이 받지만... 그 전에 기자 조선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죠?

이 부분을 잠깐 언급하려 합니다. 뿌리부터 뽑아가는 지나족의 논리를 좀 들어보자구요..

 

조선을 중국(지나족)의 속방으로 만든 기자조선

치우천황 시대 이후 1,600년의 세월이 흐른 고조선 시대에 한·중역사의 시원을 뒤집는 또 하나의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이 있었다.

일찍이 중국이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말살하는 상투적인 방법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정식 국호인 '조선'이라는 호칭을 직접 쓰지 않고 조선의 전성기 때 제후국이었던 70여 개국의 이름 몇 개를 끌어다가 기록하는 것이다.

예, 맥 발, 숙신, 우이,레이, 견이, 서이, 고죽, 고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마천이 당(요), 우(순), 하, 은, 주 시대 역사를 기술할 때도 그러했다.

그런 사마천이 「송미자세가」에서는 느닷없이 '조선'을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봉기자어조선(封箕子於朝鮮)'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왜 그런 것일까?

이 내용은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 전 상주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나라 무왕은 동이족의 명재상인 강태공의 보필을 받아 주지육림에 빠진 상(은)나라 폭군 주왕을 방벌하고, 감금되어 있던 상나라 삼현(기자,미자,비간) 중 한 사람인 기자를 풀어 주었다.

 그런데 풀려난 기자는 조국 상나라가 멸망한 것에 절망하여 동방족의 본고장인 '조선'으로 떠나 버렸다. 그 때 무왕이 이를 섭섭해하며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했다는 이야기이다.

요순시대로부터 자기들에게 선진 문물을 전수해 준 종주국 고조선이 주나라의 한 제후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를 세계의 중심 나라로 만들고 조선을 짓밟기 위해 지어낸 날조극이다.

 여기에는 4,338년 전에 배달국을 계승하여 개국한 뒤 2,096년간 존속한 독립국가 고조선을 3,127년 전에 개국하여 겨우 900년간 존속한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끌어내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역사는 중국의 5천 년보다 훨씬 짧은 3천년으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조선이라는 나라는 '우매한 한민족이 중국의 은혜를 입어 제후로 봉해짐으로써 출발한 국가'로 매도당한 것이다.

  기자조선 역사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송미자세가」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봉기자어조선'바로 뒤에 '이불신야'라, 즉 '그러나 신하로 삼지 못했다.'느 말이 나온다.

제후도 당연히 신하인데 왜 신하로 삼지 못했다는 것일가? 실제로 기자가 새로 정착한 곳은 지금의 하북성 태행산 일대로 주나라와 하등 무관한 조선의 영토였기 때문에 애당초 주나라가 그를 제후로 봉할 수도, 신하로 삼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개벽실제상황 2부 180~181쪽 본문 내용 참조

"중국의 고대문명탐원공정 → 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역사관련 공정들이 있다. 이런 역사 관련 공정의 최종판이 '요하문명론'이다. 중국의 의도대로 요하문명론이 정리되면 단군, 주몽 등은 모두 황제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단군의 자손이라는 한민족이 황제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신 우실하 교수의 말씀이 .. 결코 현실화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동북공정이 단순한 역사 왜곡으로 보여지십니까?

도대체 왜 지나족과 일본은 이토록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일까요? 그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 to be continued -



출처: choonggyuk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