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2000)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오늘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오슬로 시청 메인홀에서 있은 시상식에는 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과 각국 외교사절 등 1,100여명이 참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노벨평화상 인증서와 금메달, 900만 크로네, 우리돈으로 12억원 상당의 상금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1986년부터 15번 연속으로 후보에 오른 끝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 대통령은 아시안인으로서는 일곱번째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2) 김규식 납북 도중 사망(1950)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김규식 선생이 1950년 오늘 예순아홉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미국에서 공부한 김규식 선생은 1919년 임시정부의 초대 외무총장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했다.
해방 뒤에는 이승만, 김구선생 등과 함께 우익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김규식 선생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가자 중도우익을 표방하고 중도좌익 대표인 여운형 선생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김규식 선생의 좌우합작노선은 남한 단독정부 구성을 주장한 우익진영의 방해와 편협한 공산당의 대응으로 끝내 실패하고 만다.
남한지역에서만 치뤄진 총선거에 불참하고 은퇴한 김규식 선생은 6.25전쟁 때 납북돼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숨을 거뒀다.
3) 유엔 세계인권선언 채택(1948)
1948년 오늘 유엔 제3차 총회에서 전문과 본문 30개조로 이루어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됐다.
인권선언 작성에 크게 기여한 엘리노아 루스벨트 여사가 인권선언의 채택을 선포했다.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와 평등을 국제사회의 의무로 규정한 세계인권선언!
세계인권선언에는 정치적, 시민적 자유보장과 경제적,사회적 생존권 보호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들이 규정됐다.
4) 영국국왕 에드워드8세 퇴위(1936)
1936년 오늘!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가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날이다.
이혼 경력이 있는 유부녀 심슨 부인과의 결혼문제로 영국 정부와 교회지도자들로부터 퇴임 압력을 받은 에드워드 8세!
1936년 오늘 퇴위의사를 분명하게 밝힌다.
영국왕으로서는 유일하게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난 에드워드 8세!
당시 나이 마흔 셋으로 왕으로서의 재임기간은 11개월이 채 안됐다.
에드워드 8세는 다음날 런던 근교의 집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내용의 퇴임사를 발표했다.
에드워드 8세는 퇴임사 발표 뒤 바로 영국을 떠났다.
새로 왕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동생 조지 6세는 형에게 윈저 공작 작위를 내렸다.
윈저공은 심슨 부인이 이혼할 때까지 혼자서 지내다가 이듬해인 1937년 6월 3일 프랑스에서 심슨 부인과 결혼했다.
행복한 결혼생홀을 한 윈저공부부가 영국왕실의 공식초청을 받고 영국땅을 다시 밟은 것은 왕위를 버리고 31년이 지난 1967년이 돼서야 가능했다.
5)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결혼(1977)
소련의 남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쌍이 1977년 오늘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1972년 뮌헨올림픽 100미터와 200미터 육상에서 우승한 발레리 보르조프!
신부 역시 뮌헨올림픽에서 체조 개인종합우승을 했던 루드밀라 투리슈체바!
뮌헨 올림픽에서 처음 만난 뒤 5년만에 결혼에 성공했다.
올림픽이 맺어준 부부 보르조프와 투리슈체바는 결혼식이 끝난 뒤 많은 하객들에 둘러 싸여 춤을 추기도 했다.
1896 스웨덴 발명가 노벨 사망
1898 미-스페인 종전협정 체결
1971 해방후 첫 민방공 훈련
1973 한국-인도 국교 수립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오늘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오슬로 시청 메인홀에서 있은 시상식에는 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과 각국 외교사절 등 1,100여명이 참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노벨평화상 인증서와 금메달, 900만 크로네, 우리돈으로 12억원 상당의 상금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1986년부터 15번 연속으로 후보에 오른 끝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 대통령은 아시안인으로서는 일곱번째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2) 김규식 납북 도중 사망(1950)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김규식 선생이 1950년 오늘 예순아홉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미국에서 공부한 김규식 선생은 1919년 임시정부의 초대 외무총장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했다.
해방 뒤에는 이승만, 김구선생 등과 함께 우익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김규식 선생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가자 중도우익을 표방하고 중도좌익 대표인 여운형 선생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김규식 선생의 좌우합작노선은 남한 단독정부 구성을 주장한 우익진영의 방해와 편협한 공산당의 대응으로 끝내 실패하고 만다.
남한지역에서만 치뤄진 총선거에 불참하고 은퇴한 김규식 선생은 6.25전쟁 때 납북돼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숨을 거뒀다.
3) 유엔 세계인권선언 채택(1948)
1948년 오늘 유엔 제3차 총회에서 전문과 본문 30개조로 이루어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됐다.
인권선언 작성에 크게 기여한 엘리노아 루스벨트 여사가 인권선언의 채택을 선포했다.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와 평등을 국제사회의 의무로 규정한 세계인권선언!
세계인권선언에는 정치적, 시민적 자유보장과 경제적,사회적 생존권 보호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들이 규정됐다.
4) 영국국왕 에드워드8세 퇴위(1936)
1936년 오늘!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가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날이다.
이혼 경력이 있는 유부녀 심슨 부인과의 결혼문제로 영국 정부와 교회지도자들로부터 퇴임 압력을 받은 에드워드 8세!
1936년 오늘 퇴위의사를 분명하게 밝힌다.
영국왕으로서는 유일하게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난 에드워드 8세!
당시 나이 마흔 셋으로 왕으로서의 재임기간은 11개월이 채 안됐다.
에드워드 8세는 다음날 런던 근교의 집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없다'는 내용의 퇴임사를 발표했다.
에드워드 8세는 퇴임사 발표 뒤 바로 영국을 떠났다.
새로 왕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동생 조지 6세는 형에게 윈저 공작 작위를 내렸다.
윈저공은 심슨 부인이 이혼할 때까지 혼자서 지내다가 이듬해인 1937년 6월 3일 프랑스에서 심슨 부인과 결혼했다.
행복한 결혼생홀을 한 윈저공부부가 영국왕실의 공식초청을 받고 영국땅을 다시 밟은 것은 왕위를 버리고 31년이 지난 1967년이 돼서야 가능했다.
5)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결혼(1977)
소련의 남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쌍이 1977년 오늘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1972년 뮌헨올림픽 100미터와 200미터 육상에서 우승한 발레리 보르조프!
신부 역시 뮌헨올림픽에서 체조 개인종합우승을 했던 루드밀라 투리슈체바!
뮌헨 올림픽에서 처음 만난 뒤 5년만에 결혼에 성공했다.
올림픽이 맺어준 부부 보르조프와 투리슈체바는 결혼식이 끝난 뒤 많은 하객들에 둘러 싸여 춤을 추기도 했다.
1896 스웨덴 발명가 노벨 사망
1898 미-스페인 종전협정 체결
1971 해방후 첫 민방공 훈련
1973 한국-인도 국교 수립
12월 10일 역사속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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