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결혼(1920)
1920년 오늘, 구한말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 일본왕족의 딸 나시모토 마사코와 결혼했다.
마사코의 우리식 이름은 이방자.
원래 이들의 결혼식은 1년 전인 1919년 1월 25일로 잡혀 있었지만 고종의 승하로 1920년 4월 28일로 연기됐다.
영친왕은 일제의 강압으로 일본으로 유학갔다가 조선과 일본의 융합 차원에서 정략결혼을 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 왕족신분을 상실한 두 사람은 무국적 상태로 일본에서 살다 1963년 한국 국적을 취득해 귀국했다.
영친왕은 귀국후 병상생활을 하다 1970년 타계했다.
▶허정 과도내각 출범(1960)
1960년 오늘 허정 과도정권이 출범한다.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자 허정 외무부장관이 과도내각의 수반으로서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다.
두 달 뒤인 6월 15일에는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7월 29일 민의원,참의원선거가 실시돼 민주당이 압승한다.
허정 대통령대행은 8월 12일 민의원,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모총리를 선출할 때까지 과도정부를 이끌었다.
▶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1995)
1995년 오늘!
대구 상인동 영남중고등학교 앞 네거리 지하철 1호선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했다.
폭발음과 함께 50여 미터의 불기둥이 치솟았다.
공사장 복공판 4백여 미터 구간이 내려앉아 차 150대가 부서지고 주택 등 건물 80여 채가 파괴됐다.
이 폭발로 등교 중이던 학생 43명을 비롯해 101명이 사망하고 백7명이 부상했다.
대구백화점 상인점 신축 공사장의 파손된 가스관에서 새어나온 가스가 하수관을 타고 지하철공사장으로 흘러들어가 폭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 무솔리니 처형(1945)
1945년 오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무솔리니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연합군에 대항했지만 각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1943년 7월 연합군의 시칠리아섬 상륙과 함께 체포됐다.
체포된 지 두 달 뒤 독일군에게 구출돼 북부 이탈리아에 나치스 괴뢰정권을 조직했다.
그러나 독일 항복 직전인 1945년 4월 25일 이탈리아의 반(反)파쇼 의용군에게 코모에서 붙잡혔다.
무솔리니는 4월 26일 인민재판을 받아 사형판결을 받고 판결 이틀 뒤인 4월 28일 그의 정부와 함께 밀라노 시민광장에서 사살됐다.
이로써 20여 년 동안 이탈리아의 독재자로 군림하며 신로마제국을 실현하려던 그의 꿈은 비참한 죽음과 함께 끝을 맺었다.
▶ 드골, 국민투표 패배(1969)
1969년 오늘!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지방제도와 상원개혁 정책을 자신에 대한 신임과 연계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1959년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대통령이 된 드골은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재신임과 특정사안을 연계한 국민투표로 위기를 돌파했다.
1962년 에비앙협정과 대통령제 직선전환을 국민투표를 통해 이뤄낸 것이 바로 그 예다.
그러나 1969년 드골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듬해 11월 타계했다.
[1545] 충무공 이순신 출생
[1884] 조선-영국 수호통상조약 비준서 교환
[1974] 유진산 신민당 총재 사망
[1993] '귀천' 시인 천상병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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