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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서울교외선 개통 (1963) 외 8월20일 속의 역사

by 현상아 2008. 8. 20.

[1031] 고려 강감찬 장군 사망

[1904] 친일단체 '일진회' 창립

[1948] 국제난민기구(IRO) 발족

[1993] 제1차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

 

- 서울교외선 개통 (1963)

서울의 외곽지대를 도는 순환철도 '서울교외선'이 1963년 오늘 개통됐다.

이 순환선은 1961년 능곡-가릉 구간이 1차 개통됐지만 가릉-의정부 구간은 미군 군사시설 때문에 연결이 지연돼다 1963년 모든 구간이 개통됐다.

서울 서부역을 기점으로 경의선의 신촌과 수색을 경유해 능곡에서 본래의 능의선으로 분기한 뒤 다시 의정부에서 경원선의 성북과 청량리를 거쳐 용산부터는 경부선을 이용해 서부역으로 귀환하는 총연장 82.6km의 순환선이다.

개통 당시 한 번 순환하는 데 2시간 10분이 소요됐으며 하루 14편을 운행해 4천 명 안팎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서울교외선은 1970년대 들어서는 장흥, 송추 등으로 MT나 데이트를 가는 교통편으로 널리 이용됐다.

-소련군,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1968)

1968년 오늘 소련군이 탱크를 앞세워 '프라하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민주, 자유화운동이 한창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침공한다.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 나라의 군대까지 가세해 모두 20만여 명이 체코 침공에 동원됐다.

프라하 시민들은 소련군의 탱크에 육탄전으로 맞선다.

그러나 12시간도 안 돼 수도 프라하 등 주요 도시들이 소련군에 의해 점령된다.

침공 사흘 뒤인 8월 23일 스보보다 체코 대통령이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언론자유와 복수정당제 등의 개혁조치들을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

이로써 같은 해 4월부터 시작된 '프라하의 봄'은 막을 내리고 만다.

소련은 이듬해 개혁파의 기수인 두브체크 체코 공산당 제1서기를 강제 해임시키고 개혁파를 추종한 50만여 명의 당원을 제명하거나 숙청해 탈소련, 민주화의 불씨를 완전히 잠재운다. 

- 소련 혁명가 트로츠키 피살 (1940)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1940년 오늘 망명지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암살당한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자객이 서재에 있던 트로츠키를 흉기로 살해했다.

트로츠키는 죽기 석 달 전에도 스탈린의 비밀경찰에 의해 기관총 세례를 받았지만 목숨을 건졌었다.

트로츠키는 1924년 레닌의 사망 이후 스탈린에 의해 본격적으로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1927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직에서 해임된 이후 이듬해 1월 중앙아시아의 알마아타로 유배됐다가 1929년 소련에서 추방됐다.

트로츠키는 이후 터키와 프랑스,노르웨이, 스페인 등을 돌며 망명생활을 하다 1937년 멕시코로 옮겨와 산 지 3년 만에 비명에 삶을 마감하게 됐다. 

-터키 동부지역 지진 (1966)

1966년 오늘 터키 동부 바르토시를 규모 9의 강진이 엄습한다.

24시간 계속된 지진으로 2천 명 이상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틀 전 가벼운 미진으로 시작됐다가 갑자기 강진으로 돌변하면서 이 도시 전체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날 강진 이후에도 두 차례의 여진이 잇따라 발생해 구조작업이 지연되고 피해도 더 커졌다.

-흐루시초프 소련 서기장, 유고 방문 (1963)

1963년 오늘 소련의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한다.

흐루시초프는 브리오니 섬에서 유고의 티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두 정상은 오랜 시간을 함께 걸으며 스탈린 시절 야기됐던 소련과 유고의 경직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한다.

회담을 마친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한 달 전 지진으로 천여 명이 숨진 유고의 스코프제시를 방문한다.

흐루시초프는 복구작업에 참여한 500여 명의 소련인들을 격려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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