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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사랑과 진실

은밀한 ‘비키니 왁싱’

by 현상아 2006. 9. 10.

은밀한 ‘비키니 왁싱’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제모의 아픔을 잊고 체모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예전에 같은 잡지에서 일하던 Y의 소식을 오랜만에 들었다. 이 동네에서 떠도는 소문이란 대체로 누가 누구랑 잤더라, 혹은 누가 돈 벌어 그걸 샀더라, 혹은 누가 어디를 수술했다더라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이번에도 그와 같은 얘기이긴 했으나 사정이 좀 달랐다. 털이 많아 여름마다 고생하던 Y가 드디어 영구제모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학 입학과 함께 겨드랑이 털을 밀기 시작한 이래로 15년 동안 온갖 종류의 제모 방법을 섭렵하며 괴로워하더니 드디어 ‘용단’을 내렸구나 싶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돌렸다.

“아, 그거? 처음에는 되게 간단한 거 같더라. 의사가 시술하는 동안 나는 털 타는 냄새를 맡으며 수술실 벽지에 새겨진 꽃무늬 벽지를 하나둘 세기 시작했어. 그런데 채 열까지 세기도 전에 끝나버리더라. 그래서 좋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3~4주 간격으로 그 짓을 4~6번 정도 더 거쳐야 한다는 거야. 귀찮지만 할 수 있니?”

사실 제모라는 게 보통 고통스럽고 귀찮은 일이 아니다. 내 경우 다행히도 겨드랑이에 털이 별로 없는 관계로 여성 전용 면도기로 다리털만 밀고 있는데 그조차도 간단치 않다. 면도 뒤에 보습제나 오일을 아무리 듬뿍 발라줘도 종아리가 바짝 마른 논바닥처럼 건조하게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끈적이는 액체를 원하는 부위에 바르고 천으로 덮은 뒤 나중에 천이 마르면 그걸 인정사정 없이 잡아채는 방식을 보통 ‘왁싱’이라고 하는데, 그 방법은 면도보다 깔끔하게 제모되는 반면 한 사발의 눈물을 동반해야 하는 아픔이 있다. 코털 열개를 족집게로 한꺼번에 뽑는 고통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대충 짐작이 갈 아픔이다. 게다가 제모용 왁스 제품은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다 아무 데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도 없다.

사진: 쿠가이

그래서 위급할 때는 민간요법에 가까운 편법을 쓰는 여자들도 있다. 예전에 어떤 후배는 마감 때 팔뚝에 문방구용 풀을 잔뜩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둔 채 원고를 썼다. 그리고 10분쯤 지나면 틀림없이 짧은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내가 시도해보니 다리털은 풀 따위로 어림도 없었다. 후배는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가서 물엿을 이용해보세요. 물엿을 끓여서 사용하면 효과가 아주 좋다니까요.”

그런데 요즘 할리우드 여배우들을 중심으로 트렌드 리더들 사이에서 더 은밀한 부위의 체모까지 완벽하게 제거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마놀로 블라닉 슈즈를 사는 것만큼이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체모를 제거하는 차원을 넘어서 갖가지 형태의 문양이나 이니셜로 제거하기도 하고, 크리스털 타투나 헤나 문신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전에는 비키니 왁스라고 해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기 위해서 그러한 시술을 받았다면, 요즘은 왁싱이 일종의 최음제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하고 나면 여자들 스스로 굉장히 섹시한 느낌을 받는 모양인데, 흡사 <플레이보이>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라고 한다.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남녀 관계에 자극을 준다는 것.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 얘기인 것처럼 다루었지만 강남 일대의 피부과에서도 비키니 왁싱을 시술받는 여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내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 때문에 느닷없이 프러포즈를 받을 것 같지는 않지만 확실히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어. 특히 관계가 권태로울 때, 혹은 관계가 끝장 나고 나 자신을 새롭게 무장할 필요가 있을 때 욕실에 가서 면도기를 드는 거야. 혹시 효과가 없다 해도 기껏해야 면도날 하나 상하고 털이야 또 자랄 텐데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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