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붕괴는 도시의 창녀들이 촌락 형태의 매춘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로마 세계의 도시들은 대부분이 성 매매의 중심지였지만 로마의 붕괴로 그 도시들이 해체되
고 복잡한 사회가 도래하자, 도시 창녀들의 생활기반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역경 속에서도 매춘부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만 했기에, 그녀들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겨 다니면서 물물 교환 형태의 매춘을 계속해 왔다. 그녀들은 음식과 옷
가지를 얻기 위해 섹스를 해야 했으며, 다른 매춘부들은 유럽 전역을 휩쓸던 군대를 따라 다니
면서 매춘을 했는데, 이것은 생존 즉,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그녀들의 선택이었다.
로마는 붕괴했지만 창녀의 문화적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진 사랑의 기교, 쾌락, 관능적인 지식을 통해 궁정의 사랑으로 다시 등장했다.
로마는 무너졌으나 교회는 그대로 살아남아 서양의 섹슈얼리티 전반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
게 되었다. 그리스교는 여성을 억압했고 금욕의 이상화를 통해 신체에 대한 혐오와 성행위를
심각한 저주의 행위로 변질시켜버렸다.
그리스도교라는 신흥 종교는 초기 전파자들의 가부장적 사고가 내재된 전통을 고수했으며,
그 가장 고결한 인물이 바로 성 바오로였다. 성 바오로 덕분에 초기 그리스도교는 남성을 중심
으로 위계적인 권력 구조로 바뀌었으며, “여성 혐오사상” 역시 교회에 의해 제도화되었던 것
이다. 바오로는 여성은 선천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보았고 창녀가 가장 맹렬한 공격 대상이 되
었던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로인해 새로운 계명이 탄생했는데 여성은 인류의 추방원인
이 되었다는 ‘치욕과 혐오’를 참회하기 위해 상복을 입혀야 하고 ‘젖이 뚝뚝 떨어지는 가슴, 악
취 나는 자궁, 울부짖는 아이들’로 폄하하였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매춘을 억압하면 변덕스러운 욕정이 사회를 전복할 것이다.”라고 주
장했다. 암흑시대 말기 서구 경제가 되살아났으며, 거대한 교역 문화가 이루어지면서, 지방 시
장과 순회장이 유럽 전역에 등장했다. 그런 교역은 쾌락을 동반했다고 한다.
상인들의 일행 속에는 집시 같은 음악가와 가수, 작가와 재주꾼, 마술사, 의사, 등 엄청난 수
의 사람들과 매춘부들, 수녀원을 벗어난 소수의 수녀, 그리고 몸을 팔 준비가 된 젊은 여인들
이 여행자의 무리에 합류하였던 것이다. 길고 긴 여행길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쾌락의
여정이었다. 이런 여행길에 오르는 여성 중엔 도중에 직업을 매춘부로 바꾸는 여성들도 꽤나
있었다고 한다.
유럽의 촌락을 전전하는 군대로 인해 창녀의 수요는 대단했는데 성 노예는 물론, 요리사. 청소
부, 간호사로 일하는 그들의 수요는 아주 컸으며, 음식과 음료, 성을 제공하며 군인에게 기생
했다는 논리로만 볼 때 누가 누구에게 기생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중세 초 십자군 원정에서 수천 명의 창녀가 그리스도교 군대와 함께 성지를 순례했으며, 1189
년 프랑스 군인들이 여성을 모집하고 그녀들이 없이는 향해하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거부 의사
를 밝힌 일 역시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성적 의욕은 삶의 의욕과 동일하며 치열한 전쟁,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극한 상황에서도 성
적 욕망은 더욱 격렬하게 타 올랐다. 인간은 성적 욕구의 만족도에 의해 용감해질 수도 있고
나약해 질수도 있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향락의 문화에 익숙해 있던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창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육체와의 물물교환은 생존과도 같은 명분아래 더욱 더 그 수위를 높여갔으
며 교회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성매매의 현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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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성과 아름다운 사랑> -LJ (엘제이) 비뇨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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