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은 일단 어원에서 논란이 좀 있다.
당연히 감자탕이라는 이름은 감자가 들어가니까 유래된 줄 알았더니
곳곳에서 하는 말들이 있는데, <돼지의 뼈 가운데 감자라고 불리우는 부위가 있어서 감자탕이다> 라는 주장이 있다.
감자탕은 삼국시대 때 돼지사육으로 유명한 전라도 지방에서 '소뼈'대신 '돼지뼈'를 우려내어 뼈가 약한 환자나 노약자들에게 먹게하여 치유와 예방을 했다는 것에서부터 유래되어 지금의 감자탕으로 전파되어 왔다.
인천항이 개항됨과 동시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와 다양한 음식문화를 갖추게된 인천에서 서서히 감자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때는 인천에서 1899 년 경인선 개통 공사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면서 뼈 해장국과 감자탕이 인천의 대표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감자탕의 유래는 무엇부터일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감자탕의 유래는 대략 이렇다.
감자탕은 삼국시대 때 돼지사육으로 유명한 전라도 지방에서 유래되어 전국 각지로 전파된 한국 고유전통의 음식입니다.
인천항이 개항됨과 동시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와 다양한 음식문화를 갖추게된 인천에서 서서히 감자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때는 인천에서 1899년 경인선 개통 공사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면서 뼈 해장국과 감자탕이 인천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지금은 250만 인천시민이 모두가 감자탕 매니아라 할 정도로 한 집 건너 감자탕집이 있을 만큼 감자탕은 인천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전라도가 돼지사육으로 유명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삼국시대 감자탕에는 감자도 들어있지 않고 고추장도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그걸 감자탕의 기원으로 보자는 의견은 말도 안된다.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가 재밌다. 인천항이 개항됨과 동시에 인천에서 기원했다고? 이리저리 검색하다보니, 감자탕의 진짜 원조임을 주장하는 어느 프랜차이즈점에서 유래를 읽게 되었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전라북도 순창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한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한동길은 부친의 영향으로 한의학 교육을 받던중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휘말려 인천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가문이 기울고 일가의 생계를 위해 경인철도 회사의 인부로 일하던 한동길은 끼니도 거른채 작업하던 인부들을 위해 평소에 갖고 있던 한의학 지식을 활용하여 가장 싼재료였던 시래기, 감자, 돼지뼈를 이용한 탕국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게 되었는데 영양가가 높고 건강에 좋은 통뼈 감자탕이 인기를 얻게 되어 1900년 한강철교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노량진 근처에서 함바집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문구에서 거를 것을 거르면, 아무튼 감자탕은 노동자를 위한 음식으로서, 전라도의 조리법을 원용하여 인천 지역에서 처음 발생하고 서울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사실 감자탕은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서 이야기하자면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개장국의 조리법에서 재료만 형편따라 이리저리 바꾸면 나오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소나 개고기가 없어서 돼지고기를 넣고, 먹다남은 밥도 넣고, 감자도 넣고... 뭐 그런 류의 음식. 감자탕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려고 해야 파란만장할 것이 없는,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기로는 육개장의 아류로서 진화한 정도이다. (물론 감자의 기원, 고추장의 기원,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할 이야기가 좀 있겠지만.)
오히려 내가 감자탕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발상지가 인천이라는 사실이다.
소위 물텀벙이라 불리우는 아구찜이 인천에서 기원한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감자탕 또한 인천에서 기원했다니. (짜장면도 1905년 인천 기원이라지만 그것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이미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다.) 이것을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음식문화가 생겨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국의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에서 모이고 있었다. 외국인에 관한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개항을 인천에서 했다지만 외국인은 서울에도 많았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음식의 진화가 왜 인천을 기원으로 하는 것일까?
바로 <가난한 남자 독신 노동자의 증가> 가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맘때는 더더욱 더, 독신 남자들이 요리를 해먹는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괜찮은 과부 하나 후리지 않는 이상은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데, 네댓명이라면 하숙집 아줌마 밥을 얻어먹었겠지만, 대규모의 공사장 등이라면 결국 상업적인 외식을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외식이라는 것에 몇 가지의 전제가 있다.
1) 남자들끼리 먹는 것이니 술안주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2) 노동자들의 음식이므로 열량이 높고 포만감이 들고 재료가 싸면서도 맛이 강해야 한다
3) 값싼 음식이므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조리할 수 있도록 손이 덜가는 재료로 마구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들은 아구찜과 감자탕에 모두 적용이 가능하다.
1) 아구찜과 감자탕은 모두 소주 안주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음식이다
2) 열량과 포만감은 뭐... 재어보진 않았지만, 높겠지. 재료는 확실히 싸다. 아구찜은 요즘 나름대로 비싸던데, 옛날에는 아구는 버리는 생선이었다니. 감자탕은 지금도 싸다. 고추, 후추, 들깨, 산초 등이 듬뿍 들어서 자극도 강하고 맛도 강하다.
3) 콩나물, 감자, 돼지등뼈, 아구, 등등을 마구 넣고 한 솥씩 만들어야 제맛이겠지.
결국 한국 음식을 진화하게 만든 단초는 <독신남>과 <매점 아줌마>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한국음식의 상당수는 외식 문화를 통해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직접 면을 뽑아서 만드는 시대라면 짜장면 또한 가정요리로는 부담스럽다.
요리집에서 만들거나 공장에서 뽑아내거나.
여담으로. 1948년에 건국된 <한국>의 음식이 바로 한국음식이다. 이 한국음식은 조선음식과 다르고, 고려음식이나 백제음식과도 다르다. 그 전통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서부터 연원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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