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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휴전협정 가조인 (1952)외 6월8일속의 역사

by 현상아 2008. 6. 8.

 -일본, 정신질환자 교실 난동 (2001)

2001년 오늘 일본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에서 30대 남자가 흉기를 휘둘러 초등학생 8명이 숨지고, 학생과 교사 등 21명이 중.경상을 입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자는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환각상태에서 수업을 마치고 쉬고 있던 학생과 교사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이 사건을 접한 일본 국민들은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한 무차별적인 살인행각에 충격과 경악을 금치못했다.

경찰조사결과 이 남자는 '신경안정제 의존증'으로 줄곧 정신병원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휴전협정 가조인 (1952)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유엔과 북한이 휴전협정에 잠정 합의한다.

하지만 선 협상, 후 휴전을 주장하는 공산측의 반대로 완전한 휴전협정 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휴전회담에서 양측이 가장 대립한 부분은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

공산측은 38도선을 고집한 반면, 유엔측은 38도선 북방의 경계선을 주장했다.

휴전협정 가조인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은 휴전 결사반대 입장을 밝혔고 국민들의 항의 시위도 이어졌다.

미국은 한국에 군사경제원조와 방위조약 체결을 약속하고 휴전 반대 입장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전쟁의 휴전은 14개월 뒤인 1953년 7월 27일 클라크 유엔군사령관과 김일성 그리고 중공군사령관 팽덕귀가 서명해 이뤄졌다.

- 남북 포로교환협정 조인 (1953)

휴전 협정 체결을 50일 가량 남겨둔 1953년 오늘 유엔측과 공산측이 포로 교환협정에 합의했다.

협상과정에서 북측은 모든 공산포로를 송환하라고 요구했고 유엔측은 희망장만 송환시킨다는 원칙을 고수해 수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공산포로 17만 천여명 가운데 북한과 중공 등으로 되돌아 가기를 거부한 사람은 5만 여명!

이들에 대한 처리 문제로 휴전 회담은 결렬 직전까지 가는 어려운 상황을 맞기도 했다.

공산측으로 송환을 거부한 대부분의 포로는 중립국이나 자유진영으로 가기를 희망했고 남한에 남은 포로들은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 영국, 파시스트 집회 (1934)

1934년 오늘!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파시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영국 파시스트 지도자는 오스왈드 모슬 리!

모슬 리는 영국 파시스트들에게 히틀러를 열렬히 찬양하며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점차 호전적인 자세로 돌변하고 영국과 독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영국 파시스트들은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앙골라 독립전쟁 격화 (1972)

아프리카 콩고강을 유유히 항해하는 배 한척!

이 배에는 모부투 자이르 대통령과 앙골라 독립군 지도자 로베르토 홀덴이 타고 있다.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아프리카 산유국 앙골라!

앙골라에 도착한 모부투 대통령은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앙골라 게릴라 지도자를 격려했다.

앙골라는 3년 뒤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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