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우의 역사극다이어리 21]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MBC 드라마 '이산'이 종영을 앞두고 있다.
'이산'은 정조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개혁군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특히 '이산'은 정순왕후(김여진 분)와 이산(이서진 분)의 갈등과 대립을 주요 에피소드로 담으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구웠다.
이산에겐 할머니 뻘인 정순왕후가 정조를 암살했다는 음모론을 바라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조의 독살설은 이미 여러 드라마와 영화, 소설 등을 통해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지만 그 배후가 정순왕후라는 설정이 매우 낯설었기 때문.
과연 정순왕후가 정조를 암살했고 과연 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조 독살설, 그리고 정순왕후
정조의 독살설은 잘 알려진 역사 음모론 중 하나다. 정조는 태생부터 죽음까지 수많은 정적들과 고독한 전쟁을 벌여야 했기에 이 정조 독살설은 그 어떤 암살설보다 신빙성을 많이 얻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정조의 죽음 이유는 등창이란 병때문이다. 등창이란 등에나는 종기, 부스럼으로 통증과 열이 많아 간혹 패혈증을 일으키게 하는 병이다. 고려,조선 왕조 군주 등 이 등창으로 목숨으로 잃은 이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병이다.
정조는 재위 24년 6월부터 이 등창에 고생했다. 거의 매일 이 등창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실록을 바라보면 정조는 즉위이후 등창에 큰 고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4년 전에도 등창이 발병했고 큰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정조는 여러가지 치료법을 병행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일각에선 과로로 인한 병의 악화가 정조를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과로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과 근본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은 이 등창 치료를 두고 독살설을 제기했다. 승정원 일기엔 정조의 죽음을 의심하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했다. 정조의 최측근이던 정약용은 자신이 지은 '여유당전서'를 통해 정조의 독살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도 정조의 독살설은 큰 힘을 받고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물론 소설, 드라마, 영화등은 정조의 죽음을 독살로 한정지었다. 개혁을 꿈꾸던 군주가 반대파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설정은 정조의 상황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조독살 배후, 정순왕후?
이런 정조 독살설의 중심엔 노론 벽파가 있었다. 정조와 등을 졌던 노론벽파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독살을 실행했다는 설명. 과연 신하가 이처럼 왕을 죽이는 것이 간단했을까? 사실 조선왕조 가운데 수많은 왕과 왕족들이 독살설 의심을 받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조선왕조는 왕권이 강했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쳐야한다. 조선왕조는 왕권이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막강하지 않았다. 조선 정치 철학인 유교는 강력한 왕권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왕권을 강화했던 왕들의 말로도 비참했다. 철권통치를 행하던 연산군, 개혁군주던 광해군은 왕위에서 �겨나기까지 했다.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한 당파에게 권력을 주며 상대당파를 누르는 변칙적인 정치전략을 펴기도 했다. 조선왕조 신료의 권력은 이처럼 생각보다 강력했다.
정조도 마찬가지다. 정조도 개혁을 위한 왕권강화에 온힘을 기울였다. 이 가운데서 노론 벽파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독살설의 주력은 이 노론벽파가 주도했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가운데 최근들어 정순왕후 배후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정순왕후가 정조를 독살하는데 가장 큰 중심인물이였다는 것. 이 정순왕후 배후설엔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정순왕후의 갈등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더욱이 정순왕후가 정조와 대립각을 펼치던 노론벽파가문 출신이라는 점도 정순왕후 배후설을 크게 밑바침하는 이유다.
더욱이 정순왕후가 정조 사후 펼친 정치적 행보는 정순왕후 배후설을 더욱 뒷바침해준다. 정순왕후는 어린 순종대신 긴 기간을 수렴청정을 벌였다. 정순왕후는 정조가 펼친 탕평책과는 상이하게 자신의 가문이 경주김씨를 권력의 중심으로 세워놓았다. 노론벽파가 득세하게 된 것은 당연지사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대역행적이었다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정조가 가장 큰 비판을 듣는 안동김씨 출신 김조순에게 유명을 남긴 것도 이 정순왕후, 경주김씨를 견제하기 위함이였다고 설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드라마 '이산'외에도 2007년 방송돼 호평을 받았던 KBS 2TV '한성별곡'도 이 정순왕후 배후설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정순왕후, 정조와 다를 것 없던 인생길
그러나 이 정순왕후 배후설은 여러 정황에도 불구, 공식적으로나 심적으로 크게 인정받고 있진 않다. 역사에 기록된 정순왕후와 정조의 관계가 좋은 편이였던데다가 수렴청정 역시 불가피한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 관례상 수렴청정시 친인척들의 막강한 지지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어찌됐던 정조가 죽은 후 정순왕후는 조선의 권력을 휘어잡았다. 정순왕후 배후설이 맞다면 정순왕후와 경주김씨를 중심으로 한 노론벽파의 꿈이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그 꿈도 길지 않았다. 노론벽파는 안동김씨를 비롯한 노론시파에게 결국 패퇴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순왕후의 죽음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탄생이란 점도 역사가들이 안타까워하는 일부분이다.
[뉴스엔] 2008년 06월 13일(금) 김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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