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만사 이모저모/사랑과 진실

쾌락의 저택과 섹스의 온상지

by 현상아 2006. 12. 31.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란 말이 있다. 국민의 본보기가 되어야할 황제가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면 국민들 역시 타락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방탕한 왕 곁에는 늘 타락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존재했었는데 루이15세의 정부 퐁파두르는 왕

의 자극적 욕구와 쾌락을 위해 '사슴동산' 즉 ‘쁘띠메종’이란 저택들 만들어 어린 소녀들을 살

게 하였다. 결국 이것이 유행처럼 번져 궁전의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선 루이15세의 성적 놀음

을 흉내 내는 색다른 취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저마다 왕의 방종을 따라 쾌락의 성을 지어 놓고 자신의 애첩들과 함께 즐기곤 했는

데 왕과 같은 사치와 쾌락을 누리던 자들로는 리슐리외 추기경을 비롯하여 많은 귀족들이 자

신의 저택 근처 숲속에 ‘쁘띠메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쁘띠메종에는 온갖 음란한 조각과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남자들은

물론 재력 있는 귀부인들도 별장을 지어 남자들과 즐기는 풍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충신이던 티몰백작과 모나코 왕족인 라큐르느는 로자리라는 첩을 별장으

로 불러 삼색의 쾌락을 질탕하게 즐겼다고 한다.

쁘띠메종이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자 파리의 고급 창가 포주들은 고급 저택에 쁘

띠메종 같은 궁전을 지어놓고 아름다운 창부들을 고용하여 쾌락의 숲을 제공하였다.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귀족과 명사들이었으며 미술가, 학자, 문인 등이 관능적인 여자들

과 음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한 없는 유탕한 일들이 행해졌다고 한다.

태양왕은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 왕족의 권위와 프랑스 건축예술의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을 추

구하였다. 갖가지 호화롭고 사치스런 가구들로 장식된 베르사유 궁전의 고급스러움을 부러워

하던 귀족들은 베르사유의 축소판인 작은 궁전을 짓기 시작했던 것이다.

베르사유를 부러워하는 귀족들 사이에서 베르사유를 베낀 ‘세라이유’ 라는 궁전 짓는 것이 유

행처럼 번져나갔다. 귀족들은 그곳에서 모두가 왕과 같은 생활을 꿈꾸었으며 ‘세라이유’는 남

자들이 즐기는 궁이란 뜻으로 왕의 정부들을 대신하여 싱싱한 미모의 창부들은 저마다 예의

를 배우고 우아함을 습득하여 성적인 만족과 함께 지적인 충족까지 손님들에게 제공하였다.

더욱이 성적으로 쇠약한 남자들의 성욕을 부추기기 위해 남자와 여자의 섹스 장면을 관람하

는 즉석 섹스 관람 방까지 있었다고 한다. 남자손님과 창부들의 섹스 장면은 커다란 거울을 통

해 다른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지만 손님은 자신의 섹스 장면이 관람되는지를 모르고 있는 현

대판 몰래카메라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섹스 관람이 제공되자 색다른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은 신선한 성적 자극을 받았으며

그런 이유에서 여자 손님들도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녀들은 자신의 알몸과 은밀한 곳

을 거울에 비추면서 성적인 포르노가 제공되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여자들이었다.

남자들은 아름다운 귀부인들이 알몸으로 자위를 하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지켜보다가 그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같이 즐기곤 하였다. 포주는 창녀에게 주는 돈을 아낄 수 있어 일거양득

이 아닐 수 없었다. 파리에서 ‘그르당’이라는 세라이유 창가가 가장 유명했는데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뒤바리 백작부인은 그르당을 자주 출입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콘돔을 비롯하여 가죽으로 만든 남자의 성기, 흥분제, 여성 대용의 인형과 춘화나 외

설적인 소설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그러한 물건을 이용하여 방종한 성적 쾌락에 젖어

들었다.

결국 이러한 방탕한 사치와 쾌락으로 인해 중세의 프랑스 부르봉 왕조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

었고 프랑스 혁명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www.ljuro.com

<재미있는 성과 아름다운 사랑> -LJ 비뇨기과 (엘제이 비뇨기과)-


<본문 내용의 저작권은 LJ(엘제이)비뇨기과에 있으며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모든 저작 자료 이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시해야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