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무장관 회담(1965)
1965년 오늘!
한일 국교수립 문제로 국내의 반대여론에 직면하고 있던 이동원 외무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존슨 대통령과 러스크 국무장관을 잇따라 만났다.
존슨 대통령은 한일 국교 수립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러스크 장관과의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동원 장관은 미국의 베트남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우리 나라는 이 외무장관 회담이 있기 한 달 전 베트남 파병을 시작했다.
러스크 장관은 한일 국교가 수립돼도 미국의 군사, 경제적 원조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협상 중이던 한미행정협정의 빠른 체결도 다짐했다.
이동원 장관은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를 방문해 우탄트 사무총장과 면담도 가졌다.
▶ 한-독 기술원조협정 체결(1961)
1961년 오늘!
우리 나라와 서독이 기술원조협정을 체결했다.
우리는 이 협정으로 서독의 선진기술을 도입하게 됐다.
서독은 인하대학교에 직업보도부를 설치해 공업기술과 기자재, 그리고 우수한 교수진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 남아공 개혁 찬반 투표(1992)
1992년 오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역사적인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수세기에 걸친 백인의 권력 독점과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 헤이트를 철폐하는 데 찬성하는 지 묻는 투표였다.
백인 유권자 328만여 명이 참가한 이번 선거에서 68.7%가 드 클레르크 대통령의 민주개혁안을 지지했다.
이로써 350여 년에 걸친 남아공의 인종분규가 막을 내리게 됐다.
드 클레르크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국민당과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즉시 협상기구를 만들어 흑인에 대한 투표권 부여 원칙에 합의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 케네디, 코스타리카 방문(1963)
1961년 마흔 셋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오른 케네디!
임기 3년째인 1963년 오늘, 코스타리카를 방문했다.
케네디는 이 나라에서 열린 중앙아메리카 정상회담에서 소련을 겨냥한 반공선언을 이끌어냈다.
케네디는 같은 해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도중 흉탄을 맞고 숨졌다.
▶ 선박왕 오나시스 장례식(1975)
1975년 오늘!
사흘 전 숨진 세기의 대부호, 선박왕 오나시스의 장례식이 열렸다.
미앙인 재클린 여사와 딸 크리스티나가 운구 행렬과 함께 그리스 서쪽 스콜피오 섬에 마련된 장지로 향했다.
유언에 따라 오나시스의 유산 130억 달러 가운데 반은 전처(前妻)와 자녀에게, 나머지는 비행기사고로 죽은 자식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오나시스재단에 기증됐다.
7년 전 결혼 선물로 스콜피오섬을 받았던 미망인 재클린 여사는 2천만 달러를 상속받았다.
존.F.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여사는 남편이 암살된 지 5년 만인 1968년 오나시스와 결혼했다.
[1891] 파리-런던 전화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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