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보사태 청문회(1997)
1997년 오늘, 국회 한보 국정조사특위가 한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시작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서울 구치소에서 청문회가 TV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첫 증인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
특위는 비자금 조성 여부와 당진 제철소 건설 과정에서의 정치권 로비여부 등을 집중추궁했다.
이어 정 총회장의 아들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까지 거물급인사 41명이 증언대에 섰다.
증인들은 거듭되는 추궁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등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4월 7일부터 시작된 청문회는 15일까지 12명의 수감증인을 대상으로 구치소에서, 18일부터 다음달인 5월 1일까지는 국회에서 진행됐다.
2) 비아그라 발매 발표(1998)
1998년 오늘!
미국 제약업체 파이저(Pfizer)사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를 일주일 뒤인 15일부터 한 알에 10달러에 발매하겠다고 발표한다.
비아그라는 발매와 동시에 미국 내 발기촉진제 시장의 95%를 점령한다.
1998년 하반기 미국에서만 600만 명이 비아그라 복용 처방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같은 해 심장병 환자 수십 명이 비아그라를 복용한 후 숨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다.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논란 끝에 1999년 8월 28일 세계에서 93번째로 시판됐다.
3) 자유 단치히 국적 선택 투표(1935)
1935년 오늘, 국제연맹 보호 하의 자유도시 단치히 (Danzig)에서 투표가 실시됐다.
이 도시의 국적을 독일로 복귀시킬지 폴란드 령으로 바꿀 것인지 묻는 투표다.
단치히는 독일인이 96%를 차지하는 곳이었지만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국적 없는 도시가 됐다.
1년 전인 1934년 8월 독일 총통이 된 히틀러는 정계의 주요 인사들을 보내 단치히 시민들에게 독일 회귀에 찬성해 줄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독일은 단치히를 돌려받는 데 필요한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는 데 실패한다.
단치히는 결국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독일에 복속됐다가 종전 후 폴란드로 귀속돼 이름이 지금의 그단스크(Gdask)로 바뀌었다.
4) 에드워드 케네디 스캔들(1971) 1997년 오늘, 국회 한보 국정조사특위가 한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시작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서울 구치소에서 청문회가 TV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첫 증인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
특위는 비자금 조성 여부와 당진 제철소 건설 과정에서의 정치권 로비여부 등을 집중추궁했다.
이어 정 총회장의 아들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까지 거물급인사 41명이 증언대에 섰다.
증인들은 거듭되는 추궁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등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4월 7일부터 시작된 청문회는 15일까지 12명의 수감증인을 대상으로 구치소에서, 18일부터 다음달인 5월 1일까지는 국회에서 진행됐다.
2) 비아그라 발매 발표(1998)
1998년 오늘!
미국 제약업체 파이저(Pfizer)사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를 일주일 뒤인 15일부터 한 알에 10달러에 발매하겠다고 발표한다.
비아그라는 발매와 동시에 미국 내 발기촉진제 시장의 95%를 점령한다.
1998년 하반기 미국에서만 600만 명이 비아그라 복용 처방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같은 해 심장병 환자 수십 명이 비아그라를 복용한 후 숨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다.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논란 끝에 1999년 8월 28일 세계에서 93번째로 시판됐다.
3) 자유 단치히 국적 선택 투표(1935)
1935년 오늘, 국제연맹 보호 하의 자유도시 단치히 (Danzig)에서 투표가 실시됐다.
이 도시의 국적을 독일로 복귀시킬지 폴란드 령으로 바꿀 것인지 묻는 투표다.
단치히는 독일인이 96%를 차지하는 곳이었지만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국적 없는 도시가 됐다.
1년 전인 1934년 8월 독일 총통이 된 히틀러는 정계의 주요 인사들을 보내 단치히 시민들에게 독일 회귀에 찬성해 줄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독일은 단치히를 돌려받는 데 필요한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는 데 실패한다.
단치히는 결국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독일에 복속됐다가 종전 후 폴란드로 귀속돼 이름이 지금의 그단스크(Gdask)로 바뀌었다.
1971년 오늘, 미국 케네디가의 형제들 가운데 막내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회견을 연다.
의혹투성이의 여비서 사망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다.
2년 전인 1969년 여름, 매사추세츠주 체커퀴빅섬 근처에서 케네디 상원의원과 여비서가 탄 차가 호수로 추락했다.
케네디 의원은 헤엄쳐 나와 목숨을 건지고 여비서는 사망했다.
케네디 의원의 회견에도 불구하고 사고상황에 대한 의문은 말끔히 풀리지 않았다.
이듬해 미연방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중지를 결정함으로써 케네디 의원의 혐의를 사실상 면책해 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5) 자동차왕 헨리 포드 사망(1947)
1947년 오늘!
자동차왕으로 불린 헨리 포드가 타계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포드는 학업을 중단하고 15살 때 기계공이 돼 자동차 제작에 몰두했다.
포드는 1899년까지 디트로이트에 있는 에디슨회사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1903년 포드자동차회사를 설립했다.
1913년 조립 라인 방식에 의한 양산체제인 포드시스템을 확립하고 1914년에는 최저임금 일급(日給) 5달러, 1일 8시간 노동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노동정책을 폈다.
[1805] 베토벤 제3번 교향곡 '영웅' 초연
[1896] 독립신문 창간
[1948] 세계보건기구(WHO) 발족
[1969] 시인 신동엽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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