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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일본 나가사키 대화재(1934) 외 4월16일 속의 역사

by 현상아 2008. 4. 16.
3.1민족대표 오세창 타계(1953)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위창 오세창 선생이 1953년 오늘 타계했다.

위창은 6·25전쟁중 대구에서 숨졌다.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위창은 조선말기 개화사상의 선각자이며 서화가인 부친 오경석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성순보 기자로 재직하다 1902년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해 그 곳에서 손병희의 권유로 천도교신자가 됐다.

위창은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위창은 근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며 서화사 연구에 정통하였고 탁월한 감식안을 지녔다.

위창은 특히 전서와 예서에 뛰어났다.

위창은 8·15광복 후 매일신보사와 서울신문사의 명예사장을 역임하고 서화사 연구에 귀중한 '근역서화징'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2) 일본 나가사키 대화재(1934)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키에서 1934년 오늘 대화재로 2천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목재로 만들어진 가옥이 많아 화재 피해가 매우 컸다.

나가사키는 1571년 포르투갈과 무역을 시작한 해외무역항로서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개화도시가 됐다.

융성했던 나가사키 항은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돼 6만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악몽을 겪어야 했다.

3) 레바논 내전(1976)

1976년 오늘도 레바논 내전이 계속된다.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기독교민병대와 팔레스타인저격수의 모습이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종파간의 정치와 경제적 이익에 따른 갈등이 여러 분파 간의 내전을 가져왔다.

특히 기독교세력과 이슬람교도 간의 정치적인 입장 차이가 내전의 큰 불씨가 됐다.

프랑스가 평화유지군을 맡겠다고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레바논 내전은 1975년 기독교 우파가 팔레스타인인이 탄 버스에 테러를 가함으로써 촉발됐다.

이후 사분오열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각 파들은 각기 무장 민병대를 내세워 정부군, 이스라엘 등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내전 발발 15년 뒤인 1990년 12월에야 그리스도교 마론파와 이슬람교 수니파 등 민병조직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출범함으로써 기나긴 레바논 내전이 종식됐다.

4) 북베트남 게릴라 훈련(1968)

1968년 오늘, 북베트남군에 자원한 병사들이 게릴라 훈련을 받는다.

북베트남은 현대무기로 무장한 미군들에게 이 같은 게릴라전술로 맞섰다.

공산화 도미노를 막겠다며 베트남전에 개입한 미국은 결국 외세를 극복하고 민족자립을 이루겠다는 북베트남의 정글 게릴라전에 무너졌다.

5)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 사망(1991)

 


영상과 음향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거장 데이비드 린 영화감독이 1991년 오늘 숨졌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1942년 '우리가 봉사하는 것'으로 데뷔했다.

린 감독은 '닥터지바고'와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와 같은 대작을 만들면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인간관계의 미묘하고 섬세한 면을 유려한 영상물 속에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4년 '인도로 가는 길'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기사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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